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투 썩어야 산다"더니… 정부 말바꿈에 속 썩는 기업
생분해 봉투 2024년까지 유예
정책 연속성 믿던 기업들 충격
"투자 독려하더니 팽당해" 호소
2025년 생분해 봉투 금지령
"몇년 뒤 문을 닫을 사업이었다면 누가 했겠습니까. 환경부가 생분해 봉투에 친환경 인증까지 해주며 생산을 유도하더니 이제는 손바닥 뒤집듯 사용을 금지하겠다네요." 지난 7일 경기도에서 만난 한 50대 생분해성 포장제품 업체 대표는 정부가 친환경 비닐봉투의 사용을 2025년부터 금지한 것에 대해 이 같이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으면 지난 3년 동안 인증 비용에 시설 투자까지 하는 사업자가 누가 있겠는가"라며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환경부가 식물성 생분해 소재인 PLA(Poly Lactic Acid)로 만든 친환경 봉투의 종합 소매업 사용을 2024년까지만 허용하면서 영세 제조업체들이 존폐 기로에 놓였다. PLA란 화학물질이 아닌 사탕수수 찌꺼기 등 비유전자 조작 원료(non-GMO source)를 사용해 환경호르몬이 없을 뿐 아니라, 땅에 묻는 등 특정한 조건에서 자연물질 상태로 그대로 분해되는 플라스틱이다.
8일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오는 24일부터 편의점, 일반 소매점 등 종합 소매업 매장에서 유상으로 판매되던 비닐봉투 사용이 금지된다. 생분해 봉투에 한해서만 2024년까지 사용 가능하다. 2019년 대규모 점포에서 비닐봉투 사용을 금지한 후 규제 대상을 확대한 것이다.
종합 소매업 매장에 생분해 봉투를 공급해온 업체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일회용품 줄이기는 전 세계적인 기조로 일반 비닐봉투의 사용 금지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지만, 대신 생분해 시장의 성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전 세계 생분해 플라스틱 시장은 2018년 3조5000억원에서 2023년 7조1000억원 규모로 연평균 약 15.1% 성장 중인 신성장 산업이다.
대다수 일반 봉투를 생산업체들은 2019년 대형마트의 일반봉투 사용 금지를 기점으로 생분해 봉투 생산을 위한 투자를 본격화했다.
환경부가 부여하는 환경표지 인증(EL724)을 위한 심사비로 품목별 1건당 평균 약 100만원, 여러 건이면 1000만원 이상을 지불했다.
지난해 2년 기한의 인증이 끝난 업체들은 갱신을 위해 추가로 약 300만~500만원의 비용을 추가로 낸 것으로 알려졌다. 업체들은 정책의 연속성을 믿고 인증과 갱신 비용을 지불한 것인데, 환경부가 올해1월부터 환경 표지 인증을 중단했다. 2018년부터 올해 5월22일까지 환경표지 인증을 받은 생분해성 포장품목 수는 952개에 달한다. 일반봉투에서 생분해 봉투로의 완전한 전환을 예상해 선제적인 시설투자를 한 업체들도 있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생분해 생산설비는 최소 3대가 필요한데 1대당 가격이 5000만원에서 1억원 수준"이라며 "대출, 땅값, 인건비가 들어갔는데 2024년 전에 본전은 커녕 이미 사업을 접거나 도산 직전인 업체들이 태산"이라고 비판했다.
편의점을 중심으로 납품해온 영세 제조업체들은 앉아서 수억원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CU, GS25는 2020년부터 일반 봉투를 생분해 봉투로 교체해왔다. 하지만 생분해 봉투 사용이 2024년까지로 제한되면서 지금의 발주 규모는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나마 남은 2년도 생분해 봉투업체들끼리 '더 싸게' 납품하는 제 살 깎아 먹기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무엇보다 국내 생분해 플라스틱을 별도 분리 배출하는 시스템이나 처리 시설 계획은 없이 생분해 봉투를 친환경 제품으로 독려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생분해 플라스틱 폐기물은 땅에 매립해야 생분해되지만, 매립할 땅이 없어 소각하는 국내 실정을 몰랐을 리가 없다"며 "몰랐다면 정말 문제고,분리 시스템을 빨리 갖춰 시장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 측은 "생분해 플라스틱 폐기물의 경우 역회수가 가능한 품목을 중심으로 별도 분리배출을 검토할 예정"이라며 "생분해 플라스틱의 현실적인 분해 조건을 검토해 그에 맞는 새 인증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한나기자 park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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