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만에 최저' 경매 시장 한파?…"다들 내년을 기다려”
경매 감정가는 최소 6개월에서 1년 전에 정해져…부동산 하락기, 입찰 도전 미루는 투자자들
“경매 시장 한파요? 다들 내년을 기다리는 거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거래가 뚝 끊기면서 경매 시장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법원 경매에 나온 서울 아파트가 낙찰까지 되는 비율은 21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고 경매 물건별 응찰자 수는 지난해 10월 대비 반 토막 났다.
경매 시장은 통상 일반 부동산 매매 시장의 선행 지표로 꼽힌다. 부동산 시장 전반에 걸친 하락기가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경매 시장 역시 부동산 시장과 마찬가지로 대출 규제나 금리 인상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경매 전문가들은 내년 경매 시장 활황을 예상한다. 통상적으로 경매 물건의 감정가는 최소 6개월에서 1년 전에 산정되기 때문이다. 최근 몇 개월간 나온 경매 물건은 2021년 말부터 2022년 상반기 가격이 반영됐다. 시장이 좋을 때 평가된 매물은 감정가가 높다. 하지만 부동산 하락기가 도래하면서 경매 시작가가 현 시세나 급매 가격보다 높은 경우가 많아 유찰 횟수가 늘고 낙찰률은 떨어지고 있다.
반면 내년 상반기 이후 나올 물건들은 올해 하반기 가격이 반영된다. 부동산 하락기 가격이 반영되면 자연스레 경매 시작가도 낮아진다.
여기에 앞으로 금리가 계속 오르면 원금과 이자 상환 부담을 견디지 못한 ‘영끌족’이 보유한 아파트가 경매 시장에 쏟아질 것이란 예상도 있다. 이미 경매 시장에 매물이 늘고 있다. 지난 10월 서울 아파트 107건에 대한 경매가 진행됐는데 2021년 10월에는 31건에 불과했다. ‘경매 고수’들이 내년을 바라보며 관망하는 이유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금리 인상이 경매 시장 하락의 가장 큰 이유이고 시장에서 급매물이 소화되지 않은 상황인데 내년에는 부동산 하락기에 감정된 물건이 나올 예정이어서 내년 경매 시장이 더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경매, 21년 만에 최저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10월 서울 아파트 낙찰률은 17.8%를 기록했다. 10건 중 2건도 낙찰되지 않은 셈이다. 이는 글로벌 금융 위기가 전국 부동산 시장을 강타한 2008년 12월(22.5%)보다 낮은 수준이다. 10건 중 7건이 낙찰됐던 지난해 10월(73.5%)과 비교하면 ‘경매 시장이 얼어붙었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경기(31.90%)나 인천(31.10%)과 비교해도 서울 아파트 낙찰률이 가장 낮았다. 유찰에 따른 가격 하락을 기대하고 물건에 응찰하지 않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의미다.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도 떨어지고 있다. 10월 낙찰가율은 전월 대비 1.1% 하락한 88.60%를 기록했다. 9월과 비교하면 낙찰가율 하락 폭이 좁지만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치다. 낙찰가율이 119.9%였던 지난해 10월과 비교하면 하락세가 뚜렷하다. 감정 가격이 1000만원인 물건이 지난해 10월 1199만원에 낙찰됐지만 지금은 880만원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10월 낙찰가율이 120%에 달할 정도로 높았던 것은 그만큼 부동산 시장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낙찰가율이 낮아지는 것은 그만큼 시장 가격이 더 낮아질 것이란 예상이 반영된 결과다. 10월에는 수요가 높은 지역인 목동과 서초구 잠원동에서도 유찰이 발생했다. 감정가액보다 20% 하락한 가격에 경매 최저가액이 형성됐고 권리 분석 결과도 깨끗하고 임차인도 없어 명도(임차인 집 비우기)에 대한 걱정도 없는 물건들이었다. 하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시세보다 20억원 싸” 강남은 굳건
반면 강남구는 경매 시장에서도 굳건했다. 지난 10월 강남구 아파트 낙찰가율은 95.79%로 서울 평균 낙찰율보다 7% 높았다. 강남구 아파트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및 실거주가 의무지만 경매는 예외다. 낙찰받은 뒤 직접 거주하지 않고 전세를 놓을 수 있다 보니 투자 수요 유입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지난 10월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삼성 전용 195㎡는 48억899만원에 낙찰됐다. 감정가 51억7000만원 대비 3억6000만원 정도 내린 가격으로 낙찰가율은 93%다. 지난 4월 실거래가 64억5000만원보다 20억원 이상 저렴하게 나오자 응찰자 6명이 몰렸다.
첫 경매에 낙찰된 물건도 있다. 강남구 대치동 대치현대아파트 전용 114㎡는 지난 10월 감정가 26억원에 첫 입찰을 진행해 최고가인 26억1120만원에 낙찰됐다. 낙찰가율은 100.4%다.
강남권 아파트는 현금 부자들의 수요가 몰리면서 상대적으로 금리의 영향을 받지 않고 한 번 유찰 시 20~30%씩 하락하는 경매 시장 특성상 가격이 비싼 아파트일수록 하락 폭이 크기 때문이다.
이주현 선임연구원은 “강남구는 그동안에는 15억원 이상 초과 아파트에 대한 대출 규제가 있었기 때문에 금리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자치구였다”며 “대출 규제가 풀렸다고 해도 금리가 너무 높아 응찰자 수가 늘어나지는 않겠지만 현금 여력이 있는 매수자들이 시세보다 저렴하게 구매하기 위한 매수세가 이어지면서 다른 자치구 대비 낙찰가율이 낮아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스> “10억원짜리가 1억원에?” 떠안는 보증금이 9억원일 수 있다
경매 시장은 부동산 시장보다 복잡하다. 꼼꼼히 따져봐야 할 사항도 더 많다. 경쟁이 줄어들고 가격이 떨어진다고 해서 무턱대고 경매 투자에 나서는 것은 금물이다. 특히 초보자들은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경매는 집주인이 돈을 갚지 못해서 나온 집이다. 따라서 여러 채권자에 대한 권리 분석과 명도(임차인 집 비우기)에 관해 꼼꼼하게 분석해야 한다.
어떤 부동산이 경매에 나왔는지 알기 위해서는 법원 경매 정보 사이트에 들어가야 한다. 경매 물건에서 부동산을 클릭하고 지역별·용도별로 나온 물건을 볼 수 있다. 감정 가격과 면적 등도 알 수 있다. 지지옥션이나 네이버부동산경매 등 민간에서 운영하는 사이트도 있다.
물건을 확인했다면 각 부동산에 해당하는 등기부등본이나 물건 명세서를 통해 임차인 여부와 전입 일자를 확인하는 등 권리 분석이 필수다.
특히 전세를 낀 경매인지가 중요하다. 대항력을 갖춘 임차인이 있으면 보증금을 낙찰자가 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세입자의 전입 신고일이 ‘말소기준권리’보다 늦거나 같으면 낙찰자에게 그 대항력을 주장할 수 없다. 이때 낙찰자가 보증금을 대신 물어주지 않아도 되고 임차인은 집을 비워 줘야 한다.
또 물건의 가처분이나 가압류, 근저당권, 배당 요구 권리를 가진 권리자들을 알기 위해 ‘등기 권리’의 기준을 봐야 한다. 경매가 이뤄진 후 이 등기 권리가 모두 말소된다고 명시돼 있어야 깨끗한 물건이다.
매물을 꼼꼼히 분석한 후 경매에 참여하고 싶다면 해당 부동산 경매를 진행하는 경매 법정에 직접 가야 한다. 준비물은 신분증·도장·입찰 보증금이다. 사이트에 올라온 매각 기일에 맞춰 갔더라도 당일 아침에 변경될 수 있다. 법정에 붙은 게시판에서 물건 목록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경매 법정은 아날로그다. 집행관의 주의 사항을 들은 후 입찰표와 입찰 봉투를 받아 입찰 금액란에 원하는 가격을 숫자로 적어 내면 된다. 이때 잘못 작성했다면 수정하지 말고 반드시 새로운 입찰표에 다시 써야 한다. 수정하면 입찰 무효다. 만약 입찰 금액을 착각해 잘못 적었다가 낙찰되면 입찰 보증금을 그대로 날리게 된다. 입찰 보증금은 최저 매각 가격의 10%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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