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첨단기술 패권경쟁의 역사적 교훈
지난 300만 년의 인류사는 끊임없이 도구(기술)를 발전시키고, 그 원리(과학)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왔던 역사다. 그래서 장구한 인류사를 기술발전의 역사로 설명하곤 한다.
한편, 인류가 단순 군집생활을 넘어 집단생활을 영위하기 시작하면서 기술발전에 '경쟁'이라는 요인이 본격적으로 작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쟁으로 인해 인류는 기술을 더욱 빠른 속도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농업혁명과 정주문명의 등장으로 인류의 개체수가 급증하고 경쟁 관계에 있는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기술은 타 집단을 압도하기 위한 핵심경쟁력으로 부각됐고, 그에 따라 기술 확보경쟁의 양상은 더욱 치열해졌다.
특히, 시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첨단기술 확보경쟁은 인류사 전반에 걸쳐 전개된다. 최근 우리가 빈번하게 듣고 있는 '첨단기술 패권경쟁'이 현시대만의 격변은 아니라는 말이다.
고대시대에 '철기'가 등장하면서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제철기술 패권경쟁이 도처에서 벌어졌다. 우리 고대사를 봐도 삼한 및 삼국에서 제철기술자들이 지배집단이 되고, 제철기술의 유출을 반역행위로 처단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경쟁 때문이었다.
기원전 1274년 레반트 지역의 최강자들이었던 이집트와 히타이트 간에 벌어졌던 카데시 전투에서는 말이 끄는 '전차' 제작기술이 큰 영향을 미쳤다. 차륜의 크기와 바퀴 축의 위치, 그에 따른 전차의 탑승용량이 핵심 기술요인이었는데, 히타이트의 주력 전차들이 3인승이었던데 반해 이집트 전차는 2인승이었고, 이로 인한 기동병력의 열세로 람세스 2세가 전사할 뻔한 전투가 바로 카데시 전투였다.
AD 6-8세기 동로마(비잔틴)제국은 욱일승천하고 있던 이슬람의 도전을 받았다. 콘스탄티노플을 감싸고 있는 마르마라해에서 벌어진 여러 해전에서 동로마제국이 승리하면서 제국은 간신히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당시 해전의 승패를 좌우했던 요인이 바로 '그리스의 불'로 불리는 화염방사형 무기였다. 유황, 원유, 역청 등을 혼합해서 만들어졌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그리스의 불을 어떻게 제작했는지 완전히 알 수 없을 정도로 당대 최첨단기술이었다. 이슬람 측도 그리스의 불을 모방하고 대응책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이후 1453년까지 동로마제국이 명맥을 유지하는데 그리스의 불은 큰 기여를 하게 된다.
16세기에 유럽에서 촉발된 '과학혁명',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세 차례의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첨단기술은 군사 영역을 넘어 산업 전반의 국가경쟁력을 좌지우지하는 요인으로 굳건하게 자리잡게 된다. 19세기 말 이후 독일이 광대한 식민지도 없이 패권국가로 도약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화학기술, 내연기관 제작기술 같은 첨단기술이 있었다. 물론, 독일 자체가 가진 지정학적 강점, 인구수, 경제규모 등도 제국주의 국가로의 도약을 이끈 요인이었겠지만, '식민지 대신 화학'이라는 유명한 구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첨단기술 확보는 독일제국 성장의 일등공신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마이크로 주파수 레이더 기술, 엔진용 공기압축 기술, 소나 기술, 원자폭탄 기초기술 같은 첨단기술이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는데, 놀랍게도 이러한 첨단기술들은 영국이 미국에 거의 무상으로 이전해줬던 기술이었다. 결국 영국의 첨단기술력이 미국과 소련의 산업생산력 및 인적자원과 결합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전후 미국과 소련은 패전국 독일의 로켓기술, 화학 및 재료기술을 빠르게 흡수하면서 첨단기술 패권국가로 우뚝 서며 냉전시대를 연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은 그렇게 발전시킨 첨단기술을 동맹국들에게조차 공유하지 않았다. 본래 첨단기술은 동맹이나 우방과도 나눌 수 없는 '승자독식'의 성과물이기 때문이다.
21세기 전반부에 벌어지고 있는 첨단기술 패권경쟁은 단순히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경쟁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수 주요국들 간의 생존·번영 경쟁 양상이다. 따라서 우리는 장구한 인류사 속에서 벌어져 왔던 첨단기술 패권경쟁의 교훈을 되새겨보며 국가적 전략방향을 현명하게 결정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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