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음악축제 참사 겪은 독일 “안전 매뉴얼 지금도 갱신중”
12년 전인 2010년 7월24일,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도시 뒤스부르크에서 세계 최대 테크노 음악 축제인 ‘러브 퍼레이드’가 열렸다. 이 행사에 무려 50만명 넘는 인파가 몰렸다. 비극이 시작된 것은 오후 5시께였다. 행사장으로 드나드는 경사진 통로에 인파가 몰리며 사람들이 엉켜 넘어졌다. 순식간에 21명이 숨지고, 무려 650여명이 다쳤다. 실제 사고 당시 인파는 12만명 정도다.
위르겐 게를라흐 독일 부퍼탈대 교수(토목공학)는 도로 교통 계획·공학, 대규모 행사 안전 등 분야의 전문가로 이 참사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청문회에 참여했다. 그는 사고 후 1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관련 보고서를 쓰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만들고 있다.
게를라흐 교수는 6일(현지시각) <한겨레>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이미 제한된 공간에 사람들이 꽉 들어차고 난 뒤엔 대응이 어려워진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독일에선 참사 이후 애초 이런 혼잡 상황을 피하도록 “시 행정당국 등 책임 있는 기관이 행사 책임을 맡도록 새 규칙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게를라흐 교수가 이태원 참사를 보며 놀란 것은 두 참사가 발생한 장소의 ‘유사성’이었다. 그는 “좌우에 높은 벽이 있고 가운데 좁은 공간이 있는 점, 경사진 길에 탈출구가 거의 없는 점” 등이 비슷하다면서 “경사진 길에선 사람들이 중심을 잃을 위험이 높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는 해밀톤호텔 부근 너비 3.2m, 길이 40m 내리막 골목으로 사람들이 급격하게 몰려들며 발생했다. 게를라흐 교수는 또 “제한된 공간에 인파가 꽉 들어차고 난 뒤에는 (공권력이 투입돼) 통제하려 해도 개입이 매우 어렵다. 추가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윤석열 정부가 ‘참사 당일 밤’ 경찰 대응에 초점을 맞춰 책임을 추궁하고 있지만, 애초 그런 위험한 상황을 만든 더 넓은 원인과 구조를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게를라흐 교수의 설명을 들으면, 이태원과 같은 군중 참사는 둘 이상의 방향에서 인파의 흐름이 교차하거나 충돌할 때 발생한다. 인파가 한 방향으로 이동할 때도 길이 좁아지면 병목현상이 발생한다. 그는 “(무언가를 보러 가려는 동기가 있는 사람들로) 밀도가 높아지면 파도 같은 움직임이 나타나고 여기서 사람들이 중심을 잃는다”고 말했다. 나아가 “덥고, 답답하고, 붐비는 상황에서 일부가 기절하거나 주저앉게 되는데, 그러다 다음 사람들이 그 위로 넘어지는 현상이 반복돼 결국 최악의 상황으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그는 “최악의 상황은 매우 빠르게 발생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참사가 발생한 뒤 독일 정부는 2015년 재발 방지 대책을 위한 ‘교통·수송 분야 규범 및 표준 연구개발 위원회’(FGSV)를 만들었다. 사고 책임을 묻는 재판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이어졌다. 위원회는 2022년 행사 매뉴얼인 ‘교통 및 군중 관리 지침서’(EVC)를 펴냈다. 지금도 △군중 시뮬레이션 모델 표준 △군중 속 위급한 상황 인식 및 대처 요령 △행사 주변 지역 실행 계획 및 구조 경로 등을 개발하는 소위원회가 활동 중이다. 게를라흐 교수는 지침서에는 “특정 공간에 사람들이 얼마나 모일 수 있는지, 애초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런 사람들의 모임을 어떻게 미리 계획할지 등이 담겨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같은 참사를 막을 수 있을까. 게를라흐 교수는 “단지 행사 당일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행사의 안전을 위해 몇달 전부터 신중히 대비하고 계획해야 한다”면서 필요한 상황에 결정을 내리고 조치를 취할 책임 소재를 미리 정하는 여러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참사 뒤 독일에선 (인파가 많이 몰리는 행사를 열 땐) 특정한 사람을 책임자로 정하는 새 규칙을 시행했다”며 대부분 “시 행정당국 등 책임 있는 기관이 책임을 맡는다”고 말했다. 이어, “열린 공간이 아니라 한정된,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곳에는 정말 필요할 경우 접근에 제한을 둔다”며 “인파가 모이기 전 해당 공간을 차단하거나 온라인으로 미리 무료 티켓을 나눠주고, 사람들에게 제한 상황에 대해서 미리 안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라고 했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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