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그만] ②OECD 수준 사고 감축…수술대 오르는 중대재해법
"책임자 범위 구체화, 사고 반복 사업장 페널티 더 강하게" 견해도
[편집자주] 1월27일 발효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0개월째, 안전 관리를 철저히 하기 위해 사업주에게 더 큰 책임을 묻고 처벌을 강화했지만 노동 현장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일터에서 죽음이 끊이질 않는다. 중대법 시행 후 9월말까지 433건의 중대재해로 446명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시행 전과 매한가지다. 중대법 그물망도 빠져나가는 구멍이 여전히 큰 까닭일까. 현행 중대법 만으로 막을 수 없는 사각지대를 조명하기 위해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적 한계를 6차례에 걸쳐 진단해 본다.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1.27) 10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법 실효성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정부여당과 경영계는 '처벌'일변도의 현행 중대법이 시행됐음에도 산업현장에서 노동자 사망사고가 끊이질 않는다는데 사업주의 자율 의지로 안전보건 의식을 함양하도록 하기위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대안이 현 정부에서 수립 중인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이다. 정부는 연내 로드맵 발표를 목표로, 현재 각계 분야의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 중이다.
노동계의 생각은 다르다. 법 시행 후에도 노동자 사망사고가 줄지 않는 것은 현행법의 모호한 책임 규정에 따른 처벌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법 처벌 강화'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대재해 감축이라는 공통의 목표에도 각각의 견해차가 큰 만큼 '로드맵'이 발표돼도 논란은 쉬이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尹 "누구나 안심하며 일할 수 있는 대한민국…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준비"
8일 정부 등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당초 10월 공개 예정이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발표 일정을 연말까지 미뤘다.
표면상 이유는 노동계·경영계·전문가 등 의견수렴 일정이 계획보다 늦어지면서 밀렸다는 것인데, 최근 SPL 제빵공장 노동자 사망사고 등 산업현장에서의 굵직한 중대재해 사망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중대재해'가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하자 로드맵 발표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윤석열 대통령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일련의 중대재해 사망사고가 터질 때마다 현재 수립 중인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기다려 달라고 했다.
SPL 제빵공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하고, 경북 봉화 한 광산에서 광부 2명이 고립되었을 당시인 지난달 29일 윤 대통령은 개인 SNS에 "누구나 안심하며 일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정부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정식 장관은 취임 후 첫 출석한 국정감사에서 관련 사고들에 대한 대책을 묻는 질의에 매번 해결책으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강조하기도 했다. 정부 차원에서는 최소 현 정부 5년의 중대 산업재해 안전관리 방향을 설정한다는 목표로,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중대재해감축 로드맵은 산재사망 사고를 5년 안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수준으로 낮추기 위한 방안으로 △위험성 평가 기반 자율 예방체계 구축 △노·사 공동 위험요인 발굴·개선 △맞춤형·스마트 기술 지원 확대 △직업성 질병·암 예방체계 구축 등을 방향으로 논의 중이다. 구체적으로 사업장마다 노사가 함께 작업 매뉴얼을 만드는 등 자율·예방 측면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는다.
◇중대재해 로드맵…'경영책임자' 범위 구체화, 형량 조정, 기업 안전보건 예산 공시 의무 등 예상
정부가 마련 중인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서 가장 관심사는 시행령 개정 여부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부터 중대재해법 개정 입장을 밝혀왔다. 다만 여소야대 형국에서 모법 개정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시행령을 통한 수정·보완을 시사했고, 그 결과가 추후 공개될 로드맵에 담기는 셈이다.
로드맵에는 현행 중대재해법 규정 중 처벌대상인 '경영책임자'의 모호한 범위와 관련해 일선현장에서 혼란이 있는 만큼 이를 시행령에서 구체화하는 안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시행에 들어간 중대재해법은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에게 '1년 이상의 징역형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 법인의 경우 5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경영책임자 등'의 의미와 범위의 확정이다. 중대재해처벌법 2조 9호에는 '경영책임자 등'이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통상 기업에서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이 대표이사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다음 단락이다.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보니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 때문에 정부는 법 규정에 대한 불확실성을 막기 위해 이 부분을 명확히 하겠다는 것이다.
기업의 안전보건 예산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 기업 재무상태에 대한 공시는 이뤄지고 있지만, 기업이 안전보건 개선을 위한 예산을 얼마나 투자했는지에 관한 정보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어 객관적인 노력 여하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
안전보건 예산이 공개됨으로 인해 해당 기업의 투자에 대한 결정 요소로 작용하게 되면 기업들의 자발적인 산업 안전 투자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실제 미국에서는 매달 사고 건별로 기업명과 위반사항, 벌금, 이전 사고 이력까지 공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현행 '경제 형벌규정'적 성격을 '행정제재'로 전환하거나, 형량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등의 방안도 유력하게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시행령 개정에 대한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이어서 고용부로서도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당초 10월 예정했던 로드맵 발표 일정 연기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현행 법안서 더 강력한 구속력 갖도록 보완 필요…추가 페널티도"
일각에는 정부 기조와 달리 보다 근본적인 중대재해 감축을 위해서는 현행 중대법 처벌 수위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반복적인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이나 인명 피해가 큰 곳에는 형사적인 처벌 외에 사업을 영위하는데 있어 각종 페널티를 주는 방식으로 기업 활동에 제약을 주는 수준의 제재가 이뤄져야 뚜렷한 개선 효과가 나타날 것이란 견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법안이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 만큼 더 강력한 구속력을 갖도록 보완하지 않으면 중대재해 사고는 크게 개선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현행 중대법도) 경영자에 대한 형사적인 책임을 비켜나면 법인(기업) 입장에서 제재를 받는 것은 벌금·과태료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물론 그 금액을 대폭 상향했다고는 하지만, 외국과 같은 징벌적 손해배상 방식은 아니다. 여전히 일부 기업들에서는 안전 구축을 위한 시설·환경개선보다는 '혹시 사고 나겠어'하는 안이한 마음가짐으로 이를 감수한다. 사망사고가 끊이질 않는 이유"라고 했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중대재해법 하나만으로는 어렵다"며 "예컨대 중대재해 사고 다발 사업장에는 국가나 지자체, 공공기관 등에서 발주하는 공사에 입찰 결격기간을 부여하는 등의 기업 활동에 직접 제약을 주거나, 대출·기업체 발행에 있어 불이익을 주는 등의 행·재정적 제재를 함께 병행하는 식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uni121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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