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인구’ 유혹하는 체류형 체험 여행이 관광 대세죠” [트래블 리더]
국내 여행 상품 기획과 마케팅 분야에 오랜 몸담은 임석 광주동구예술여행센터장은 국내 여행 상품 기획의 베테랑이다. 여행사부터 경력을 따지면 20년 가까이 됐고 기초자치단체에 들어와 일한 것은 2015년부터니 8년 정도다. 드라마 세트장을 이용한 여행 상품부터 관광 불모지였던 대구를 근대 골목 여행의 대명사로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여행사부터 지자체 관광 재단까지, 경력이 다채롭다.
“솔항공여행사라고 기관이나 기초자치단체, 기업 등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 목적 여행에 강점이 있는 여행사에서 오래 일했다. 특수 목적 여행은 자치단체가 인센티브(보조금)를 지원하고 신규 상품 기획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어 많은 상품을 지자체와 함께 개발해 운영했다. 인센티브를 지원하면 참가자는 좋은 상품을 경쟁력 있는 가격에 누리고 해당 지자체는 지역 상품의 질이 높아진다. 특히 남도 지역과 네트워크가 있어 청산도·보길도·신안 증도 같은 인기 상품은 우리 여행사가 원조다. 남도 외에 대구광역시 여행 패키지도 솔항공여행사에서 처음 만들었다. 대구는 관광으로 유명한 도시가 아니었는데 2011년에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를 개최하면서 관광을 강화하게 됐고 그때 근대화 골목 여행 투어 같은 상품을 내놓아 인기를 끌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강진군문화관광재단이 만들어질 때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기며 지자체 일을 시작했다.”
기획한 여행 상품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나.
“드라마 ‘가을동화’와 ‘겨울연가’ 등을 만든 윤석호 PD와 여행사가 인연이 있어 ‘봄의 왈츠’를 찍은 청산도 유채꽃밭 세트장을 상품으로 독점 운영한 적이 있다. 좋은 여행 스폿이라고 해도 그것을 상품으로 잘 다듬지 않으면 관광 자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관광객만 즐거운 여행 상품은 단명한다. 지역 주민과 함께해야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지역민들의 자부심도 높아진다. 그런 상품은 오래도록 사랑받고 문화가 된다. 대구 여행 패키지 상품을 만들 때 서문시장을 코스에 넣으면서 관광객에게 서문시장이 잘 알려졌다. 사람들이 많이 찾으면서 주말 장사를 시작한 서문시장은 대구의 대표 전통 시장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 강진군문화관광재단 활동 때도 처음에는 관광객 규모가 90만~110만 명 수준이었는데 나중에 250만 명 정도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상품 하나 기획해서 제대로 자리 잡기까지 시간이 3년 정도 걸린다. 여행사에서 상품 기획하는 일도 재미있지만 지자체와 직접 일을 하면 더 빠르고 효과적인 여행 기획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었다. 지역마다 ‘방문의 해’를 선포하고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한 사업들을 벌이는데 지원금을 받아 눈에 보이는 숫자만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강진은 자체 예산만으로 사업을 진행해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 냈다.”
재단에서 만든 상품 중에 히트한 것도 있나.
“‘강진푸소(FU-SO)’라는 학생 대상 농가 체험 프로그램이다. 2015년 시작해 점점 인기를 더해 가면서 코로나19 기간에는 워케이션과 연결됐고 공무원 청렴 푸소, 시티투어 등과 연계한 상품도 나와 강진의 대표 여행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비결은 지역 주민과 함께한 것이 효과를 봤다고 본다. 푸소에 참여하는 체험 숙박 업체 대표들은 1년에 70여 회가 넘는 필수 교육을 받아야 한다. 푸소 참여 업체라는 자부심과 함께 강진을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조식은 강진에서 나는 재료를 활용하고 기념으로 사갈 만한 고추장이나 된장 세트 같은 6차 산업 상품도 만들었다. 지역민 모두가 윈-윈하는 구조를 짠 것이다. 지방에 여행과 관련된 서비스업 종사자는 전체의 30%가 넘지 않는다. 나머지 70%는 1차 산업 종사자다. 그들도 참여 가능한 구조가 만들어져야 관광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내 여행 인구가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 자유 여행이 늘면서 저렴하게 여행의 즐거움을 경험할 가성비 상품은 물론 비싸더라도 만족감 높은 가심비 상품도 함께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국내 여행객의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려면 지금과는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지금 국내 여행 상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대개 지자체가 용역 사업을 입찰해 외부 여행 기획자나 컨설팅하는 사람들이 일을 맡는 형태다. 그런데 외부 용역 업체가 한정되다 보니 다른 데서 한 번 성공한 사업을 다른 지역에 포장만 조금 다르게 해 적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지역마다 비슷한 여행 상품이 많아지는 이유다.”
국내 상품이 비슷한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가.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 관광재단 같은 기관을 ‘지역 관광 조직(DMO)’이라고 하는데 이론과 현장, 마케팅 전체를 아우를 인력이 많지 않다. 이에 따라 강진군문화관광재단을 운영할 때 설립에 대한 어려움을 이야기하기 위한 지자체들의 방문이 많았다. 학계는 현장이 낯설고 실무만 했던 사람은 큰 그림을 그려본 경험이 없다. 지자체 관광 관련 공무원의 역량도 높아져야 하는데 순환 보직이다 보니 전문성을 쌓기 어렵다. 그래서 요즘은 관광 전문 인력을 임기제 계약직으로 뽑기도 하고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역 주민이 주도하는 여행 상품을 만드는 관광두레 PD라는 제도도 나왔다.”
국내 여행 트렌드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뉴스에서 ‘관계 인구’라는 용어를 앞으로 자주 들을 것이다. 여기에 답이 있다. 관계 인구는 전국에 인구 소멸 지역이 늘어나면서 이의 대응 방안으로 나온 정책이다. 한 지역과 관계된 인구를 늘린다는 것인데 생활 인구라고도 한다. 1주일에 3~4일은 사는 곳에서 생활하고 2~3일은 다른 지역으로 여행도 가고 워케이션도 하는 식의 생활 방식 전환을 유도하는 정책이다. 최근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인구 소멸 지역이 전국에 89곳이다. 이들 지역을 살리고 전국의 경제 선순환도 꾀할 방법으로 관계 인구 개념이 등장했다.”
어떤 형태로 상품이 만들어지나.
“숙박을 하면서 지역을 체험하도록 하는 식이다. 야간 관광 명소가 늘어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야간 명소를 보기 위해 밤에 숙박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정책이 국내 여행 트렌드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 국내 자전거 여행이나 캠핑 인구가 왜 이렇게 늘었을까. 4대강 사업 이후 강을 따라 자전거 도로가 만들어졌고 자전거 여행하는 이들이 시내까지 나와 숙박하는 불편을 덜어주려고 캠핑장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정책으로 관계 인구 연구가 많아져 앞으로는 관계 인구를 확대하기 위한 여행 프로그램이 많아질 것이다. 이게 마중물이 돼 새로운 여행 트렌드를 형성할 것으로 본다.”
지금은 광주동구에서 활동 중인데 광주 동구에도 그런 상품이 있나.
“‘동네 라이프’라는 체류형 여행 프로그램이다. 광주 동구는 광주광역시의 원도심이다. 아시아문화전당을 중심으로 예술과 문화 트렌드가 형성되고 옛 전남도청 건물은 광주 역사 여행지로 인기가 높다. 광주 동구에 자발적으로 조성된 카페 거리를 중심으로 지역 커피 문화가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젊은 여행객이 늘고 있다. 동네라이프는 이런 동구의 매력에 광주시티투어를 연계해 주변 화순적벽 방문이나 농촌의 쾌적함을 경험할 기회도 갖도록 만들어졌다. 생활 여행이 활성화되면 주변과의 연계가 쉬운 동구 같은 소도시가 자연스럽게 로컬 여행 거점지로 떠오를 것이다.”
글=이선정 기자 sjlgh@hankyung.com
사진=성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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