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베를린 싱글맘에게 “난방비 5배 인상” 안내문 날아왔다
[러, 우크라 침공]
베를린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레오니(43)는 지난 9월 말 자신이 이용하는 전력회사 ‘바텐팔’(Vattenfall)에서 날아온 안내문을 받고 깜짝 놀랐다. 안내문엔 1년에 1500유로(약 213만원)였던 난방 요금이 앞으로는 5배 많은 7600∼7800유로(약 1080만∼1108만원)로 오른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레오니는 그야말로 ‘패닉’에 빠졌다.
11월 초 날아온 실제 요금 통지서를 받아본 뒤, 일단 가슴을 쓸어내렸다. 5배나 뛴 요금이 ‘신규 고객’에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운 좋게도 기존 계약자들은 가격이 아주 많이 오르지 않았다”며 “앞으로 계약할 사람들은 운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 “올해 에너지 요금 50% 올라…내년에 또 올릴 수도”
지난 2월 말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과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심각한 ‘에너지 위기’에 빠진 유럽이 겨울을 맞이하며 혹독한 고통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시작된 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러시아에 경제제재를 가하자, 러시아는 보복으로 유럽에 대한 에너지 공급을 줄여왔다. 겨울이 다가오자 그 여파가 서민 생활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독일 전력회사들은 전년도 사용량에 따라 올해 매달 내는 요금을 미리 정한다. 그 뒤 연말에 실제 1년 동안 사용한 에너지 양을 따져보고, 미리 부과한 요금을 돌려주거나 추가 비용을 물린다. 하지만 에너지요금이 크게 오른 올해 사정은 예년과 전혀 달랐다. 각 전력회사들이 9~10월께 계약자들 앞으로 여태까지 쓰던 대로 쓰면 ‘요금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경고문’을 쏟아낸 것이다.
베를린 현지 언론인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 지난달 7일 보도를 보면, 베를린 내 130만가구가 가입해 있는 바텐팔은 올해 에너지요금을 2021년보다 50% 정도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70㎡ 크기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1년 에너지 요금을 연 700유로(약 99만원) 냈다면, 앞으로는 1100유로(약 155만원)를 부담해야 한다. 새로 계약을 체결할 때 요금은 그보다 더 비싸질 수 있다. 회사 쪽은 상황에 따라 내년에도 요금을 올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독일 전체를 봐도 사정은 비슷하다. 에너지 가격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독일경제연구소(DIW)는 지난 10월 펴낸 보고서에서 독일의 가스 도매가격이 2020년 12월엔 1㎿h(1000㎾h)당 15유로(약 3만원)였는데 지난해 12월엔 100유로(약 14만원), 지난 9월에는 약 200유로(약 28만원)까지 올랐다고 전했다. 도매가격이 오르며, 소매가격도 연쇄적으로 뛰고 있다. 가스 소매가격은 지난 10년 평균적으로 1㎾h당 5센트(약 70원) 정도였지만, 1월엔 세배 오른 15.4센트(약 215원), 9월엔 다시 40% 뛰어 21.75센트(약 302원)를 기록했다. 프란치스카 쉬체 독일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이는 가구 생활비가 (이전과) 똑같은 소비를 하는데도 잠재적으로 두배 오르는 것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 천연가스업체서 보낸 편지엔 “1℃ 낮추면 난방비 6% 절약”
회사들은 안내문에서 실내 온도를 1℃ 낮추면 얼마나 비용을 아낄 수 있는지를 전하기도 한다. 베를린 시민으로 엔지니어로 일하는 다니엘(27)도 최근 천연가스 공급업체(GASAG)한테 안내문을 받았다. ‘에너지를 절약해 난방비를 아끼는 법’이라는 제목의 편지엔, “집 안 온도를 1℃ 낮추면 난방비 6%를 아낄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40㎡짜리 집에 사는 소비자가 연간 평균 가스 소비량(6600㎾h)만큼 쓴다면, 1년에 1074.54유로(약 151만원)를 내야 한다. 하지만 방 온도를 1℃ 낮추면 약 57.62유로(약 8만원)를 아낄 수 있다. 다니엘은 “지난해보다 약간 난방을 덜 하고 있다”며 “(이맘때 난방을) 중간 단계인 3단계 이상으로 맞췄는데, 이번에는 2단계에서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 “에너지 요금 월 80유로였는데…217유로 빠져나갔어요”
독일 자를란트주에서 사는 한국인 유학생 민영희(22)씨는 얼마 전 체크카드 결제가 안 돼서 당황했다. 알고 보니 전력회사가 매달 자동이체로 빼가던 전기·난방비 정액을 크게 올려 통장 잔고가 남지 않았던 탓이었다. 57㎡ 크기 방에서 사는 민씨는 매달 에너지요금을 80유로씩 냈는데, 지난 10월18일엔 원래 요금의 3배 가까이 되는 217유로가 빠져나갔다. “에너지회사에 전화해보니 가스 가격이 올라 예방 차원에서 회사가 미리 많이 빼갔다고 하더라고요. 앞으로 매달 이렇게 빠져나간다는데, 유학생한테는 너무 큰 돈이라 막막해요.” 민씨는 지난 달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11월 난방을 2단계로 켜고 썼던 그는 올해는 웬만큼 춥지 않으면 난방을 틀지 않을 계획이다. “수면 양말 신고, 경량 패딩 입고, 물주머니 껴안고 자면 버틸 수 있지 않을까요?”
베를린/ 노지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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