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는 말의 가벼움[편집실에서]
2022. 11. 8. 07:19
주간경향은 매주 금요일 회의를 거쳐 다음 호 지면의 가닥을 잡습니다. 지금 독자 여러분이 보고 계신 1502호도 그렇습니다. 다음날(10월 29일) 밤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터졌습니다. 황망해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지면 계획을 흔들었습니다. ‘표지 이야기’부터 다시 기획하고 취재해 기사를 썼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는데다 평소보다 취재기간도 짧아 기자들의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억울한 희생자들과 유족들, 비통한 심정을 가눌 길 없는 국민의 마음을 생각하면 그건 어려운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봐야겠지요. 따로 요청드린 것도 아닌데 외고를 맡은 필자들 또한 이번 참사 관련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만큼 어이없는 끔찍한 사고였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 그래서 더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의미였겠지요.
다들 힘든 시기를 나고 있습니다. 좁은 골목에 그렇게 많은 인파가 몰렸던 게 지난 수년의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봉쇄·단절의 반작용 성격은 아니었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이르면 가슴이 더 미어집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고 이제 겨우 마스크 너머 친구들의 얼굴을 보면서 웃을 수 있을까 기대를 키워가던 시점에 이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입니까. 어이없는 사실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결국 막을 수 있었던 인재였다는 쪽으로 이번 참사의 결론이 향해가는 걸 지켜봐야 하는 심정은 타들어갑니다. “주최 측이 없었다” 등의 ‘궤변’을 늘어놓으며 버티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결국 사과했습니다. ‘유감’이라고 했다가 ‘심심한 사과’로 한걸음 나아갔습니다. 얼마 전 문해력 논란을 일으켰던 그 심심(甚深)한 사과입니다. 얼마나 사과하기 싫었으면 꽃다운 나이에 피지도 못하고 스러진 청춘들 앞에서 그 말을 다시 꺼내들었을까요. 한없는 말의 가벼움을 생각합니다. 공감할 의지도, 공감할 능력도 잃어버린 듯합니다. 마음이 이러니 제대로 말이 나올 리 만무합니다. 제대로 듣지도 않습니다. 자기 기준으로 이해하고 맘대로 재단해 버립니다. 참사 발생 4시간 전에 이미 강력한 신호가 있었습니다. 무려 11차례 112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압사”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습니다. ‘소귀에 경 읽기’였습니다. ‘압사’를 말해도 ‘엄살’로 받아들이는 상황, 이쯤 되면 말은 의미가 없습니다. 너도나도 목청을 높이고 확성기까지 동원해 소리의 데시벨을 키우지만 말은 한치 앞을 넘어서지 못하고 제자리만 맴돕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참사 앞에서 광장은 주말이면 또 둘로 갈라설 조짐을 보입니다. 얼마 전 ‘모든 정부부처가 산업부’라는 각오로 수출 촉진에 매진하라던 대통령의 비상경제 민생회의 일성이 ‘모든 정부부처가 재난·안전의 주무부처’라는 생각으로 임해달라는 당부로 바뀌었습니다. 중구난방식으로 터져나오는 말의 성찬을 보며 이번에는 정말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리란 기대를 가져도 좋을까요. 세월호 참사 이후 뭐가 달라졌나 되짚어 봅니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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