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1일'과 '221시간', 그리고 '156명'[광화문]
"우주에선 뜻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어. 어느 순간 모든 게 틀어지고 '이제 끝이구나' 하는 순간이 올 거야. '이렇게 끝나는구나' 포기하고 죽을 게 아니라면 살려고 노력해야 하지. 그게 전부다. 무조건 시작하는 거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음 문제를 해결하고 그다음 문제도. 그러다 보면 살아서 돌아오게 된다."
영화 '마션'의 마지막에 나오는 명대사다. 2015년 개봉한 이 영화의 주인공 맷 데이먼(마크 와트니 역)은 화성 탐사 도중 홀로 남겨졌다가 조난 561일 만에 지구로 돌아온다. 그가 물도 식량도 산소도 없는 화성에서 '감자' 재배에 고군분투하는 장면을 보면서 생존을 위해 한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감동한 기억이 있다.
2003년 미국 유타주의 블루존캐니언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127시간'이란 작품도 마찬가지다. '살고자 하는 의지보다 강한 것은 없다'는 홍보문구처럼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절벽 사이에 갇혀 127시간 동안 사투를 벌이는 제임스 프랭코(아론 랠스턴 역)의 연기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로프와 칼, 500㎖ 물 한 병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결국 굴러내린 암석에 깔린 팔마저 잘라내던 그에게 감정이입이 된 채 삶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지난 4일 밤 11시3분. 이 같은 기적이 우리에게도 일어났다. 경북 봉화군에 있는 아연채굴광산에서 발생한 매몰사고로 지하갱도에 갇힌 2명의 광부가 극적으로 구조된 것이다. 이들은 지난달 26일 광산 지하 46m 지점 갱도 내에 흙더미가 쏟아지면서 고립됐지만 무려 '221시간'을 견뎌낸 뒤 스스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걸어나왔다. 이후 봇물처럼 쏟아진 그들의 생존기는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
우선 텐트처럼 나무막대를 세우고 비닐을 둘러 추위를 막았으며 마른 나무로 모닥불을 피워 체온을 유지했다. 영화 '마션'에서 맷 데이먼을 살린 감자처럼 작업할 때 가져간 '커피믹스'로 허기를 달래고 갱도 위에서 떨어지는 지하수로 목을 축이며 생을 이어갔다. 무엇보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서로를 다독이며 구조당국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열흘을 버틴 결과 가까스로 구조대와 만났다. 오죽하면 윤석열 대통령도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라고 했을까.
그럼에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때때로 냉정하고 참혹하기 그지없다. 온 국민이 두 광부의 생환을 애타게 기원한 이유도 세월호 사건 이후 최대 참사로 기록될 이태원 압사사고의 시간과 겹쳐서다. 지난달 29일 핼러윈축제를 즐기기 위해 이태원에 갔다가 순식간에 몰려든 인파에 깔려 소중한 생명을 잃은 희생자는 '156명'에 이른다. 여기에 부상자(197명)를 합하면 사상자는 총 353명으로 늘어난다.
이들에겐 영화 '마션'과 '127시간'에 등장한 주인공들이나 봉화광산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광부들처럼 생존을 위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사인이 대부분 심정지로 인한 '압착성질식사'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경우 심폐소생술로 회생 가능한 3~5분 안팎을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으로 본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한 당일 밤 드러난 정부 당국의 대응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정부 내 재난안전 컨트롤타워인 행정안전부는 물론이고 경찰과 소방청, 지방자치단체(서울시·용산구) 등 관련 기관들의 대처는 미흡하다 못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안일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도 국회에서 "(관련 당국이) 본연의 역할을 했다면 156명은 사망하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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