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응급의료센터, 119보다 20분 늦게 참사 파악…통합시스템 부재
'소생 가능한 환자' 우선 이송 미준수…DMAT 지휘권 부여 필요
(서울=뉴스1) 구진욱 권진영 기자 = 이태원 참사 당시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이하 응급의료센터)와 서울종합방재센터(119 상황실) 대응 사이에 20분 이상 시차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응급의료센터는 119 상황실과 정보를 공유하며 피해 상황을 24시간 모니터링하고 구급대원에게 병원별 가용 병상 정보를 제공한다. 의료지원이 필요한 경우 보건소 신속대응반과 재난의료지원팀(DMAT) 출동을 요청한다.
이번 참사 대응 과정에서 응급의료센터와 119 상황실은 전화로 상황을 공유했다. 이 때문에 119 상황실에 비해 응급의료센터의 상황 파악과 대응은 늦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강력 사건 발생시 피해자의 위치 확인과 신변 보호를 위해 신속한 공조가 이뤄지는 112와는 다른 셈이다.
실제로 응급의료센터와의 대처는 119 상황실에 비해 적게는 5분 많게는 45분가량 늦었다. 사상자 구조의 골든타임이 수분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전문가들은 재난 상황시 소방과 응급의료센터의 유기적인 협조가 가능한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와 함께 응급의료상황실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업무 수행에 한계가 분명하기에 인력난을 해소해줘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소방으로부터 접수 10시 38분 '이미 늦었다'…상황팀 인력부족 지휘 여력 없어
8일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제출받은 응급의료센터 대응 일지에 따르면 당시 소방에 처음 사고가 접수된 시각은 오후 10시15분이었다. 그렇지만 재난 사고시 많은 사상자의 구조에 필수적인 응급의료센터로의 첫 공조 요청은 10시38쯤으로 약 23분가량 늦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은 서울 전 권역의 인력 및 장비를 모두 출동하는 소방대응 3단계를 오후 11시48분쯤 발령했지만 응급의료센터가 명백한 재난 상황이라고 판단하는 경계단계(Code Red)를 발령한 시각은 0시33분으로 약 45분 정도 늦었다.
응급의료센터 상황팀은 이태원 참사 당시 소방이 서울구급상황관리센터에서 모바일로 접수한 사고 현황을 확인하고, 유선으로 한 번 더 접수된 현황을 파악해야만 했다. 1분 1초가 급박한 순간에서 소방에 일방적인 정보 공유를 받는 상황팀의 대처는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재난거점병원은 해당 권역 안에서 다수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고시 DMAT를 10분 내 출동이 가능하도록 상시 편성해 놓고 있다. 이태원 참사 당시 0시 이전에 출동 요청을 받은 거점병원 서울대병원과 한양대병원, 강동경희대병원 등 단 3곳뿐이다.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서울대병원 DMAT팀의 도착시각은 오후 11시20분으로 이마저도 사건 발생 시각보다 1시간5분이 지나서였다.
이와 관련 의사로 근무할 당시 DMAT 소속이었던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곧바로 경계단계(Code orange)로 처음부터 해야 했다"며 "정확한 상황 파악 역시 늦었다. 서울과 수도권의 DMAT도 곧바로 다 불렀어야 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인 A씨 역시 "재난 상황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재난사고 시 현장과의 유기적인 소통을 할 수 없다는 게 문제"라며 "압사 사건의 경우 정말 촌각을 다투는 사고로 이유와 상관없이 현장에 늦게 도착했다는 사실은 (많은 사상자 발생의 원인에) 결정적이다"고 평가했다.
재난 상황 시 제대로 된 지휘를 할 인력이 부족한 문제 역시 여과없이 드러났다. 이태원 참사 당시 응급의료상황실에는 당직 근무자 2명을 포함해 총 5명이 근무했다. 현장 지휘소와의 소통, 중‧경상자 파악 및 이송, 장례식장 파악, DMAT 요청 등 다양한 업무를 맡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었다.
중앙의료원은 올해 하반기 응급의료센터에 4명 등을 추가로 채용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결원율이 여전히 15%에 육박해 정원 부족 상태는 해결되기 어렵다. 특히 응급의료센터 내 재난 초기 의료 대응을 통합·조정하는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은 정원 32명 중 13명이 부족해 소규모 충원으로는 '인력난'을 해소하기 역부족이다.
중앙의료원이 지난 7월 정부에 제출한 '공공기관 인력증원 요청안'을 보면 22명을 중앙응급의료센터 본부에 충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17개 지역의료센터에 대한 요청 인력 11명까지 포함하면 33명이 필요한 상황이다.
중앙의료원은 △응급환자 이송체계에 대한 질 관리 역할 강화 △응급의료분야 취약지 총괄 지원 △중증응급환자 이송체계 구축 등을 위해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상당 부분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나타난 응급의료 체계의 미비점과 직‧간접적으로 관련한 내용들이기도 하다.
◇소방-중앙응급의료센터 이원화 체계 컨트롤타워 역할 못 해 중·경상자의 경우 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상황팀이 의료기관별 가용 병상 현황 등을 바탕으로 구급차들의 이송을 관제했다. 심정지자 이송은 상황실과 소통 없이 소방본부 현장 지휘소의 판단으로 이뤄져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다.
특히 소생 확률이 낮은 심정지자와 사망자가 가장 가까운 병원에 몰리고 중환자는 거의 이송되지 않아 병원 배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소방당국이 국회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성만 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병원 이송현황'에 따르면 29일 밤 11시15분부터 30일 오전 6시5분까지 서울과 수도권 병원으로 이송된 피해자 198명 중 순천향대 병원으로 55명의 피해자가 이송됐다. 그중 사망자는 17명, 심정지자는 37명이며 중증환자는 단 1명뿐이었다.
실제로 30일 새벽까지 총 82명이 이송됐으며 그중 경상자 2명과 중상자 1명을 뺀 79명 숨졌다. 상황팀은 30일 오전 3시10분쯤이 돼서야 응급실에 임시 대기 중인 사망자 72명을 임시집결 장소로 이동 요청했고 서울과 수도권 인근 병원 영안실로 옮겼다.
A교수는 "재난 상황에서는 가능성 있는 환자부터 이송해야 하며, 심정지의 경우도 제일 후순위로 이송하는 게 원칙이다"며 "이원화된 지휘체계로 사망한 희생자들에 의료자원이 낭비되고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재난 상황에서 DMAT 팀장이 현장의 지휘권을 맡지 못하는 의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분류된 환자에 대해 적재적소의 병원으로의 이송 판단은 전문가인 DMAT가 적절하다는 이유에서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재난 상황시 현장 의료소장은 지역구 보건소장이 맡는다. 현장 의료소장은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한 DMAT의 팀장에게 현장 지휘권을 위임할 권한은 있지만 강제성은 없다.
실제로 최재원 용산보건소장은 현장에서 피해자들의 중증분류를 DMAT에게 지시했다. 하지만 분류된 피해자들에 대한 병원 이송을 직접 지시한 최 소장은 사건 당시 순천향대 병원에 80여명의 사상자가 몰렸던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에 응급의료센터 관계자 B씨는 "재난 상황시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DMAT팀"이라며 "보건소장과 공동 소장을 맡는 등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kjwowe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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