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만의 미·중 대격돌...한국 국운 상승 기회로 만들려면 [송의달 LIVE]

송의달 에디터 2022. 11. 8.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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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국가전략 보고서 탐구 [코리아 프리즘]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한국 대통령이 2022년 5월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며 대화하고 있다./뉴스1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이 뜨겁습니다. 2018년 여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對)중국 제품 고율(高率) 관세 부과로 시작된 대결 구도는 요즘 ‘신냉전(New Cold War)’으로 불립니다. 일부에선 중국공산당의 중국 대륙 통치[신중국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이어질 ‘30년 전쟁’이라 표현합니다.

미·중이 사이좋던 최근 20년 넘게 우리나라는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으로 재미를 봤습니다. 하지만 지금 대결과 경쟁 강도를 높이는 두 나라의 속내를 정확하게 못 읽는다면, 나라와 국민의 삶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에서 저는 지난주 미국 백악관과 중국공산당(이하 중공·中共) 수뇌부가 각각 내놓은 문건을 들여다 봤습니다.

올해 10월 12일 조 바이든 대통령 이름으로 공개된 국가안보전략보고서(National Security Strategy 2022·이하 NSS)와 같은 달 1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총서기가 104분동안 보고한 제20차 당대회 문건입니다. A4용지로 48쪽과 72쪽인 두 문서는 양국 지도부의 세계관과 국가 전략을 담고 있습니다.

올해 NSS는 2017년 12월18일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17번째 NSS 보고서에 이은 것으로 2021년 3월 나온 ‘NSS 중간 지침서’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NSS는 백악관이 발간하는 최상위 전략서인데 최근엔 4년에 1~2회 나오고 있습니다. 국방전략(NDS), 핵(核) 태세검토(NPR), 4년 주기 국방태세검토(QDR) 같은 하위 보고서들은 NSS에 근거해 발간됩니다.

중공 당대회 보고 문건은 당(黨)의 1인자인 총서기가 당대회에서 지난 5년의 성과와 향후 5년의 국정 방향 및 전략을 보고하는 핵심 문건입니다. 중공은 1977년부터 5년마다 당 대회를 열어 중대 문제를 논의·결정하고 당의 주요 간부들을 요식적인 절차를 거쳐 선출합니다.

◇‘30년 전쟁’...선전포고

올 해 두 문건에서 양국은 1979년 역사적 수교(修交) 이후 43년 만에 처음 상호 경쟁과 대결을 공식 확인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NSS에서 “중공은 국제 질서를 재편하려는 의도와 그것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외교적, 군사적, 기술적 힘을 모두 가진 유일한 경쟁자이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중국은 미국의 가장 중대한 지정학적 도전”이라는 표현을 두 차례 이상 했습니다. ▶국내 경쟁력(혁신, 민주주의, 회복력 등 포함) 기반에 투자(invest) ▶동맹·우방, 파트너 국가들과의 연대(align) ▶중국과의 직접 경쟁(compete) 등 세 개의 중국 제압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5년 전 트럼프 행정부가 NSS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미국의 힘에 도전하는 동급(同級)의 ‘경쟁국’으로 규정했던 것과 달라진 변화입니다.

시진핑은 당대회 보고문에서 특정 국가를 명시하지 않았으나 “중국공산당의 중심 임무는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强國)을 전면건설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뤄야 한다”고 했습니다. “21세기 중엽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말은 2049년까지 미국 보다 강한 세계 1위 국가가 되겠다는 선언입니다.

미국과 중국은 기술, 산업, 군사, 통상 등 각 분야에서 양보없는 전략 경쟁(strategic competition)을 펼치고 있다. 양국의 군사적 긴장을 형상화한 이미지/미국 국방부 홈페이지

그는 이를 “새로운 정복 과정(新征程)”이라며 “지금부터 5년이 중요한 관건(關鍵) 시기이고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를 기본적으로 실현하겠다”고 했습니다. ‘대국 굴기’ 목표를 향해 단기(2027년), 중기(2035년), 장기(2049년) 시간표를 밝힌 것입니다.

바이든도 NSS에서 “우리는 지금 미국에게 결정적 시기의 초입에 있다. 앞으로 10년은 결정적 시기가 될 것”이라며 ‘향후 10년’의 중요성을 여러번 강조했습니다. 그의 ‘결정적 10년’과, 시진핑이 말한 ‘2035년까지의 12년’은 거의 일치합니다. 두 나라가 최소 10년, 길게는 30년에 걸쳐 격돌할 것임을 만천하에 알린 셈입니다.

2022년 10월 26일(현지시간)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을 포함한 미국 국방 수뇌부와의 회의에서 “미국은 중국과의 대결에서 ‘결정적인 10년’을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연합뉴스

◇기술·기업·인재 경쟁...정면 충돌

흥미롭게도 두 나라 경쟁의 최대 승부처는 ‘산업 경쟁력 강화’로 서로 같습니다. 문건의 구성부터 그렇습니다.

전체 5개 파트(Part)로 구성된 NSS는 첫 파트(6~13쪽)에서 최대 위협국가로 중국을 지목한 뒤 곧이어 ‘우리의 힘에 투자하기(Investing in Our Strength)’라는 두 번째 파트(14~22쪽)에서 국가 경쟁력 강화 방안을 적시했습니다.

15개 큰 단락으로 구성돼 있는 시진핑의 당대회 보고문은 3번째 단락(22~29쪽)에서 ‘중국식 현대화’와 ‘중국식 현대화 강국’이라는 국가 비전을 제시한 뒤 바로 다음 4~5번째 단락(29~38쪽)에서 경제 성장, 기업 경쟁력, 연구개발, 인재 육성 등을 언급했습니다.

NSS는 이렇게 밝혔습니다.

“미국의 성공 여부는 국내에서 우리의 힘과 복원력에 달려있다. 민간 부문과 개방된 시장에 맡겨만 놓아서는 급속한 기술변화와 공급망 붕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정부 주도의 전략적 공공투자가 21세기 경제에서 강력한 뼈대가 된다.”

이런 이유에서 NSS는 정부가 산업 정책과 혁신 전략(industrial and innovation strategy)를 펴야 한다고 했습니다. 후발국이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정부가 보조금 등을 지급하는 ‘산업 정책’을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도 펴겠다고 한 것입니다. 세부 방법도 내놓았습니다.

“가장 효과높은 공공투자는 국민에게 하는 투자이다. 과학·기술·공학·수학 등 4개 분야에서 고급 교육을 제공하겠다. 우리는 미국을 전 세계의 유능한 인재들이 몰려오는 곳으로 계속 만들 것이다.”

미국이 국가안보 전략의 골간(骨幹)으로 중공의 전유물이던 정부 주도 산업 정책과 인재 육성·혁신 전략을 내세운 것입니다. 너무 흡사해 “두 나라가 짠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당대회 문건 내용입니다.

“물질과 기술 기초가 견실하지 못하면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건설은 불가능하다. 제조 강국(强國), 품질 강국, 우주 강국, 인터넷 강국, 디지털 중국을 만들어야 한다. 국제경쟁력 있는 기업 집단을 갖추고 탁월성을 유지해야 한다.”

중공 제20차 당대회 보고 문건 31쪽

시진핑의 이어지는 말입니다.

“중국식 현대화 건설은 고급 기술 인재 확보·지탱에 달려있다. 천하의 영재를 모아 그들을 활용해야 한다. 우리는 진심으로 인재를 사랑하고, 온 마음을 다해 인재를 키우고 끌어 들이고, 정성을 다해 인재를 쓰고, 목마른 사람처럼 현자를 구하고, 격식에 매이지 말고 각 방면의 우수 인재를 모아 당과 인민의 사업에 써야 한다.”

◇불안·초조함 드러낸 시진핑

두 나라의 국가 전략은 “민간과 시장에 맡기지 않고 정부 주도로 강력한 국가 지원 체제를 만들어 이기겠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미·중이 체제 경쟁의 승부처로 첨단 산업과 기업 육성, 초격차 기술과 고급 인재 확보를 꼽은 것입니다.

후발 주자인 중공의 경우, 이번 20차 당대회에서 새로 발탁된 13명의 당 중앙정치국 위원 가운데 최소 6명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일했습니다. 205명의 당 중앙위원회 위원 가운데 절반 정도(49.5%)는 기술관료 출신입니다.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5년 전 19차 당대회 때 기술 관료 비율은 37%에 불과했는데 앞으로 첨단 기술과 산업 육성에 더 집중하겠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시진핑은 불안과 초조도 드러냈습니다. “격렬한 풍랑이 일고 거칠고 사나운 파도(风高浪急 惊涛骇浪)가 몰려올 수 있으니 편할 때에 위기를 생각하고 대비하자(居安思危 未雨绸缪)”고 했습니다.’ 중국 고전 <시경(詩經)>에 있는 ‘우심충충(憂心忡忡·시름으로 괴롭다)’이란 표현도 보고문에 등장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2년 10월 23일 집권 3기 최고 지도부(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와 함께 베이징 인민대회당 기자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 입장 순서대로 시진핑, 리창, 자오러지, 왕후닝, 차이치, 딩쉐샹, 리시. 입장 순서가 최고 지도부 내 서열을 말해준다. /AFP 연합

◇추락 또는 도약...갈림길에 선 한국

미·중이 일전불사(一戰不辭)를 외치는 마당에, 우리나라의 현주소는 어떨까요? 미국과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우리나라 보다 각각 13.3배, 8.9배 정도 큽니다(2019년 기준). 그런데 우리나라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81로 유일하게 1.0 미만으로 인구 감소 추세가 세계에서 가장 가파릅니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입니다.

미국 경제지 포천(Fortune)이 선정한 ‘2020년 글로벌 500대 기업 순위’를 보면,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 가운데 한국 기업 수만 전년 대비 줄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전년 대비 500대 기업 수가 각각 5개, 1개 늘었고 미국은 전년과 같았는데, 한국만 16개에서 14개로 줄어든 것입니다.

국가별 500대 기업의 매출액 합계에서도 미국과 중국은 모두 증가했으나 한국은 전년 대비 감소했습니다. 우리나라 고급 인재들의 해외로의 유출 지수는 세계 64개국 중 43위로 미국, 중국 보다 못합니다. 이는 우수한 고급 인재들이 해외로 많이 유출되고, 국내에 활동하는 이가 적다는 얘기입니다.

자료=한국경제연구원
자료=한국무역협회, 2019년 기준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국만의 초격차 기술도 지금은 반도체(半導體) 하나 뿐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벌이는 미·중의 산업·기업·고급 인재 육성 방침은 한국의 앞날에 위협거리입니다. 최근 삼성전자, 현대차, LG, SK 같은 대기업들이 수십 조원을 들여 미국에 현지 공장을 짓기로 한데서 보듯, 한국의 기업과 인력, 기술이 블랙홀처럼 바깥으로 쏠려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중하류 국가로 추락하지 않고 미·중으로부터 ‘대접받는 귀한 존재’가 되려면, 우리나라 지도자와 기업인, 연구자, 학자와 전문가들이 두 나라 보다 2~3배 더 깊은 고민과 노력을 해야 합니다. 국민들도 이들이 용기있게 분발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하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5월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생산 시설을 둘러본 후 연설을 하고 있다./뉴스1

그래서 미·중 보다 더 많은 초격차 기술, 더 많은 세계적 인재로 더 많은 세계적 기업을 키워 우리의 실력과 위상을 지금보다 더 높여야 합니다. 여기에 성공할 때 후세의 역사가들은 “21세기 전반 미·중 전략 경쟁이란 위기를 대한민국 국민들은 ‘세계 5강(G5)’ 진입 같은 국운(國運) 상승 기회로 활용했다”라고 평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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