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사태 방향 튼 이복현?…금감원장 또 부각
기사내용 요약
시장불안 커지자 금융당국 진화…유동성 차입 규정 해석 등 길 터줘
"자금여력도 있고 조기상환 기대도"…흥국생명, 콜옵션 미행사 철회
[서울=뉴시스] 김형섭 기자 = 흥국생명이 채권시장을 요동치게 했던 5억 달러 규모의 해외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조기상환권(콜옵션) 미행사 결정을 철회한 것과 관련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실세론'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금융당국이 사태 해결에 나서면서 흥국생명이 방향을 튼 것으로 해석되는 가운데 금감원의 적극적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특히 이 원장이 흥국생명 사태 관련 메시지를 던진 직후에 공교롭게도 콜옵션 미행사 결정이 철회되면서 실세론이 더욱 부각되는 모습이다.
이 원장은 전날 외신기자들과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지난 2009년 우리은행의 전례에 비춰볼 때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에 금융당국의 개입이 필요했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 "조기상환에 대한 스케줄은 알고 있지만 시스템적으로 사전 개입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다만 시장에서 신종자본증권의 조기상환에 대한 기대가 있는 점과 흥국생명 측의 자금여력도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개별 금융사의 자율적 의사결정마다 당국이 개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원칙을 전제하면서도 흥국생명에 콜옵션 미행사 결정 철회를 간접 압박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흥국생명의 자금여력이 충분하고 금융시장의 기대도 있는 만큼 흥국생명의 결단을 기대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어서다.
이는 흥국생명 사태 초기에 금융당국이 취했던 스탠스와도 결을 달리 한다.
당초 금융위원회는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에 "일정·계획 등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으며 지속적으로 소통해왔다. 흥국생명 자체의 채무불이행은 문제되지는 않는 상황이며 기관투자자들과 지속 소통 중에 있다"고 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지난 4일 "해외에서, 또는 투자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면서도 "(콜옵션) 관행이 깨진다는 것에 대해선 여러 입장이 있다. 필요하면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는 회사 나름의 합리적 판단이며 건전성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 만큼 과도한 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문제는 아니란 입장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사실상 영구채 성격의 신종자본증권은 콜옵션 행사가 가능해지는 시점에 조기상환하는 게 암묵적 관례이며 투자자들도 콜옵션 행사를 전제로 사들인다는 점에서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 결정은 파장이 컸다. 2009년 우리은행 이후 1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기도 했다.
결국 흥국생명 뿐만 아니라 다른 금융사의 채권가격도 동반 급락했고 우리 정부·기업이 해외에서 발행하는 외화표시채권인 '코리안 페이퍼(한국물)'까지 여파가 미쳤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도 서둘러 사태 해결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금감원이 주축이 돼 기획재정부, 금융위 등과 대응 방안을 협의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흥국생명은 전날 이 원장의 메시지가 나온지 몇 시간 되지 않아 "이번 결정은 최근 조기상환 연기에 따른 금융 시장 혼란을 잠재우기 위함"이라며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를 전격 발표했다.
5억 달러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에 필요한 자금은 흥국생명의 환매조건부채권(RP)을 주요 시중은행들이 매입해 4000억원을 조달하고 1000억원은 보험사들이 대출로 조달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모회사인 태광그룹이 자본확충을 지원하는 식이다.
이같은 구도는 금융당국 차원의 개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보험사의 유동성 유지 목적 자금 차입 관련 규정 해석을 명확히 해 시중은행 RP 매입과 보험사 대출 등을 통한 자금조달 길을 흥국생명에 열어준 것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에 태광그룹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본확충을 지원하겠다'고 한 것도 이 원장의 경고성 메시지에 따른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전날 이 원장은 외신기자 오찬간담회에서 "단기성과에만 집착해 시장상황 변화에 대비한 선제적 리스크관리를 소홀히 한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그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한 조치를 병행해 도덕적 해이를 막겠다"고 한 바 있다.
이는 레고랜드발 자금경색 사태로 불거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와 관련한 언급이기는 하지만 흥국생명 사태와 관련해서도 흥국생명과 모기업 태광그룹의 자구노력이 없다면 도덕적 해이로 볼 수 있는 경고장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다만 금감원은 이 원장이 흥국생명 사태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시각에 선을 긋는 모습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 뿐만 아니라 기재부, 한국은행, 금융위 등이 계속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협조해 왔지만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는 어디까지나 흥국생명의 판단과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phite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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