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전문가 김종원 감독 “이제 지역축제 점검해야 할 때”
사상 초유의 사상자가 발생한 ‘10.29 이태원 참사’(이하 10.29 참사)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때다. 이번 사고 여파로 전국 지자체별로 예정된 축제와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어 코로나19에 이어 또 한 번의 직격탄을 맞은 셈이 되었다. 정부는 10.29 참사를 계기로 지역축제까지 긴급 점검을 지시했다. 대규모 인원이 모이는 지역축제행사는 안전사고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지역축제가 이대로 괜찮은지 한국축제문화진흥협회 김종원 이사장을 만나 보았다.
■이번 이태원 사고가 지역축제에 미친 파장은·
사상 초유의 사상자가 발생한 만큼 국가 애도 기간이 끝났지만 해결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지금부터가 이번 사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은 행정안전부 등 관계부처에 핼러윈 행사뿐만 아니라 지역축제까지 긴급 점검을 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지역축제에 얼마나 큰 파장을 몰고 왔는지 아직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취소되거나 축소가 예고된 지역축제 및 행사는 약 100여 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역 지자체 외 기초지자체 또는 지역 주민자치 위원회 등 소규모 행사까지 합산하면 최대 500여 개가 넘을 걸로 보인다. 나는 지역축제를 진두지휘한 총감독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축제 관계자들이 겪었을 당혹감과 손해가 얼마나 클지 충분히 짐작한다.
■10.29 참사가 지역축제에 주는 시사점은 뭔가·
정말 많은 시사점과 숙제를 안겨주고 있어 일일이 다 거론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 각 지역의 크고 작은 축제를 다수 진행해봤던 총감독으로써 딱 세 가지만 짚고 넘어가고 싶다. 첫 번째는 현재 전국 각지에 열리는 지역축제가 천편일률적이다. 다시 말해서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지역의 정체성을 담은 킬러콘텐츠가 없다 보니 유명 가수를 동원하는 걸 핵심 콘텐츠로 내세우고 있다. 유명 가수가 출연하면 관객몰이에는 성공한다. 유명 가수를 보겠다고 구름 인파가 몰려들고 이를 집계해서 관객동원 숫자로 축제 성공 여부 잣대로 삼는다. 그러다 보니 이태원 참사 같은 위험성이 항시 존재한다. 정말 아찔하고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는데도 안일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인파를 분산시킬 프로그램 부족이다. 유명 가수가 출연하는 개막식이나 폐막식에 집중하다 보니 홍보도 이에 집중되어 인파 쏠림 현상이 일어난다. 인기가수 동원 관객몰이 언제든 사고 발생 가능성 존재하는 만큼 킬러콘텐츠를 많이 만들고 개막식이나 폐막식보다 더 집중적으로 이를 알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 좋은 밥상을 차려놓고 엉뚱한 걸 홍보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말아야 방문객 분산 효과와 더불어 축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세 번째는 공무원과 축제 실행 관계자와의 소통과 진정한 협업이다. 축제 총감독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갑을 관계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위에서 지시가 하달되는데 위에서 내려온 지시는 대개 의전행사에 집중되어 있다. 주민과 방문객이 주인인 지역축제가 기관장 소유물이 되면 공무원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지역축제장에서 일어나는 안전사고는 커다란 둑에 난 개미구멍 같은 거다. 재빨리 개미구멍을 막지 않으면 둑이 터지고 마는데 공무원과 축제 실행 관계자 사이에 소통이 안 되면 이번 이태원 참사처럼 대비할 방도가 없다.
■ 김종원 총감독 경험 사례에 비춰 앞으로 지역축제가 나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면·
2013~2017년까지 총감독을 맡은 ‘마포나루 새우젓 축제’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유명 가수를 보는 거 보다 더 유익하고 재밌는 콘텐츠를 많이 만들었다. 새우젓을 실은 황포돛배가 마포 나루터에 입항하는 전통을 재현해 볼거리를 제공했고, 지역축제 단골 부스인 몽골 텐트를 배제하고 친환경 편백 나무를 활용한 전통 목재 부스를 설치해 서울 도심 축제장에서 힐링과 건강을 얻어가도록 했다. 또 가족 단위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우선으로 해 만족감을 안겨 줬다. 2017년 방문객 수 67만여 명을 기록했음에도 아무런 사고 없이 성료했다. 이런 게 바로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축제라고 본다.
그리고 ‘귀주대첩 1000주년 강감찬 축제’를 빼놓을 수 없다. 생전 처음으로 총감독 공모에 도전장을 내서 최종 1인으로 선정됐다. 제안서는 세세한 콘텐츠를 모두 담지 않았다. 킬러콘텐츠는 총감독으로 위촉된 후에 만들어 나갔다. 관악구와 협의는 하되 김종원의 색깔이 담긴 콘텐츠를 앞세운 덕분에 축제는 대성공이었다. 서울 낙성대 공원에 고려촌(村)을 조성했고, 강감찬 축제가 대한민국 대표축제가 되도록 전국 강감찬 가요제를 개최했다. 이때 초대한 가수는 김연자 한 사람이었다. 전국에서 참가한 국민이 주인이고 관악구 주민이 주인공이었다. 당시 귀주대첩 승전 1,000주년에 착안 1,000인 합창단 공연을 미디어 파사드와 함께 진행 대성공을 이뤄냈는데 이런 시도가 활발해져야 지역축제의 판이 유명 가수에 의존하는 데서 벗어날 수 있다.
■지역축제의 판을 바꿀 복안은 있는지·
코로나19 시대를 겪으면서 감정의 단절, 소통의 단절이 심화되었다. 디지털 시대가 주는 편리함도 있지만 사람과 사람의 접촉, 이른바 감성의 스킨십이 그리웠던 게 사실이다. 요즘 MZ(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는 디지털 시대의 공허함을 느끼고 산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빠져드는 것이 아날로그 감성이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를 찾는다는 역설은 지역축제 관점에서도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다. 이런 현상을 분석해서 지역축제에 접목한다면 지역축제 판도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아날로그에는 느림의 감성, 기다림의 감성이 있다.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흩어지는 ‘관객몰이’가 파고들 틈이 없다. 직접 보고 만지고 즐길 수 있는 오감 만족 킬러 콘텐츠로 지역축제 판을 바꿔갈 생각이다.
■그렇다면 아날로그 감성과 지역축제를 연결할 특별한 콘텐츠가 있는지·
내 고향 전라남도 강진군을 염두에 두고 아날로그 감성 축제 큰 그림을 작년부터 그리고 있다. 요즘 지역의 고유문화와 지역적 특성을 살려 지역 전체를 문화관광 상품으로 만드는 ‘도시재생’이 대세다. ‘도시재생’에는 일정 기간의 축제도 포함되지만, 더 중요한 건 주민의 일상생활에서 축제가 이뤄지고 지역을 찾은 방문객들이 시기와 상관없이 그 지역에서 펼쳐지는 일상적인 축제를 향유하는 거다. 축제 기간만 반짝 흥청거리는 도시가 아니라 1년 365일 힐링과 에너지 충전을 가능케 하려면 지역 전체가 축제 무대가 되어야 한다.
강진군은 <나의 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가 남도 1번지로 불렀을 만큼 남도의 전통문화와 남도의 게미진 맛을 간직한 고장이다. 아울러 강진만 갈대숲, 다산 정약용 유적지, 청자 도요지, 이순신 장군과 연관이 있는 전라 병영지 등이 있어 그야말로 문화의 보고(寶庫)라고 불린다. 강진에는 매년 ‘청자 축제’ ‘춤추는 갈대 축제’ ‘전라병영축제’ 등이 열리는데 이 축제들이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강진군 전역이 상설 축제 무대가 되어야 한다고 보고 오래전부터 ‘강진군 뮤직 빌리지·강진군 음악 마을’을 구상해 왔다. 이미 내 머리에는 세부 프로그램이 모두 나와 있다. 아날로그 음악 축제가 어떻게 소비자 커뮤니케이션에 대응하고 있는지를 내 고향을 통해 증명하고 싶다.
■향후 계획 중 최일선으로 지역축제 안전사고 예방 매뉴얼을 만들겠다고·
맞다. 10.29 참사를 지역축제 체질 개선의 계기로 삼아 지역 정체성에 맞는 킬러콘텐츠 개발과 지역축제 안전사고 예방 메뉴얼을 총감독 입장에서 탄탄하게 짤 계획이다. 지역축제 안전사고 예방 매뉴얼은 혼자 힘으로 되는 게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 관계자와 지속적으로 접촉하여 모든 지역축제 활용 가능한 안전사고 예방 메뉴얼을 반드시 구축해 공유할 생각이다.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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