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공명’을 만나고, 그림을 듣고 보다.. 시간이 빚어낸 겹의 미학 ‘옻칠’
회화 정연연, 콘트라베이스 최진배 협업 ‘MOON PROJECT’.. 13일까지
구기선 옻칠 공예전 ‘전통과 변용’.. 12일~22일까지
# 시시각각 달라지는 계절. 흘러가는 시간을 온전히 제 것처럼 느끼면서 자연 속에 오감을 집중해 '감정'을 포착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널린 옷가지처럼 이리저리 펼쳐진 순간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를 둘러싼 일상이자 스치고 지나가는 시간을 닮았습니다.
억지 공감과 소통을 유도하지는 않습니다. 한 발 물러서 바라보면 보입니다. 가라앉아 쌓여 있던 감정을 끄집어 꺼내라 조용히 말을 건넵니다.
침묵의 배려 같으면서, 끊임없이 내면의 감정을 미세한 전류처럼 자극하며 '감정의 질감', '감정의 온도', '감정의 소리' 등 타이틀로 전시를 가졌던 감정시리즈 개인전을 압축해 '감정의 공명' 전을 선보이는 김형석 작가입니다. (갤러리감저)
# 다른 장르 예술가들의 협업 무대, 전시입니다. 아트랩와산 기획으로 시각예술과 음악 그리고 영상이 어우러진 프로젝트 창작 작품을 선보입니다.
미술 등 타 장르가 음악을 만나 작품을 재현하는, 그런 시도가 새로워서 눈길이 가는건 아닙니다. 감정의 울림, 그 파장의 강도와 수준이 어디까지 다다를지, 농도와 방법이 궁금합니다.
제주에서 바라본 달밤과 거기에서 느낀 영감을 추상으로 표현한 작품이 음악과 어우러집니다.
작가에게 안정과 치유를 가져다 준 제주, 환경적 요소들을 더한 작품들이 어떻게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면서 승화돼, 시청각적으로 표현될 지 주목해 보길 권합니다. 정연연 작가와 최진배 음악가가 함께 한 'MOON PROJECT' 전입니다. (아트랩와산)
# 수없이 칠하고 칠하며 쌓인 형태와 색입니다. 들인 정성만큼 발현되는 소재가 ‘옻’이자 ‘옷칠’입니다.
작가는 그런 옷칠에서 새로움을 찾으려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작업할지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졌"다는 작가는, 그러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19세기 '나전연엽일주반'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작품을 대하는 조선 장인의 절제된 자유로움에서 눈이 뜨였다"며 "경직된 시대 속에서도, 내면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정형적이면서도 비정형적인 요소들을 아우르는 정신을 작품에 반영하고 싶다"며 '전통과 변용'이라는 주제로 작품 제작에 나섰습니다.
부제로 ‘절제된 자유로움’을 내건 구기선 작가의 옻칠 공예전입니다. (심헌갤러리)
■ ‘제주, 감정의 공명(共鳴)’ 전.. 27일까지 갤러리감저
13년 전 제주로 이주해 본질적 사진작업에 더 몰두해온 김형석 작가의 전시에선 한층 더 내면에 깊이 집중한 작품들이 기다립니다.
앞서 작가는 '제주의 시', '모로코 온 더 로드', '3Guys, 3Days' 등의 전시를 통해 '시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교감, 보이지 않는 장면 너머에 대한 기억'을 반추했습니다.
작가는 "어떤 감각은 감정의 기억을 소환하고 시공간을 넘나들게도 만든다"며 "비스듬히 떨어지는 빛줄기에서, 바위 위의 거친 질감에서, 겨울 풀밭의 이슬내음에서 발견되곤 하는 감정의 조각들을, 마치 끊어지기 쉬운 그물을 다루듯 조심스레 건져 올린다. 보는 일, 느끼는 일, 그리고 사진을 찍는 행위를 통하여 잃어버린 소중한 감정들을 다시 한번 만나는 듯하다"고 사진 작업에 몰두하는 자신의 감정을 설명했습니다.
전시를 주관한 황정민 큐레이터(갤러리사이)는 "김형석의 작품은 오랜 시간 누적된 섬세한 관찰의 기록으로, 세밀하게 중첩된 이미지를 화면에 옮겨내면서 감정의 서사를 완성시킨다"며 "긴장된 움직임에서 생성된 순간의 화면은 현상과 대상을 묘사함을 넘어 경험하지 못했던 신비롭고 낯선 공명, 생명체의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고 소개했습니다.
작가는 홍익대학교(광고디자인과) 졸업 후 일본 타마미술대학에서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2010년 제주로 이주한 후, 10여 차례 개인·단체전 등을 통해 작품세계를 선보였습니다.
2022년 제주문화예술지원사업 선정 전시로 갤러리사이가 주관하고, 제주자치도와 제주문화예술재단이 후원합니다.
전시는 지난 5일 서귀포시 대정읍의 ‘갤러리감저’에서 시작해, 오는 27일까지 이어집니다.
■ 정연연(회화) × 최진배(콘트라베이스) 협업 'MOON PROJECT'
두 예술가의 협업 무대입니다. 시각예술가인 정연연 작가와 최진배 베이시스트입니다.
전시는 아티스트레지던시와산(운영:아트랩와산)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정연연 작가의 회화 작업과, 여기에 영감을 받아 최진배 베이시스트가 제작한 연주곡으로 구성했습니다.
정연연 작가는 지난 8월 개인전 '연과 연'을 통해 3개월에 걸친 레지던시 창작의 성과를 내놓은 바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선 앞서 개인전과 다른, 작가가 느꼈던 삶에 대한 불안감과 우울 그리고 설렘과 위로, 감사의 감정들을 담아냈습니다.
출품작은 세필로 인물을 그리던 기존 작업과 달리 붓질과 안료의 운영, 건조와 부식 등 복합적 기법으로 얻어낸 화면들이 두드러집니다.
밤하늘의 달을 유추 할 수 있는 조형과 서늘함과 온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풍부한 색감도 특징입니다.
이같은 작품들로 채워진 전시공간에선 달밤의 정취와 함께 작가가 제주에서 느꼈던 고요함과 가슴 속 뭉클함도 느낄 수 있습니다.
더해지는 최진배 베이시스트의 연주는 정 작가의 'MOON WAVE'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저음악기인 콘트라베이스 한 대로 'BlueWaves'와 '와산에서' 그리고 드뷔시의 'Claire De Lune(달빛)'을 연주합니다.
제주의 밤바다 소리 위에 콘트라베이스로 재해석된 드뷔시 달빛이 시각예술 작품과 전시공간의 분위기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고, 두 번째 트랙인 'Blue Waves'는 작품에서 느꼈던 블루스적인 느낌을 살려 정해진 음정이 없는 블루 노트의 사용과 감정의 기복을 표현합니다.
세 번째 트랙인 '와산에서'는 밝고 포근하며 아이 같은 순수함과 해맑음이 있는 와산의 풍광을 표현했습니다.
회화작품과 연주의 모습을 함께 담은 영상작업도 함께 합니다.
전시는 오는 13일까지 아트랩와산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 '옻의 매력' 구기선 옻칠 공예전.. 오는 12일~22일 심헌미술관
모호하고 한 치 앞도 예측이 어려운 펜데믹시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멘붕' 상태에 빠졌던 작가는 조선 장인의 자유로움에서 새로운 방향성을 찾았습니다.
정형화된 틀을 요구하는 시대 속에서도, 사고의 폭을 확장한데서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됐다는 작가는 '전통과 변용'이란 주제 아래 제주의 자연을 '협저태' 기법으로 표현합니다.
‘협저태’는 옻칠 기법 중 하나로, 석고나 아이소핑크 등 재료로 형태를 만들어 삼베를 옻칠액과 함께 굳혀가면서 겹겹이 이어 붙이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삼베를 호칠(옻칠과 찹쌀풀을 혼합한 접착제)로 여러 번 겹쳐 바르고, 형태를 제거한 뒤에 만들어진 태(胎) 위에 다시 수 차례 반복적으로 옻칠을 합니다.
특별한 장식 없이도 안료를 통해 색을 만들어 제주의 자연미를 표현하려 했습니다.
시간과 정성을 들이면 들인 만큼, 옻칠은 오묘한 색을 뿜어내면서 일상에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공예품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오는 12일 심헌미술관에서 시작하는 전시는 22일까지 진행합니다.
2002년 한신대(철학과)를 졸업한 작가는 '모두다, 모이면'(서울.2015), '전통을 잇다'(서울.2017), '청주 국제공예 공모전'(청주. 2021) 등 다양한 개인·단체전에 참여했고 한국옻칠공예대전 대상(국무총리상.2015), 한국공예대전 특별상 (2017) 청주국제공예공모전 입선(2021) 다수 수상 실적이 있습니다. 현재 개인공방을 운영 중입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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