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현, 조우현, 김성철…, 역대급 슈터 드래프트
연세대의 반격! 고개숙인 고려대…, 더 강해진 경희대
1998년 첫 신인드래프트에서는 고려대의 위용이 빛났다. 고려대 시절부터 이미 농구대잔치 최고 스타중 한명이었던 ‘매직 히포’ 현주엽은 이견이 없는 부동의 1순위로 변하지 않는 존재감을 드러냈으며 예상보다 낮은 7순위에 지명되었던 ‘총알탄 사나이’ 신기성은 데뷔와 동시에 소속팀 주전가드 자리를 꿰친 것을 비롯 신인상까지 수상하며 성적을 통해 저평가를 잠재웠다.
반면 연세대는 고려대와 같이 2명의 1라운더를 배출했으나 김택훈, 구본근 모두 현주엽, 신기성에 비하면 여러모로 부족했다. 지금보다도 훨씬 양교의 라이벌 구도가 강했던 점을 감안했을 때 연세대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다음해 열린 1999년 드래프트에서는 연세대의 반격이 매서웠다.
전체 1순위로 조상현이 지명된 것을 비롯 황성인은 가드 중 최고 순위(3순위)로 SK의 선택을 받았다. 조상현의 쌍둥이 동생 조동현 또한 전체 8순위에 뽑히며 형제가 같은해 1라운드에서 지명되는 첫 기록을 세웠다. 반면 고려대는 단 한명의 1라운더도 내지못했다. 이름값에서 격차가 크게 났던 명지대가 이전 해에 이어 또다시 2명을 배출한 것을 감안했을 때 굴욕이 느껴질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반면 이전해 2순위(윤영필) 지명에 크게 웃었던 경희대는 1라운드에서 3명을 쏟아내며 그야말로 알짜군단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3명은 연세대와 같은 숫자이며 김성철(4순위), 강혁(5순위), 하상윤(9순위)으로 이어지는 면면도 그에 못지않았다. 중앙대는 2순위 조우현으로 체면치레를 했으며 한양대 또한 이홍수가 6순위에 지명되는 기쁨을 누렸다.
즉시 전력감 슈터 대거 등장, 역대급 슈터 드래프트
신인 드래프트는 특정 포지션이나 역할에 거물급 선수들이 집중될 때가 있다. 1999년이 그랬다. 대학무대를 양분했던 슈터 ‘조쌍’ 조상현(46‧189cm)과 ‘육각슈터’ 조우현(46‧190cm)에 둘을 위협하던 장신슈터 ‘짐 캐리’ 김성철(46‧195cm)까지 한꺼번에 쏟아져나왔다. 하나같이 팀에서 주포로 활약했던 선수들로 프로에서도 즉시 전력감 슈터로 성장할 것이다는 평가가 많았다.
‘현주엽 드래프트’로 불리던 이전해와 달리 이때는 ‘조상현과 조우현 중 누가 1순위냐?’에도 많은 관심이 몰렸다. 대학 초까지의 명성만 놓고보면 동년배 랭킹 1위 조우현이 모든 경쟁자들에 몇걸음 앞서 있었으나 이후 조상현이 연세대 시스템 농구에서 확실한 슈터 역할을 해내면서 상황은 오리무중이 됐다. 결국 1순위 지명권을 갖고있던 나산은 안정감있는 슈터로 평가받았던 조상현을 선택하며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슈터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있던 셋이지만 플레이 스타일은 각각 달랐다. 조상현은 말 그대로 전통적인 슈터였다. 코트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자리를 잘 잡았고 늘 슛을 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공이오면 빠르게 발을 맞춰 정확도 높은 외곽슛을 적중시켰다, 거기에 돌파에도 일가견이 있어 빈공간이 보인다 싶은 순간 과감하게 뚫고 들어가 레이업을 올려놓고는 했다. 3점슛 혹은 돌파의 이지선다형 공격이 많았으며, 매치업 상대가 자신보다 작다싶으면 적극적으로 포스트업을 시도해 흔드는 경우도 있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단신 슈터 조성원을 괴롭혔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조우현은 순수 슈터로서의 플레이에서는 조상현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훨씬 다재다능했다. 3점슛에 더해 미들슛도 잘쐈으며 개인기를 활용한 페이스업도 위력적이었다. 거기에 슈터치고 시야도 넓고 패싱센스도 좋은 편인지라 다양한 쪽으로 팀에 공헌이 가능했다. 본 포지션은 스몰포워드지만 상황에 따라 포인트가드까지 소화해냈다. 조우현 또한 본지와의 인터뷰 당시 조상현과 본인의 차이를 ‘순수 슈터와 멀티 플레이어로 비교 할 수 있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성철은 대학 시절부터 장신 슈터로 유명세를 탔다. 지금도 195cm 전문 슈터는 찾아보기 쉽지않다. 하물며 당시에는 그보다 작은 빅맨들도 부지기수였던지라 신장에서부터 메리트가 많은 선수였다. 다소 기복이 있는 편인지라 그날 컨디션에 따라 슛감이 종종 흔들리기도 했으나 한번 감을 잡았다 싶으면 무섭게 몰아쳤다. 운동능력도 좋아 당시 선수로서는 드물게 적극적으로 덩크슛을 시도했다.
당초 신인상 후보로는 1순위를 다투었던 조상현과 조우현, 1번 부재에 시달렸던 SK의 마지막 퍼즐로 낙점받았던 황성인 등이 꼽혔다. 하지만 최종 수상의 영예는 다양한 쇼타임을 연출하며 SBS(현 KGC)의 젊은 에이스로 떠오른 김성철에게 돌아갔다. 보통 KGC하면 양희종, 오세근, 이정현, 박찬희, 김태술, 전성현, 문성곤 등 우승을 이끈 황금기 멤버들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원년부터 해당팀을 응원했던 골수 팬들은 ‘원조 간판스타는 단연 김성철이었다’며 입을 모으고 있다.
◆ 조상현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551경기 출전 평균 11.3득점, 1.5리바운드, 1.9어시스트, 0.9스틸
◆ 조우현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458경기 출전 평균 11.6득점, 2리바운드, 3어시스트, 1스틸
◆ 김성철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507경기 출전 평균 10.2득점, 2.7리바운드, 2.1어시스트, 0.7스틸
신인 듀오, 우승의 중심에 서다
3순위라는 높은 순번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황성인(46‧180cm)은 지명 당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던 선수다. 개인 기량이 좋아서도 있었으나 서장훈, 현주엽을 보유하고도 제대로 힘을 쓰지못하고 있던 잠룡 SK의 화룡점정을 이끌 수 있느냐에 이목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비록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외국인선수를 한국계 혼혈 포인트가드 토니 러틀랜드로 뽑는 등 야전사령관 자리는 SK의 숙원이었다.
결과적으로 황성인을 뽑은 첫시즌 SK는 우승을 차지한다. 여기에는 당시 최인선 감독이 구축한 베스트5의 완벽한 밸런스가 결정적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황성인은 빠르고 슛이 좋았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탁월하거나 시야가 넓은 편은 아니었다. 프로에서의 첫 시즌 거기에 코트안팎에서 여러모로 까다롭고 개인기록에 민감한 서장훈이 있었다는 점에서 어찌보면 혼자서 SK를 오롯이 감당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여기서 최감독은 강력한 수비력에 더해 수준급 보조리딩까지 겸비한 경험많은 단신 외국인선수 로데릭 하니발을 2번으로서 황성인 옆에 붙여준다. 산전수전 다겪은 하니발은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를 잘 알았고 그로인해 파이팅 넘치던 신인 황성인은 부담을 덜고 자신이 잘하는 것 위주로 플레이하는게 가능했다.
주전 센터 서장훈의 파트너로 기동성, 패싱능력에 외곽슛까지 두루갖춘 재키 존스를 낙점한 최감독의 마지막 승부수는 주전 슈터 영입이었다. 현주엽의 다재다능함이야 모두가 알아주는 부분이었으나 외국인선수 2명을 쓸 수 있던 시대인데다 서장훈까지 보유하고 있던 당시 SK로서는 역할 중첩 부분에 대한 고민이 컸다.
다방면에 재주가 있지만 파워포워드로서 겹치는 영역이 많았던 현주엽보다 기동성을 바탕으로 간결하게 플레이해 줄 수 있는 슈터가 더 맞는 조각임은 분명했다. 이에 최감독은 이름값에 연연하지않고 과감하게 조상현과 현주엽의 이른바 크리스마스 빅딜을 성사시키며 신인이 둘이나 들어가있던 베스트 5를 완성시켰고 최종적으로 우승에 성공한다.
◆ 황성인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530경기 출전 평균 6.1득점, 2.2리바운드, 3.8어시스트, 1.3스틸
최고의 스틸픽 강혁, 알짜 8순위 조동현
지명 당시 많은 주목을 받았던 선수들은 조상현, 조우현, 김성철 등 슈터 3인방에 SK 가드난의 구세주로 기대를 모은 황성인이었으나 최종적으로 보면 삼성 또한 그 못지않은 혜택을 받았다. 지금까지도 다재다능한 슈팅가드의 대명사로 꼽히는 강혁(46‧188cm)을 뽑았기 때문이다. 5순위 지명이라서 더욱 그렇다. 만약 시계를 과거로 되돌릴 수 있다면 강혁은 1순위에 뽑혀도 이상할 것이 없는 선수였다.
언뜻보면 강혁은 특별한 장점이 없어보였다. 특유의 악바리 근성을 바탕으로 부지런하고 성실한 타입이기는 했으나 슈터급으로 슛이 좋거나 가드로서 시야, 리딩이 확연하게 돋보이는 유형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대로 딱히 부족한 것 없이 두루두루 잘했으며 두둑한 강심장을 바탕으로 큰 경기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제 실력을 발휘했다.
기본적으로 강혁은 수비가 매우 빼어났다. 자신이 맡은 상대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으며 쉴새없는 손질을 통해 조금의 틈만있으면 스틸을 성공시키고는 했다. 2003~04 시즌부터 4시즌 연속 수비 5걸에 선정된 것이 이를 입증한다. 거기에 더해 시즌이 거듭될수록 포인트가드급으로 리딩, 패싱능력이 늘어갔다. 특히 2대2 게임은 기술자라는 극찬이 따라 붙을 만큼 능숙하게 잘해냈다.
1순위 조상현의 쌍둥이 동생 조동현(46‧187cm)은 비록 8순위에 뽑히기는 했으나 커리어내내 감초같은 플레이로 이른바 알짜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슛에 특화된 형과 달리 이것저것 고르게 잘하는 스타일이었으며 특히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마당쇠 플레이로 지도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그보다 먼저 뽑힌 이홍수, 장영재의 통산 경기수, 득점을 합친 것보다 더 높은 기록을 남겼다.
◆ 강혁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561경기 출전 평균 8.3득점, 2.3리바운드, 3.9어시스트, 1.3스틸
◆ 이홍수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301경기 출전 평균 1.9득점, 1.2리바운드, 2어시스트, 0.6스틸
◆ 장영재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152경기 출전 평균 1.6득점, 0.8리바운드, 0.2어시스트, 0.2스틸
◆ 조동현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559경기 출전 평균 7.7득점, 2.1리바운드, 1.9어시스트, 1스틸
당시 지명된 선수의 상당수는 현재 농구 팬들에게도 익숙하다. 좋았던 선수 커리어에 더해 KBL 혹은 대학 무대에서 지도자로서도 활약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조상현‧조동현 쌍둥이 형제는 올시즌 나란히 프로팀 사령탑을 맡고 있다. 조상현은 LG, 조동현은 현대모비스를 이끌고 있는데 두팀 모두 중위권 정도의 성적을 올리고 있는지라 충분히 플레이오프 경쟁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외 김성철과 강혁은 각각 DB와 한국가스공사에서 코치로 있으며, 황성인은 단국대 코치로 대학무대에서 후배들을 양성중이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이미지편집_김종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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