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휴머니즘의 도래 2: 인간, 사이보그 그리고 로봇을 구분하는 법[몸의 정치경제학]

2022. 11. 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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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심장 박동기를 이식한 사람 수는 2023년 143만 명…’지금 여기’에 사이보그는 차고 넘친다



공상 과학물이 대중적 상상력에 미치는 영향은 꽤 크다. 사이보그가 먼 미래의 일이라는 추정도 그 한 예다. 이러한 추정은 공상 과학물들이 공유하는 몇 가지 설정들에 의해 강화된다. 첫째, 픽션의 시제가 현재로부터 먼 미래로 세팅돼 있다. 둘째, 등장 사이보그 다수가 초월적 능력을 보유한다. 셋째, 케랙터들의 외모가 과하게 탈인간적이다.

‘시제의 미래성+역량의 초인성+외형의 탈인간성’이 부추긴 상상력은 사이보그가 적어도 ‘지금 여기’에 있지 않다는 확신으로 쉽게 전환된다. 사실 ‘블레이드 러너’의 릭 데카드를 제외하면 ‘공각기동대’, ‘아키라’, ‘로보캅’, ‘터미네이터’, ‘스타워즈’의 사이보그들이 지나치게 ‘퓨처리스틱’하고 ‘로봇틱’하다. 그러니 사이보그가 우리들 중 평범한 누군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가당하지도 않다.

이에 더해 사이보그에 대한 개념적 오해도 시공간적 거리감에 일조한다. 그래서 간략하나마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 흥미롭게도 꽤 많은 사람들은 사이보그가 사이버네틱(cybernetic)+오거니즘(organism)의 합성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오거니즘은 생물체를 뜻하니 쉽고 사이버네틱만 간단히 짚어 보자.

공간·보안·대학·폭력 등의 용어가 일상화되며 사이버가 마치 ‘가상’을 뜻하는 단어처럼 쓰이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이버(cyber)는 그리스 어원 쿠버(kuber)에서 유래됐다. 쿠버는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키잡이, 즉 조타수를 뜻한다. 이것에 가장 가까운 단어가 거번(govern), 즉 통치 통제 관리다. 그러니 요즘 한창 유행 중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의 G=거버넌스(governance)와 정부를 뜻하는 거번먼트(government)도 와 원의미를 공유한다.

관리·통제·조종이라는 뜻을 가진 사이버에 구조 체계를 뜻하는 네틱스(netics)를 접미하면 사이버네틱스가 된다. 간단히 말해 사이버네틱스는 자동 제어 시스템 같은 것이다. 일정 온도와 시간에 맞춰 운행되는 보일러나 에어컨이 제일 흔한 사례다. 자율 주행까지 갈 것도 없이 자동차 크루즈 컨트롤만 떠올려도 된다.

더 나가 보자. 사이버네틱스가 혁신적인 이유는 그것이 물리적으로 상이하고 공간적으로 분리된 물체·부품 기계의 정밀한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데 있다. 지금은 너무 흔해져 신비감을 잃었지만 대표적인 사례가 리모트 컨트롤러(리모컨)다. TV 시청도, 자동차 시동도, 드론 비행도, 최근 러시아가 발사한 유도 미사일도 모두 사이버네틱스 원리로 작동된다.

만물과 생명체가 보편적으로 소통하고 연결될 수 있다는 세계관-개념의 창시자는 미국 물리학자 노버트 웨이너다. 1948년 저서 ‘사이버네틱스 : 혹은 동물과 기계 간의 통제와 소통(Cybernetics: or, Control and Communication in the Animal and the Machine)’에서 그는 증기 기관과 인간 신체 통제 회로, 또 컴퓨터 작동과 인간 뇌기능의 구조적 유사성을 입증한다. 이런 호환성에 착안해 웨이너는 인간-동물-기계-컴퓨터를 관통하는 보편적 소통 질서를 구상한다.

상용화된 사물인터넷(IoT)은 사이버네틱스 없이 불가능하다. 스마트 시티도 마찬가지다. 요즘 ‘인공지능(AI) 비서’라는 거창한 이름의 음성 인식 서비스(SK텔레콤의 아리, KT의 지니, 애플의 시리 등)도 사이버네틱스의 응용이다. 사실 AI라는 개념 자체도 웨이너와 뇌신경 과학자 동료들이 고안한 사람-기계-컴퓨터 간 소통의 파생 모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언맨’이 사이보그가 아닌 이유

사이버네틱스를 이해했으니 이제 원래 주제인 사이보그로 돌아간다. 의학계에서는 사이보그를 바이오메카트로닉(biomechatronic, 혹은 bionic)이 탑재된 인간 생명체의 몸이라고 정의한다. 그보다는 테크놀로지와 ‘융합’된 인간(혹은 다른 생명체)의 몸으로 정리하는 편이 수월하겠다. 이 간결한 정의를 따르자면 우리 주변에 사이보그가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서 ‘융합’이란 단어가 중요한데 테크놀로지와 합체된 신체가 단일 언어·명령 체계에 따라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함을 강조한다. 만약 ‘융합’이 아니라면 생물 신체와 기계 보철 간의 단순 조합 또는 물리적 ‘접합’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는 사이보그로 인정되지만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는 첨단 고철을 뒤집어쓴 인간으로 구분돼 한다.
이참에 로봇(자기 완결성을 갖춘 자동 기계)과 사이보그의 식별법도 정리해 두자. 간략히 말해 유기적 신체의 유무가 양자를 나누는 기준이 된다. 로봇은 순수 인조 기술의 결정체인 반면 사이보그는 ‘자연산’ 신체와 인공 테크놀로지의 합성이다. 그러니 ‘아톰’, ‘마징가’, ‘태권 브이’ 계열의 로봇들과 ‘블레이드 러너’, ‘터미네이터’, ‘600만불의 사나이’, ‘소머즈’ 계열의 사이보그를 같은 ‘족속’으로 엮는 것은 곤란하다.

최근 출시된 생활형 로봇들 중에서 인간 외형을 본뜬 휴머노이드(humanoid)가 급증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언뜻 사이보그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외모 중심의 판단은 금물이다. 식당이나 공항에 돌아다니는 로봇들이 아무리 상냥해도 생물체와 기계의 유기적 결합인 사이보그들과는 ‘격과 결’ 모두 다르다.

인간을 순면이라고 친다면 로봇은 나일론 그리고 그 중간에 사이보그가 자리한다. 물론 로봇 종류가 다원화되고 인간 신체와의 결합(외부 신체, 장기, 신경 세포, 뇌, 언어 체계)도 늘고 있지만 이번엔 이쯤에서 만족하자. 혹시 위 약식 해설이 광어·도다리·가자미 분류만큼 명쾌하지 않았다면 다음 기회에 추가 설명하겠다.

 

셀럽형 사이보그 vs 일반형 사이보그

스텔락의 프로젝트 '팔 위의 귀'


이쯤에서 소개할 사람·사이보그가 있다. 원명은 스텔리오스 알카디어스(Stelios Arcadious), 개명한 이름은 스텔락(Stelarc). 1946년생인 그는 사이프러스에서 태어나 호주로 이주해 행위 예술가로 활동 중이다. 그에게는 3개의 귀가 있다. 두 개는 ‘자연산’이고 다른 하나는 인공이다.

셋째 귀는 그의 왼팔 안쪽에 붙어 있다. 그리고 마이크와 와이파이 칩이 내장돼 있어 인터넷과 접속된다. 그래서 두 개의 ‘자연산 귀’가 듣지 못하는 소리를 인터넷과 연결된 제3의 귀는 들을 수 있다. 역으로 그 제3의 귀가 듣는 소리는 온라인상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다.

‘팔 위의 귀(Ear on the Arm)’라고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1996년 구상되고 2006년 신체 이식 수술과 함께 본격화됐다. 자연적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그는 ‘대안적 신체 건축’을 통해 감각과 인식의 신세계에 진입하고자 한다.

이에 따라 스텔락은 인간과 테크놀로지의 결합체, 자연 신체와 인공 부품의 합성물인 사이보그가 됐다. 그 자신이 작가이자 작품이 됐고 그의 신체는 트랜스휴머니즘의 영구적 퍼포먼스가 됐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것은 신체의 정체성이 아니라 연결성이고 위치나 이동성이 아니라 인터페이스다.”

스텔락의 프로젝트 '제 3의 손'


스텔락 외에도 사이보그 ‘셀럽’들이 많다. 문 리바스(Moon Ribas)는 팔꿈치에 지진 센서를 내장해 자신의 위치와 무관하게 지구 전체의 요동을 감지할 수 있다. 웨어러블(wearable)의 선구자인 스티브 만(Steve Mann)은 두뇌는 물론 여타 감각을 컴퓨터와 연결해 증강된 인지 기능을 보유한다.

2004년 두개골에 안테나를 심은 닐 하비슨(Neil Harbisson)은 전파 감지와 함께 소리를 색체로 전환해 인식하는 능력을 갖게 됐다. 케빈 워윅(Kevin Warwick)은 1998년 마이크로칩을 그의 손목에 내장해 정중신경과 연결했고 그의 부인 또한 동일한 수술을 거쳐 부부가 손을 잡으면 서로가 느끼는 감각을 칩으로 공유할 수 있다고 한다.

두개골에 안테나를 심은 닐 하비슨


이렇게 특별한 ‘셀럽형 사이보그’보다 범인들로 구성된 ‘일반형 사이보그’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2019년 12월 기준 인공 청력기(탈착형 보청기가 아닌)를 이식한 사이보그는 등록된 수만 약 74만 명이다. 또 2016년 기준 인공 심장 박동기(artificial cardiac pacemaker)를 이식한 사이보그 수는 전 세계적으로 114만 명이다. 통계에 따르면 2023년에는 143만 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스마트 렌즈 이식 확산에 따라 ‘사이보그 인구’가 훨씬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앞서 지적했듯이 사이보그가 ‘미래 어딘가’에 예약돼 있다는 대중적 상상은 정확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 영향은 상당해 실제로 자신이 사이보그에 해당하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주변 누군가가 ‘사이보그 커밍아웃’을 한들 싱거운 농으로 웃어 넘길 공산이 크다. 티타늄 소재의 외골격, 액화질소로 움직이는 근육, 복잡한 회로로 휘감긴 인조 인간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에서 눈을 돌리자. ‘바로 지금 여기’ 주변에 걸어다니는 평범한 사이보그들은이차고 넘친다.

최정봉 전 NYU 영화이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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