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책 읽지 말고 공부해라?…마포구, 작은도서관 9곳 없앤다
구 “예산 절감”…독서실로 전환 방침
구민들, 구 누리집에 비판·항의 행렬
“아이 낳으라는 정부 정책은 거짓”
서울 마포구가 관내 구립 ‘작은도서관’을 사실상 모두 폐관할 방침이다. 지난달까지 계속 운영을 위한 재위탁 심사를 마치고 계약서 날인까지 한 상황에서 돌연 뒤집는 것으로, 예산 절감을 명분 삼아 ‘독서실’로 전환한다는 구상이다.
작은도서관은 ‘너비 33㎡, 장서 1천권, 열람석 6석 이상의 공중 생활권역내 소규모 도서관’으로, 기초단체들은 지난 20여년간 작은도서관을 늘려 책과 독자들의 거리를 줄이는 한편 저출산 위기 시대에 어린이들을 위한 마을공동체 거점으로 활성화해온 바 있다. 이와 대조되는 마포구의 결정에 마포구민·도서관 등은 ‘퇴행·즉흥 행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출판계도 동요하고 있다.
마포구가 늘푸른소나무·성메·해오름작은도서관 등 구립 작은도서관 전체 9곳의 운영을 다음달말 종료하기로 결정한 사실이 7일 확인됐다. 이들 도서관을 3년 단위로 수탁운영해오던 단체들은 지난주 마포구로부터 계약만료(12월31일) 이후 재위탁하지 않고, 현재의 관장들도 더 고용하지 않는다는 방침 등을 전달받았다. 지난달 구는 재계약서에 도장까지 찍었으나 단체들엔 발송하지 않고 있었다.
이는 지난 7월 취임한 박강수 구청장(윤석열 대선후보 캠프 특보 출신) 체제에서의 결정이다. 지난달까지 관리·위탁 선정 업무 등을 맡았던 마포구립도서관을 ‘패싱’한 채 본청에서 직접 나서 뒤엎는 중이다. 구는 마포구립도서관이 요청한 내년 사업예산(70억원)에서 ‘30%를 삭감하라’고 지시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이는 올 집행예산 60억원에서도 11억원가량을 줄여야 하는 규모다.
지난해 작은도서관 운영에 들어간 구 예산은 7억2천만원, 이용자수는 15만~20만명으로 1인당 3600~4800원 정도가 쓰였다. 송경진 마포중앙도서관장은 7일 <한겨레>에 “도서관이 혈세를 낭비하는 곳이란 구청장 발언을 여러 차례 들었다. 올핸 특히 심하게 예산을 삭감하라고 해서 많이 반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 경우 결국 책값, 인건비, 상호대차 서비스 같은 본질적인 요소가 줄게 된다”며 “작은도서관에 대해서도 공문 하나 받아본 게 없고 독서실화한다는 설명만 들었다”고 말했다. 마포구는 2017년 개관한 중앙도서관 서비스를 관내 15개 도서관에서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지원 모델로 호평을 받아왔다.
마포구에 작은도서관이 들어선 건 2008년부터다. 책을 읽고 빌리는 동네 도서관에 머물지 않고 육아·돌봄, 문화 쉼터 구실을 해온 작은도서관은 지난 20여년 동안 전국적으로 7394곳(민간 운영 포함)으로까지 늘었고, 서울 관악구 경우엔 모든 구민들의 도서관 이용거리 목표를 “10분 이내”로 잡고 도서관 사업을 진행, 구립 작은도서관만 27곳에 이른다. 2012년부터 작은도서관 진흥법을 시행해 국가와 지자체가 작은도서관 진흥 시책을 강구하도록 의무화한 배경이다. 다음달부턴 그간 권장사항이었던 사서 배치도 작은도서관의 필수조건이 된다.
마포구청 누리집(‘구민에게 듣겠습니다’ 코너)은 폐관 반대 항의 글로 지난달 후반부터 도배가 된 상태다. 한 민원인은 “갑작스런 공지로 작은도서관을 없애버리는 것이 사실이 된 지금 아이를 낳으라 하는 정부의 정책은 거짓”이라며 “이런 행정을 하시는 분은 도서관을 안 다니시니 이런 행정을 마련하시는 것인가… 우리에게 남겨진 것들을 빼앗지 말아 주세요”라고 썼다. 그는 “작은도서관은 이름처럼 작지 않”다며 “동네를 대표하는 큰 문화와 사회의 장”이라고 말했다. 초등학생 딸을 뒀다는 김아무개씨는 “딸이 한 살때부터 지난 10년 정도 평균 매달 20~30권의 그림책을 대출했다” “양질의 도서를 편리한 환경에서 접할 수 있는 것이 구민인 저에게 매우 큰 혜택이었다”며 작은도서관 폐관 결정 철회를 요청했다. 또 다른 민원인은 “유아 초등학생 때부터 도서관과 함께 해서 자라난 아이들이 지금 성인”이라며 “방학 때 도서관 책 보러 오는 아이들 엄마들이 가득 차서 자리가 없는데… 이용률 때문에 폐관한다는 말도 안 되는 말로 합리화시키지 말라”며 해명을 요구했다.
박상수 마포구 자치행정과장은 <한겨레>에 “유지비는 많이 드는데 이용 인원이 너무 적어 향후 작은도서관의 활용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자치행정과는 최근 갑자기 해당 업무를 떠맡은 상태다.
마포구 누리집엔 2011년 마포구의 도서관 사업을 동료의원들과 견학한 뒤의 청주시의원 글도 남아있다. 성산동 시영아파트 주민들을 구가 설득하고 전국에서 처음으로 작은도서관 지원 공익기금을 유치해 작은도서관을 조성 중인 점, 작은도서관만 만들어놓는 지자체와 달리 도서관 전문단체에 위탁운영해 내실을 기하는 점을 “매우 앞서가는 수범사례”로 평가하며 감사 인사를 남긴 것이다. 새 구청장이 파묻고 있는 마포구의 자취인 셈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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