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공 직전 자금조달 실패...초우량 기업도 돈줄 말랐다
추가대출 못받은 조합, 법정 최고금리 20% 돈빌려
단기채시장 급랭에 CP로 내몰려…실물경기 직격탄
#. 인천에서 지역주택조합 정비사업 시공을 맡은 A 중견 건설사는 준공 직전 조합이 자금 조달에 실패했다. 시공사는 추가 공사비를 요구했는데, 기존 금융기관뿐 아니라 사금융에서조차 추가 대출을 거부했다. 사면초가에 처한 조합은 결국 법정 최고금리 수준인 연 20% 이율로 기존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추가 자금 모집을 시작했다.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돈맥경화’가 금융시장을 덮치면서, 가계 경제에도 스며들 태세다. 당장 중견기업과 대기업 할 것 없이 돈줄이 말라붙으면서, 높은 금리에도 돈 대는 투자처가 없는 ‘한국 신용 위기’가 촉발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진다. 물가상승에 대응하며 금리 인상에 나서던 한국은행의 통화정책도 완급을 조절해야 한다는 시장의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관련기사 3·4·5·16면
재계 2위 SK는 사상 처음으로 장기 기업어음(CP)을 발행했다. 신용등급 AA로 우량 등급인 SK마저 회사채 대신 CP를 발행한 것은, 앞서 초유량 등급(AAA)인 한국전력 채권이 연 6% 안팎 금리에 쏟아져나왔기 때문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은 사실상 전면 중단상태다.
특히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최전선인 단기채 시장은 이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로 돌아갔다. 지난 1일 중견 건설사인 한신공영 회사채가 연 65%에 투매되며 시장을 놀라게 한 데 이어, 흥국생명과 DB생명이 나란히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 및 연기를 결정하며 시장을 더 위축시켰다. 흥국생명은 행사를 번복했으나 시장 충격은 고스란히 남았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CP 91일물 금리(A1·민평평균)는 4.94%로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통안증권 91일물도 3.331%로 최고치다. 주요 단기채 금리는 금융위기 이후 약 14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상태다.
단기채 시장 위축은 외화채권(KP) 약세로도 번지고 있다. 최근 수년간 저금리·저환율 상환에서 기업들은 KP발행으로 돈을 조달했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내년 돌아오는 국내기업 발행 KP만기만 약 250억달러(약 34조6500억원)로 추정된다.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금융시장 신인도도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앞으로의 자금 조달도 쉽지 않아 보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0월에 이어 11월도 회사채 시장은 발행액보다 상환액이 많은 ‘순상환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기관투자자들은 이미 연말 채권 평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기에 북클로징(회계연도 장부마감)을 하고 있다. 한 증권사 임원은 “지금 증권사 입장에서는 북을 일찍 닫은 곳이 실적 측면에서 위너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묶였던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지갑을 열었던 정부도 더 이상 풀 돈이 넉넉지 않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 국채(KTB) 국제 콘퍼런스’에서 “우리 국채 발행 잔액도 사상 최초로 1000조원을 돌파하는 등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때문에 단기자금 시장 경색을 막기 위한 일시적 유동성 공급보다는 한은의 통화정책 속도조절 등 근본적인 정책 카드를 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금융지주는 물론 정부에서도 시장안정을 위한 유동성 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오히려 시장 위기는 단기시장에서 KP시장까지 확대되는 분위기”라며 “결국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속도 조절 가능성이 강하게 시사하든지, 인상 사이클을 종료하든지 정부와 통화정책을 맞추기 전까진 이런 분위기가 풀리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문제는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 기업 활동이 위축되면 결국 실물 경기 침체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단기 자금조달이 어려워져 기업 환경이 악화되면 결국은 생산 및 소비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결국 국내총생산(GDP)에도 영향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경기침체 우려로 소비까지 위축되며 기업 수익성은 이미 악화되고 있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4일까지 시장 전망치가 있는 상장사 118곳의 실제 영업이익이 증권사 전망치보다 10% 이상 낮은 기업은 33곳으로, 전체의 32.2%가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서정은·양대근·유오상·김성미 기자
lu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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