‘여성의 알몸’에 기울어진 축을 ‘본연의 모습’으로 끌어오는 (여자)아이들의 ‘Nxde’ [플랫]
‘걸그룹 전성시대’다. ‘소녀’만을 요구하던 시절을 지나 다양한 콘셉트와 캐릭터의 걸그룹이 등장하며, 이들의 성과는 대중적으로나 음악적 완성도 측면에서 두루 괄목할 만하다. 그중 신곡 ‘Nxde’(누드)로 또 한 번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걸그룹 (여자)아이들, (G)I-DLE(이하 아이들)은 소위 ‘난’ 그룹이다. 2018년 데뷔한 아이들은 데뷔 20일 만에 데뷔곡 ‘LATATA’로 음악 방송 1위를 차지했고, 신인상 7관왕에 오르며 괴물 신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심지어 데뷔곡은 그룹의 리더인 전소연의 자작곡이었다. 전소연은 <프로듀스 101> 시즌 1과 <언프리티 랩스타>로 존재감을 알렸으며, 그룹의 정체성을 견인하는 프로듀서다. 앨범마다 독보적인 콘셉트와 확고한 서사를 구축하고, 개별 멤버의 특성과 합을 세심하게 파악하는 프로듀싱으로 유명하다. ‘선장님’으로 불리며, <방과후 설렘>(MBC)에 최연소 멘토로 출연하기도 했다. 상반기 최고 히트곡으로 꼽히는 ‘Tomboy’(톰보이)에 이어, ‘Nxde’ 역시 줄곧 음원차트 1위를 지키며 데뷔 후 첫 빌보드 200에 아이들을 안착시켰다(71위).
‘Nxde’는 그냥 봐도, 그러니까 모든 요소를 일일이 뜯어보고 비교하고 감탄하며 흥분하는 ‘오타쿠’가 아닌 사람이 봐도 매릴린 먼로를 오마주했다. 멤버들은 금발로 염색했고, 란제리룩이나 가터벨트 같은 ‘쇼걸’ 의상을 활용한다. “말투는 멍청한 듯 몸매는 sexy, sexy요”라는 가사는 ‘백치미’로 유명했던 매릴린 먼로의 캐릭터를 전유하면서, “철학에 미친 독서광 (huh), self-made woman”으로 이어지는 가사에서 먼로의 다양한 면모를 포착한다. 섹스심벌이었던 매릴린 먼로가 동시에 지적이면서 독서광이었다는 사실은 당대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대중과 미디어의 수요는 오로지 ‘금발의 백치 미녀’에만 맞춰져 있었고, 이는 가부장제 사회가 어떻게 여성을 ‘몸(성)에 잡아먹힌 존재’로 간주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2022년 5월,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 출연했던 전소연은 ‘Nxde’를 기획하는 장면을 일부 공개했다. ‘Nude’라는 단어의 본질적인 의미에 집중하며, ‘여성의 알몸’ 혹은 ‘음란함’에 기울어져 있던 축을 ‘본연의 모습’이라는 뜻으로 끌어오겠다는 의도는 정확하게 구현되었다. 웹 예능에 출연한 아이들은 ‘누드’라는 단어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패널에게 “옷 입고 태어난 거 아니잖아요?”라고 되물었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알몸으로 태어나 점점 ‘알꾸’(알몸 꾸미기)를 하게 된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데올로기와 관습, 규범과 금기가 관여한다. 어떤 몸은 ‘음란하고’ ‘감추어야 하고’ ‘단속해야 하는 것’이며, 어떤 몸은 ‘드러내도 되는 것’ ‘당당한 것’ ‘우월한 것’이라고 학습한다. 백일사진이나 돌사진을 찍을 때 남아는 발가벗겨서 당당하게 성기를 드러내고 사진을 찍지만 여아는 어릴 때부터 속바지로 꽁꽁 싸매었듯이.
‘Nxde’는 오염된 단어의 의미를 새로이 발견하고 재맥락화하는 작업인 동시에, 성적 매력이 있는 여성을 납작하게 짓누르고 소비해버리는 폭력에 맞선다. 조회수 8200만을 돌파한 뮤직비디오에는 매릴린 먼로뿐만 아니라 세기의 ‘팜므 파탈’적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물랑루즈, 마돈나, 애니메이션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1988)의 주인공 제시카 래빗…. ‘Nxde’에는 오페라 <카르멘>의 아리아인 ‘하바네라’가 샘플링 되었는데, 주인공 카르멘 역시 전통적인 여성의 이미지와 도덕관을 뛰어넘는 관능적인 여성이다. 카르멘은 당시 대중은 물론 이 역할을 연기한 오페라 가수에게까지 사랑받거나 이해받지 못했다. 김주현은 <외모 꾸미기 미학과 페미니즘>(책세상, 2009)이라는 책에서 팜므 파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팜므 파탈이란 너무 아름다운 신체를 가진 여성을 말한다. 그녀는 아름다움을 찬양받는 것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의 사악함과 위험성을 이유로 비난받는다. 여성의 신체미는 정신의 고양을 막고 오직 신체미에만 탐닉하게 한다는 이유로 ‘남성을 망치는’ 것이며, 바로 이 때문에 지속적인 비난과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여성 신체미에 대한 악의적인 논의는 지속적으로 유포되었고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러한 논의들로 얼마나 많은 여성이 손쉽게 증오와 희생의 대상이 되었던가?”(86쪽)
‘섹시함’은 개인의 일부이고, 어떨 때는 일정 기간 동안 필요에 의해 수행되는 ‘연출’이다. 의상과 화장은 탈부착 가능한 요소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를 언제나 ‘그 여성 그 자체’로 치환한다. 노출이 많은 의상을 입었으니까, 화장을 했으니까, 남자들의 시선을 즐기니까, 스스로 섹시한 포즈를 취했으니까… ‘그’ 여자는 ‘그런’ 존재이며 ‘그’ 틀 밖에 존재하는 개별성이나 특성은 존재할 수 없다고 여겨진다. 심지어 ‘섹시하고 멍청한’, 성적인 요소를 상쇄하는 다른 매력을 갖추지 못했으며, 성적 어필을 적극적으로 하는 여자는 여성들에게조차 배척당한다. 기획사의 강요로 ‘억지로 벗겨진’ 여자 아이돌은 동정받지만, 성공을 위해 스스로 노출하는 여자 아이돌은 미움받는다. 실제로 전소연은 노출이 있는 콘셉트처럼 보였던 티저 영상이 공개된 후, (오해가 풀리기 전까지) 욕먹는 걸 각오하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걸그룹은 노출을 요구하는 억압과, 스스로 노출하면 헤프다고 욕하는 이중 억압 속에 있는 셈이다. 한편, “꼴이 볼품없대도, 망가진다 해도 (uh) 다신 사랑받지 못한대도” 나로 존재하고 싶다는 여자가 아이돌 산업의 기준에 맞는 마른 몸을 하고, 한껏 꾸민 채 그런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에 누군가는 불편함을 토로한다. 노래의 메시지를 극대화하는 ‘Nxde’의 활동 의상을 두고, 결국 ‘주체적 섹시’라며 조롱하기도 한다. ‘그런 옷’을 입은 아이들의 노래는 ‘페미니즘적으로 해석’될 수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슈트를 입거나 맨얼굴로 활동했다면 나았을 거라는 말도 있다. 이러한 비난은 결국 외적 매력이 경쟁력인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의 모든 시도를 ‘무의미’한 것으로 돌리고, ‘신뢰할 수 없는 옷을 입은’ 여자는 ‘신뢰할 수 없다’라는 기존의 낡은 편견을 강화한다.
하지만, 4년 차 걸그룹인 아이들이 이런 걸 예상하지 못했을까? 오히려 다 예상하고 가지고 노는 건 아닐까? ‘Nxde’를 둘러싼 모든 논의는 아이들의 행보를 검토해야만 한다. 바로 직전의 활동 곡이었던 ‘Tomboy’(톰보이)는 원래 “활달하고 남성스러운 여성, 특히 10대 여자아이”를 뜻한다. 슈트는 이때 진작 입었는데, 톰보이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It’s neither man nor woman, just me(남자도 여자도 아니야, 그냥 나야).” 이런 가사도 있다. “Do you want a blond Barbie doll?(금발의 바비인형을 원하니?)” ‘나’는 ‘타인이 원하는 이상적인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던 아이들은 바로 다음 활동에서, 다소 과장될 정도로 충실하게 전원이 금발로 염색하며 ‘금발의 바비인형’을 ‘연기’한다. 이것은 ‘바비인형’이라든가 ‘톰보이’라는 정의 역시 언제든 자유롭게 수행했다가 그만둘 수 있는 일종의 가면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걸그룹이기에 화려한 의상을 입지만, 평소에는 생활 한복을 입고 다니는 전소연이나 왜 화장을 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담담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힌 예슈화는 직업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간파하고 있는 듯하다. 편견을 깨는 아이돌을 표방하면서도, 체중을 잴 때는 비활동기라서 그렇다고 쑥스러워하는 모순은 걸그룹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있는 모습이다. ‘Nxde’를 통해 성적 매력이 있는 여성을 대상화하고 소비하는 폭력을 비판할 수 있지만, 동시에 아이돌로서 그러한 시선을 즐길 수도 있다(뮤직비디오에서는 매릴린 먼로뿐 아니라, 대중이 바라는 대로 자신을 내던진 예술가 ‘뱅크시’도 오마주했다). 완전무결하기를 요구하거나, 가혹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김주현은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묻는다. “사랑할 만하지 않다고 폄하하면서도 그 대상을 은밀히 사랑하고 또 그 은밀한 사랑에서 그 사랑의 대상을 경멸하는 가부장제 미학의 이중 경멸을 뚫고서, 여성들은 사랑의 주체가 되어 자기 신체를 사랑”(107쪽)할 수 있을까? 이 딜레마를 돌파하는 방법은 제각각일 것이다. 아이들은 걸그룹에게, 넓게는 ‘여성’에게 허용되지 않던 감정과 욕망을 전면에 내세우며 덤비는 그룹이다. ‘Lion’에서는 길들일 수 없는 야생의 기질과 공격적인 야망을, ‘싫다고 말해’에서는 ‘미친 여자’로 상징되는 파괴적인 사랑의 감정을, ‘한(一)’에서는 여성적이고 비이성적인 감정으로 폄하되었던 ‘한’을 노래했다. ‘달라$$$’에서 ‘나는 너와 다르다’라고 구별 지을 때, ‘너’는 대부분의 노래에서 비교 대상인 ‘다른 여자들’이 아니라 ‘나를 함부로 대상화하는 너’이다. ‘Uh-Oh’에서는 “넌 번쩍거릴 것만 찾느라 여길 번쩍 들어 올릴 난 못 찾았어”라고 자신을 뽐낸다. <프로듀스 101>과 <언프리티 랩스타> 출연 당시, 외모 평가로 공격받았던 전소연의 일갈은 ‘My Bag’에서 든든한 동료들을 자랑하는 ‘스왜그’로 확장된다. 레퍼런스가 없는 이 용감하고 다채로운 걸그룹의 다음 항해가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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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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