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같은 모녀? 징글징글한 현실 모녀!

서정민 2022. 11. 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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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10일 개봉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김세인 감독의 장편 데뷔작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10일 개봉)는 모녀 사이를 지독하리만치 깊게 파고든 영화다. 찬란 제공

마트 주차장에 세운 경차 안에서 두 여자가 다툰다. 조수석의 여자가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가자 운전석의 여자는 분한 듯 노려본다. 순간 자동차가 급출발해 뛰쳐나간 여자를 덮치는 사고가 발생한다. 운전석의 여자는 보험사 직원에게 급발진을 주장하지만, 사고로 다리를 다친 여자는 고의라고 확신한다. 결국 둘은 법정에서 마주한다.

두 여자는 다름 아닌 모녀 사이. 운전대를 잡은 엄마 수경(양말복)과 옆에 탄 딸 이정(임지호)은 그날도 여느 때처럼 싸웠다. 남편이자 아버지의 부재 속에 함께 살아온 둘은 속옷까지 공유할 정도로 허물없는 듯 보이지만 사실 어긋날 대로 어긋난 사이다. 무심한 엄마에게서 마땅히 받았어야 할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여기는 딸과, 홀로 딸을 키우기 위해 자신의 많은 것을 희생했다고 여기는 엄마는 서로를 못마땅해하면서도 의존하며 살아간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김세인 감독의 장편 데뷔작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10일 개봉)는 모녀 사이를 지독하리만치 깊게 파고든 영화다. 찬란 제공

신예 김세인 감독의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이자 장편 데뷔작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10일 개봉)는 모녀 사이를 지독하리만치 깊게 파고든 영화다. 김 감독이 실제 자신의 엄마와 속옷을 공유했던 경험에서 따온 제목은 ‘모녀’라는 말 없이도 모녀 사이의 많은 것을 함축한다. 김 감독은 “주변을 보면 모녀는 종종 속옷을 같이 입어도 부자가 그런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며 “어쩌면 모녀가 너무 많은 것을 공유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여느 영화라면 지지고 볶고 싸우던 모녀가 결국엔 화해하고 희망의 끈을 부여잡으며 끝냈을 터.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럴 생각이 없다. 모녀의 저 밑바닥 감정까지 날것 그대로 끌어내고는 적당한 봉합 대신 서로에게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는 여정으로 나아간다. 마지막에 수경이 피리를 불면서 삐뚤빼뚤한 음정으로 끝내 연주를 완주하는 장면과 이정이 혼자 오롯이 입을 속옷을 사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김 감독은 “한 모녀를 봉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두 여자가 의존하던 서로에게서 벗어나 각자의 온전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랐다”며 “두 사람이 개별적 역사를 지닌 개별적 존재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김세인 감독의 장편 데뷔작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10일 개봉)는 모녀 사이를 지독하리만치 깊게 파고든 영화다. 찬란 제공

영화는 모녀 바깥의 관계에도 주목한다. 이정은 소심한 자신과 달리 똑 부러진 직장 동료 소희(정보람)에게 다가가 마음을 터놓으려 하고, 수경은 자신을 마냥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애인 종열(양흥주)에게 의지한다. 하지만 이 관계에서조차 두 사람은 벽에 부딪히며 상처를 입는다. 김 감독은 “이 영화는 모녀 서사이기도 하지만 사실 관계의 서사”라며 “수경과 이정이 다른 인물과의 관계에서 즐거움과 실패의 경험을 겪고 학습하면서 결국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우직하면서도 섬세한 연출과 더불어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도 몰입도와 설득력을 더한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받은 임지호에 대해 심사위원을 맡은 배우 엄정화는 “천천히 움직이며 켜켜이 쌓아가는 감정선은 관객들을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고 호평했다. 남선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어머니라는 존재는 결국 엄마 놀이를 하고 있는 딸일 뿐’이라는 엘레나 페란테 소설의 한 구절을 떠오르게 하는 배우 양말복의 존재감이 대단하다”고 치켜세웠다. 양말복은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독립스타상(배우 부문)을 받았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김세인 감독의 장편 데뷔작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10일 개봉)는 모녀 사이를 지독하리만치 깊게 파고든 영화다. 찬란 제공

영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5관왕을 비롯해 서울독립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합천수려한영화제 등에서 수상했다. 또 독일 베를린국제영화제, 이탈리아 우디네극동영화제,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국제영화제,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국제영화제 등 여러 국외 영화제에도 초청돼 호평받았다.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위원장 크리스티나 노르트는 “작품 속 모녀 관계는 감독이 창조한 세계 속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구현됐으며, 두 주연배우의 놀라운 연기를 보며 때때로 숨이 멎기도 했다”고 평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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