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학용어의 조건] ⑧'반쪽짜리' 정부부처 용어 심의 협의회…"수장이 의지 보여야"

고재원 기자 2022. 11. 8. 13:5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체불명의 폐렴 환자들이 격리됐던 중국 우한병원. 병원 홈페이지 캡처

2019년 12월 별안간 인류에게 닥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은 초기 유행 당시 폐렴을 유발하는 정체 불명의 바이러스로 불렸다. 중국 우한에서 처음 환자가 속출해 ‘우한 폐렴’으로도 불리다 약 2개월이 지나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비드(COVID)-19’를 공식 용어로 지정했다.

당시 한국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는 코로나19에 대응하는 한국어 용어로 ‘코로나19’를 제시했다. ‘코로나19바이러스감염증-19’를 줄인 말이지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용어와 연결성이 없어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이 나왔다. 

용어 선정과정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어떤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코로나19란 용어가 선정됐는지 등이 모두 '깜깜이'였다는 것이다. 한 의과학계 관계자는 “몇몇 사람들의 결정 하에 코로나19로 용어가 정해졌다는 걸로 들었다”며 “왜 코로나19로 정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감염병이 확산 중인 급박한 상황이지만 용어 선정에 숙고가 필요했다는 지적이다. 

8일 박주화 국립국어원 연구사에 따르면 새로운 용어 선정은 보통 소관부서에서 진행한다. 코로나19 역시 소관부서인 질병관리본부가 선정한 용어다. 외국에서 들여온 병명이라 '우한폐렴'이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등 여러 용어로 불리다 코로나19란 용어로 통일했다.

원래 이름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를 줄인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 나왔다. 코비드-19(COVID-19)라는 명칭을 한글로 적었을 때 영어와 달리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원래 의미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를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해석만 무성했을 뿐 코로나19란 용어 선정에 대한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힌 바 없다.  

정부가 쓰는 용어는 보편적 용어로 자리 잡는 경우가 많다. 정부의 용어가 언론을 통해 전파되며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은 “공공성을 띤 전문용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과학기술용어, 학술용어, 산업계의 용어를 국민이 알기 쉽게 다듬고 분야 내외간 체계적으로 통일하는 노력을 해야한다”며 “정부 업무 수행 기관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법에도 명시돼 있다. 실제 국어기본법 제17조 제1항에 따르면 국가는 국민이 각 분야의 전문용어를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표준화하고 체계화해 보급해야 한다. 제1항에 따라 각 부처에서는 전문용어의 표준화 및 체계화를 위해 중앙행정기관에 전문용어 표준화협의회를 두게끔 되어 있다.

전문용어 표준화 절차. 국립국어원 제공

부처별 협의회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해 5명 이상 20명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협의회 위원장은 해당 부처의 국어책임관이 되고, 위원은 해당 부처의 전문용어 관련 부서 소속 공무원이나 국어 및 전문용어 관련 분야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맡아야 한다. 

각 부처 협의회는 1차 심의 역할을 한다. 소관 분야나 학술단체, 사회단체 등 민간 분야에서 심의 요청한 전문용어 순화와 표준화에 관한 사항을 심의한다. 순화나 표준화가 필요한 용어를 발굴하는 과정이다. 용어 발굴 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심의회에 심의를 요청한다. 국립국어원 검토 사안을 반영해 전문용어 표준안을 심의 확정한다. 확정된 표준안은 다시 각 부처에서 보급과 확산에 힘 쓴다.

문제는 부처들이 협의회 설치에 미온적이라는 점이다. 2017년 국어기본법이 개정되면서 중앙행정기관에 협의회를 두도록 의무화했으나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설치를 안한 부처가 여전히 존재한다. 8일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정책과에 따르면 의무 설치대상 47개 기관 중 18개 기관이 협의회를 아직 설치하지 않았다. 2019년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글문화연대와 발간한 국정감자료집에 따르면 45개 부처 중 22개가 협의회를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때와 비교해 크게 줄지 않은 숫자다. 

부처 수장이나 국어 책임관의 인식 차이로 인해 협의회 설치에 미온적인 부처가 나타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체부 소속 표준화협의회 관리 담당자는 "'용어 순화가 꼭 필요하다' 혹은 '꼭 변화를 끌어가겠다'는 의지가 있는 기관들에서 협의회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며 "최근 국토교통부와 농림축산식품부 등이 모범사례로 꼽힌다"고 말했다. 

국립국어원 제공

협의회 운영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무 설치대상 47개 기관 중 29개 기관이 협의회를 두고 있으나 절반 가량은 회의를 정례 개최하지 않고 필요시 개최하고 있다. 가령 새로운 용어가 타 부처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주 발생하는 의과학 분야를 소관하는 보건복지부가 그렇다. 2019년 협의회 첫 설치 이후 올해 들어 처음으로 회의를 개최한 것으로 확인됐다. 새로운 용어어가 자주 등장하는 과학기술 분야를 소관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역시 지난해 한 차례 협의회를 개최하고 올해 협의회 회의는 아직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회의를 개최하고 나면 순화나 표준화가 필요한 용어를 발굴해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심의회에 심의를 요청한다. 올해 4개 부처가 심의를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는 7개 부처, 2020년에는 8개 부처가 심의를 요청했다. 이마저도 문체부 국어정책과에서 실적 관리를 시작한 시점과 맞물린다. 실적 관리 이전에는 심의를 요청하는 기관이 더 적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국어원은 2019년 6월부터 '전문용어 표준화 민관합동 총괄 지원단'을 운영하고 있다. 정부 정책 추진 과정에서 사용되는 어려운 전문용어를 국민이 이해하기 쉽도록 정부 부처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박 연구사는 "한 해에 2개 부처 정도를 지원하고 있다"며 "표준화나 순화가 필요한 용어를 발굴하는 작업을 돕는데, 올해는 국토부와 병무청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표준화협의회와 지원다을 적극 활용해 부처 간 손발을 맞춰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코로나19 이후 다가올 새로운 감염병 사태 때 빠르고 올바른 대응이 가능할 것이란 조언이다. 

권재일 서울대 언어학과 명예교수는 "부처마다 두게 되어 있는 전문용어 표준화협의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협의회를 형식에 그치게 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운용하면서 국립국어원과 협력해서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문화원연합회 쉬운 우리말 쓰기 취재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