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대응 기본은 정보 공개부터"…해외 주요 사고 수습 사례 보니
국내 시스템 갖추고도 운영 안 돼…"국민 신뢰 바탕돼야"
(서울=뉴스1) 이비슬 한병찬 기자 = "우리나라의 장점은 휴대전화, 인터넷 등을 통한 빠른 정보 공유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태원 참사와 같은 위기 상황엔 정확한 정보가 없어 답답했어요." (대학생 유훈의씨)
"큰 인명피해가 발생하면 당연히 정부 기관이 뭘 했는지부터 묻게 되죠. 기사를 통해서 접하는 정보가 전부이다 보니 의문이 드는 점은 뉴스 댓글에 달아요." (직장인 양훈철씨)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대형 재난 발생 시 정부 주도의 투명한 정보 공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태원 참사 당시 기관별 대응 현황부터 사고 수습 단계, 향후 계획과 사고 대처 방법까지 체계적인 안내가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주요국에선 대형 참사 때마다 별도의 홈페이지를 개설해 사고와 관련한 정보와 정부 자료 원문을 모두 공개한 전례가 있다.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와 같이 각 부처가 합동 대응에 나서야 할 때는 충분한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이 정부 신뢰를 잃지 않는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사흘 만에 112신고 녹취 공개…원인 규명 '우왕좌왕'
8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전문가들은 재난관리 책임 기관이 공개하는 정보는 대형 참사를 효율적으로 수습하는 수단 중 하나로 꼽았다.
조성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국민에게 이해하기 쉽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라며 "만약 대응이 잘못돼 비난을 받더라도 정부가 신뢰를 잃지는 않아야 한다. 이것이 국가 재난 대응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국가의 재난 대응 과정은 숨기려 해도 숨길 수가 없다. (밝혀지는 것은) 시간의 문제"라며 "그사이 정보가 교란되면 정부 신뢰도가 낮아지기 시작한다.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를 공유하는 것이 신뢰를 유지하며 사고를 수습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4조2항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안전에 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하며 누구든지 정보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태원 참사는 사고 바로 다음 날부터 경찰 인력 배치 현황, 112와 119신고 내용 및 접수 시간, 용산구청을 포함한 각 기관장 행적, 대통령과 장관까지 보고 도달 시간 등은 사고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주요 관심 대상이었다.
하지만 경찰 초동 대응이 미흡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사고 발생 사흘 만인 지난 1일 경찰청이 112신고내역을 공개한 뒤부터다. 이후 이태원 경력 운영 현황, 용산경찰서장 행적 등이 줄줄이 공개되며 참사 원인 규명과 책임자 수사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하루 4번씩 발표해도…" 사고 정보 어디에? 대규모 재난 시 수습을 총괄·조정하는 조직은 행정안전부 산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다. 통상 국무총리를 본부장으로 두며 행안부 장관이 차장을 맡는다.
300여명의 국내외 사상자가 발생한 이번 이태원 참사의 경우 발생 직후부터 행정안전부, 경찰청, 소방청, 서울시, 교육청, 외교부 등에서 사상자 집계와 사고 현황 등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기관별 집계 내역이 중복되는 등 정보 공개 및 발표가 비효율적으로 이뤄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행안부에 따르면 중대본은 지난 30일부터 하루에 네 차례 '이태원 사고 대처 상황보고서'를 발표했다. 각 정부 부처 집계 현황을 종합한 이 자료는 행안부 홈페이지 안전관리일일상황 게시판에 공개됐지만 실제 접근 경로를 알고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정작 사고 발생 초기 유가족 역시 제대로 된 안내를 받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그중 일부는 사고가 발생한 지 12시간이 지나도록 연락 두절인 자녀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해 언론 보도를 보고 확인한 병원 곳곳을 돌며 가족을 찾는 일도 있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통합시스템을 구축해 정보를 공개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며 "여러 창구의 정보가 다를 경우 국민도 혼란스럽고 신뢰도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日, 재난 하루 만에 정보공개 홈페이지 구축 해외에선 대형 사고 발생 시 정보 공개를 위한 별도의 홈페이지를 개설해 운영한 사례가 있다. 2016년 11월 일본 후쿠오카시 하카타역 앞에 지름 30m, 깊이 15m의 일본 최대 규모 싱크홀이 발생했을 때 일대가 정전되고 가스가 누출되는 피해가 속출했다.
후쿠오카시는 사고 당일 즉시 '함몰 사고 복구 상황'을 알리는 페이지를 개설하고 복구 계획, 진행 상황, 보도자료, 주변 시설물 상황, 외국인 안내 정보를 게시해 빠르게 사고를 수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에선 2007년 8월 미국 미네소타주 미시시피강을 가로지르는 교량이 붕괴돼 13명이 사망하고 145명이 부상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미네소타주는 교량 붕괴 사고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날짜별 수습 현황과 우회로 안내, 교량 정보뿐 아니라 조사 보고서 PDF 파일 원문을 내려받을 수 있는 등의 방식으로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국내에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74조(재난관리정보통신체계의 구축·운영)에 따라 행안부와 재난 관리 책임기관이 국민 행동 요령, 대피소 위치, 보험 정보, 재난복구와 같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에선 유명무실한 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현철 숭실대학교 대학원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부처별로 공무원 업무가 매우 과중한데 홈페이지와 같은 창구를 만들어 정보를 제공할 시간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고 전했다.
문 교수는 "이번 참사의 문제는 우리나라에 시스템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아예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은 홈페이지 또는 언론 보도, 정부의 브리핑을 포함해 다양하고 반드시 하나의 홈페이지에 일원화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단순한 정보 전달보다 정리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b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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