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민낯이 덮친 시대… 다시 떠올린 ‘애도 · 공생의 문학’

박동미 기자 2022. 11. 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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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난다 제공
민음사 제공

■ 신형철 ‘인생의 역사’

6개 키워드로 25편의 시 살펴

성경 욥기서 최승자로 이어져

예고없는 인생의 잔인함 조명

■ 박혜진 ‘언더스토리’

자아 · 공생·우울·사랑 주제삼아

김숨 · 배삼식 등 작품 인물 분석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재주목

휘청거리는 삶을 단단히 붙들어 매라고, 문학은 발명된 듯하다. 근원 모를 고통을 불시에 안기는, 인생이라는 불에 ‘맞불’을 놓으라고(신형철), 희미한 빛으로 사는 존재들도 끝내 환대를 받으라고(박혜진). ‘때맞춰’ 당도한, 두 권의 책은 스스로 이를 증명한다. 탁월한 비평가이면서 대중의 인기까지 누리는 신형철 평론가의 ‘인생의 역사’(난다)와, 문학 편집자로도 일하며 대중과 문학의 접점을 확장해 온 박혜진 평론가의 ‘언더스토리’(민음사)다. 시대를 신중하게 관찰한 두 사람은, 시대의 마디가 되어 온 문학을 샅샅이 더듬고, 우리를 위로한다. 문학이 삶에 바싹 붙어 있는 한, 우리도 삶에서 결코 떨어지진 않을 거라고.

‘인생의 역사’는 신 평론가의 4년 만의 신작이면서 처음 시도하는 시화(詩話)다. 그에게 ‘인생’은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특별한 말”이고, ‘시’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대단한 예술”이다. 쉬운 듯 아득한 제목이 조금 이해가 된다. 그러니까, 인생 그 자체의 역사가 여기(시)에 있다. 또, 책은 신 평론가가 직접 겪은 삶을, 시로 받아들인 과정이다. “어떤 일을 겪으면서, 알던 시도 다시 겪는다”고 한 그는 자신이 번역한 시들을 비롯해 읽고 감응했고, 그의 말대로 ‘겪은’ 스물다섯 편의 시를 ‘고통의 각’ ‘사랑의 면’ ‘죽음의 점’ ‘역사의 선’ ‘인생의 원’ ‘반복의 묘’라는 6개의 키워드로 나누어 살핀다. 예컨대, ‘공무도하가’와 성경의 ‘욥기’로 시작하는 첫 번째 장 ‘고통의 각’은 우리 삶의 맨 앞에 놓일 얼굴로 ‘고통’을 지목하고, 에밀리 디킨슨과 에이드리언 리치, 최승자로 이어지며, 의미도 이유도 모른 채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인생의 무자비함을 상기시킨다.

‘인생의 역사’ 한가운데 ‘죽음의 점’이 있다. 실제로도 그렇고, 책도 그렇게 구성됐다. 생의 자연스러운 귀결인 ‘죽음’을 이야기하는 책은 무참한 죽음과 상실을 목격한 지금의 우리에게 하나의 애도로서도 다가온다. 책은 출간 일주일 만에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는데, 그 이유는 아마,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무엇인지 일러주기 때문일 것이다. 신 평론가는 W H 오든의 시 ‘장례식 블루스’와 함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이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지 설명한다. “그를 잃는다는 것은 그를 통해 생성된 나의 분인까지 잃는 일”이어서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죽을 때 나중에 가장 중요한 나도 죽는다”. 책은 기타노 다케시와 히라노 게이치로의 말을 빌려, ‘죽음’의 고통을 더 생생하게 드러낸다. 5000명이 죽으면, 한 사람이 죽은 사건 5000건이 일어난 것이고, 한 사람을 죽이면, 무수한 분인의 연결을 파괴한 연쇄살인이 된다고. 그렇게 죽음을 셀 줄 아는 것이 애도의 출발이라고.

박혜진 평론가의 ‘언더스토리’에 따르면, 인생의 그늘진 중간층(언더스토리)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문학이다. 박 평론가는 언더스토리에서 살아가는 식물들이 늘 빛이 부족하듯, 세상에는 “적은 빛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공생과 나눔으로 생존할 수 있는 이들을 “환대하는 집”이 문학이라고 말한다. 이 시선으로 그가 써내려가는 비평들은 다정하다. 왜냐하면 사실 우리 대부분은 ‘언더스토리’에 사는, 빛이 부족한 식물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쓰고, 읽고, 연대하려 애쓰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책은 인간, 자아, 사랑과 우울, 그리고 윤리를 키워드로 한다. 박 평론가는 고통 속에서도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나누려는 작품과 작가들을 호명한다. 동시대의 시선으로 인간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김숨의 소설과 배삼식의 희곡, 올가 토카르추크의 화자를 분석했으며, 이승우의 ‘사랑이 한 일’, 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통해 우리 마음의 ‘전부’이기도 한, ‘사랑’과 ‘우울’을 들여다본다. 왜 인간은 ‘사랑’, 아니면 ‘사랑의 부재’ 속에 놓이게 되는지 질문하며.

무엇보다 책은 시대의 한계로 배제돼 온 여성의 존재와 여성의 노동에 대해 쓴 동시대 여성 작가들에 주목한다. 우리의 ‘언더스토리’ 중, 지금 가장 열심히 빛을 밝히려 애쓰는 곳은 바로 그곳일 테니까 .

박 평론가는 130만 부가 팔린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편집자이기도 하다. 그는 이 소설은 개인의 문제를 여성의 문제로, 이를 다시 사회의 문제로 치환시켰음을 강조하고, 2016년 출간된 소설이 5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다시 읽힐 수 있는지를 제시한다. “사회의 문제는 개인을 치료해서 고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바뀌어야 해결되는 문제”라면서. 소설과 함께 시간을 통과한 우리는, ‘새로운 윤리’와 ‘새로운 현재’를 감각한다. 책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어떤 것’일 필요는 없으나,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문학의 가능성이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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