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국민 안전 위한 민방위 재정립 절실하다

2022. 11. 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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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前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핵무기 미사일 마구잡이 발사

북한 독재 위험성 갈수록 증폭

울릉도 대피 혼란 어디든 재현

현대전에선 전후방 따로 없어

공습 대비한 훈련 힘들지 않아

스위스 민방위 시스템 배워야

간단없는 북한의 도발에 대한 현 정부의 상응한 대응은 필요하고도 잘한 일이다. 핵실험, 갖가지 종류의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도발은 김정은 집권 이후 더 심하게 나타났고, 이에 대해 으르고 달래기만 해봐야 비핵화는커녕 저들의 핵무력만 증강시켜 주는 셈이 돼 버린 결과를 이제 국민은 똑똑히 봤다. 우리 정치권 일각에서는 북한의 체제를 보장해 줘야 한다는 엉뚱한 주장도 한다. 북한의 체제라는 게 무언가. ‘인민공화국’이라는 거짓 간판을 걸고 3대째 군림하는 세습 독재체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위험성은 물론이고 그 밑에서 신음하고 있는 주민들의 삶을 생각하면 이런 체제가 무슨 보장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올 들어 계속된 북한의 장단거리 가리지 않는 다양한 미사일 발사 등에도 우리 국민의 일상생활이 흔들리지 않고 금융시장에도 별다른 리스크로 작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남북한 간 긴장은 일상화해 있다고 나라 안팎에서 보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안보 리스크에 대한 대비는 결코 소홀해서 안 된다. 군사적 대응 능력, 국민 일반의 안보의식과 함께 꼭 필요한 것이 유사시 비무장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지난주 북한이 쏜 미사일이 울릉도를 향한다고 할 때 그곳 주민들이 대피하는 데 혼란이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래서 그 비슷한 상황이 나와 내 가족, 내 이웃에게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봤다. 어디로 피하지? 일단 공습은 피해야 반격을 하든 응징을 할 게 아닌가. 우리 아파트 지하 차고? 대피하기에 충분히 깊은 곳인가? 아니라면 충분히 깊은 지하시설이 근처 어디에 있지? 그런 상황에서 차량 이동이 될까? 걸어서는 얼마나 걸릴까? 이런 의문을 오래전부터 친지나 이웃, 한 번은 민방위 훈련 중 같은 방에 모여 있던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물어봤지만 모르기는 매한가지였다.

20여 년 전 직업상 스위스 제네바에 근무하게 돼 그곳 샹펠이라는 아파트 구역에 지은 지 15년 정도 되는 아파트를 월세로 얻게 됐다. 계약하던 날 중개인의 안내로 우리 가족이 사용하게 될 공간을 둘러봤다. 지하주차 공간이 고유번호로 지정돼 있는 외에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세대별 공습대피시설을 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주차장보다 더 아래쪽에, 아주 두껍고 육중한 철문을 열면 한 평 남짓한 세대별 대피소가 칸막이로 줄지어 있고 구석에는 생수 팩이 놓여 있었다. 그 나라에는 아파트뿐 아니라 주택에도 개별 또는 공동 대피소가 지정돼 있다는 사실도 얼마 뒤에 알게 됐다. 정말 놀라운 발견이었다.

스위스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중립국 지위를 유지하면서 안보상의 이유로 이런 제도를 도입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스위스라는 나라를 공격하겠다고 위협하는 세력이 있는지 알지 못할 정도다. 이에 비하면, 지난 70년간 휴전 상태가 계속되고 북한의 도발이 끊이지 않는 우리나라의 민방위 태세는 지나치게 안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여러 차례 민방위 훈련에 참여해 봤지만, 막상 유사시 내가 피할 장소에 관한 내용은 듣지 못했다. 북한에서 더 가까운 서울이 이러니 울릉도처럼 주민 수가 많지 않은 곳에서도 공습경보가 발령되자 대피하기 위해 초기 골든타임에 우왕좌왕하는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대전은 막강한 무기의 파괴력으로 인해 전후방이 따로 없다. 그래서 자기보호 수단이 없는 비무장 민간인이 외려 더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우선 서울시 경우를 생각해 보면, 시내에 지하시설물이 많이 있다. 아파트 동별로, 또 통반별로 유사시 걸어서 대피할 수 있는 시설을 지정해 평소에 세대별로 잘 알아두도록 하는 게 어려운 일일까? 행정력이 많이 필요한 어려운 작업은 아닐 것이다. 이 정도의 대비는 있어야 지금과 같은 안보 리스크에도 일상이 흔들리지 않는 필요조건은 갖췄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혹시, 정치권 일각에서 ‘식자우환(識字憂患)’ 또는 ‘안보를 빌미로 한 국민 길들이기’ ‘안보 장사’ 같은 유의 발목잡기식 주장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해서만이라도 실사구시(實事求是)해야 할 때다. 사실을 보고 해결책을 마련하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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