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 잃을 때마다 속삭인 말 “시는 나를 사랑한다, 시가 나를 사랑한다”···신형철 <인생의 역사>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인생의 역사>(난다)를 냈다. 4년 만에 출간한 책 부제는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다. 2016년 한겨레에 연재한 ‘신형철의 격주시화’를 주로 엮었다. 프롤로그를 새로 쓰고, 연재와 연관된 평론 5편을 부록으로 실었다.
‘내가 겪은 시를 엮으며’. ‘책머리에’ 제목이다. “내가 조금은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시를 읽는 일에는 이론의 넓이보다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겪으면서, 알던 시도 다시 겪는다”고 썼다.
시는 행(行)과 연(聯)으로 이뤄진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대단한 예술”이다.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걸어가면서(行) 쌓여가는(聯)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도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니까.”
이 ‘시화(詩話)’엔 ‘사랑’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인생의 역사’를 이루는 게 사랑인 셈이다. 다음은 주어와 목적어 순서를 뒤바꿔 시를 향한 사랑 고백으로도 읽을 수 있다. “이십수 년 동안 문학을 공부하면서 자신감을 잃고 주눅들 때마다 나는 최면을 걸듯이 속으로 말해왔다. ‘시는 나를 사랑한다. 시가 나를 사랑한다.’” 부록 ‘오타쿠의 덕’에서 “사랑이란 상대의 존재가 당신 자신을 사랑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말(<나란 무엇인가> 중)을 인용하며 한 말과도 이어지는 듯하다. “자꾸만 나를 혐오하게 만드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면서, 이 세계와 맞서고 있다.”
‘누구도 완전히 절망할 수는 없게 만드는 이상한 노래, 코로나 시대의 사랑’에선 사이하테 타히 시 ‘마스크의 시’에 영감을 받아 만든 이시이 유야의 영화〈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를 인용한다. “동일본 대지진의 절망”을 새긴 이 영화에선 “ ‘힘을 내’라는 노래를 막무가내로 부르는 버스커”도 자주 등장한다. “다시 큰 사고로 사람들이 죽으면 어떻게 할까? 모금을 하자. 그리고 ‘잘 잤습니다’와 ‘잘 먹겠습니다’라는 말을 하며 살자”는 대사도 나온다. 신형철은 이 말을 두고 “재난 속에서도 타자의 존재를 잊지 않겠다는 것, 일상을 지키면서 그로부터 힘을 얻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하며 이렇게 적었다. “달리 뭘 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기세로 노래를 부르는 그 가수처럼, 사랑이라는 것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사랑은 누구도 완전히 절망할 수는 없게 만드는 이상한 노래를 함께 부르는 일 같은 것이리라. 죽을 때까진. 살아가는 것이다.”
신형철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22’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에 나온 “사랑의 태도”에 ‘조심’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사랑의 조심은 우선 ‘너’에 대한 조심이다.” 곧 “ ‘나’에 대한 조심”이기도 하다. 이 말은 2022년 1월5일 태어난 아들 ‘신기룬’을 향한 사랑과 태도에 관한 각오로 이어진다. “내가 내 삶을 지켜야 하고 나로부터도 내 삶을 지켜야 한다. 이것은 결국 아이의 삶을 보호하는 일이다. 아이를 보호할 사람을 보호하는 일이므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아이에게 가해자가 되고 말 것이다. … 너의 할머니처럼, 나는 조심할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각오할 것이다. 빗방울조차도 두려워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죽지 않을게, 죽어도 죽지 않을게.”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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