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신용업’으로 이름 바꿔달라는 대부업계… 정부는 ‘난색’
업명(業名)을 대부업 대신 ‘소비자신용업’으로 변경해 달라는 대부업계 요구가 올해도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사실상 정부의 정식 인가를 받은 업체와 불법 사금융업자들이 모두 대부업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업계는 금융 취약계층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8일 대부업계 관계자는 “정부 인가를 받은 우수 대부업체의 업명을 소비자신용으로 바꾸는 내용의 ‘대부업 개정 법률안’이 지난해 6월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현재는 정치권과 금융 당국 모두 법안 통과에 소극적인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 법안은 금융위원회에 등록한 대부업체 가운데 저소득층에 대한 신용대출 실적 등이 대통령령에서 정하는 요건을 충족하는 곳을 우수 대부업체로 지정, 소비자신용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명칭을 구별해 건전한 업체들의 이미지 훼손을 막고 금융 소비자를 불법사채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 법안은 대표로 발의했던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21대 하반기 국회에서 소속 상임위원회를 정무위에서 산자위로 옮기면서 논의와 처리를 주도할 만한 동력이 사라졌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금융 취약계층이 불법사채업 시장으로 내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꼭 필요한 법안”이라면서 “여야 쟁점이 없는 법안임에도 상임위에서 논의가 안 되고 있어 올해 정기국회에서도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대부업계에선 국회에서 여야 갈등으로 필요한 법안들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만큼, 금융 당국이 나서 이를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상황이다. 그러나 당국은 자칫 ‘정부가 대부업을 장려한다’는 비판을 우려해 직접 나서기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아직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라 국회에서 논의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부업계가 소비자신용업으로 명칭 변경을 원하는 것은 흔히 대부업이라 하면 연 수백%대 고금리와 불법 추심 등을 하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정부 인가를 받은 대부업체는 불법 사채업자와 달리 금융 당국이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관리·감독을 받는다. 이들 업체는 법정최고금리 상한을 지키면서 합법적으로 영업하고 있다는 게 대부업계 설명이다. 대부업체가 받을 수 있는 법정최고금리는 연 20%로, 금융위와 한국대부금융협회에 정식 등록된 곳은 약 2000여곳에 이른다.
정식 인가 업체가 불법 대부업체와 같이 대부업이라는 명칭에 묶이면, 계속 해서 이미지 훼손과 소비자들의 오해를 피할 길이 없다는 게 대부업계 주장이다.
대부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정식 대부업체 외에는 대부업 명칭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불법 사채업자들은 광고나 간판 등에 대부 명칭을 쓰고 있다. 금융소비자 입장에선 정식 대부업체와 불법사채업자들의 구별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업 수요는 계속 커지고 있다. 정부의 대출 규제 강화로 시중은행은 물론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서도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문턱이 높아진 탓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대부업 이용자는 170만9000명으로 조사됐는데 올해 상반기에만 10만명이 몰렸다. 실제 통계에 안 잡히는 대부업을 가장한 불법사채업까지 포함하면 이용자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대부업 이용자들의 평균 대부 기간이 길어지고 액수 또한 커지고 있다. 평균 대부액의 경우 2019년 461만3000원에서 지난해 522만7000원으로 500만원대를 넘더니, 올해 상반기는 653만원으로 600만원대에 이르고 있다. 평균 대부 기간도 2019년 41.9개월에서 올해 상반기 44.3개월로 증가했다.
한 대부업계 관계자는 “명칭 변경은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것도 아니고 간단한 사안에 해당하지만, 국회와 금융 당국 모두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불법 사채업과 정식 대부업 구분이 어려운 소비자들만 계속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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