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채권시장, 더 큰 위기 온다는데…'이들'한테는 기회

김평화 기자, 김사무엘 기자, 김근희 기자 2022. 11. 8.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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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기업, 증권상품 깨고 환매 러시..PF CP 다음은 '랩' 충격?
증권사 유동성 위기가 부동산PF(프로젝트 파이낸싱), CP(기업어음)에 이어 단기금융상품으로까지 번졌다. 연말에 급전이 필요한 기업들이 연이어 증권사 금융상품을 해지하고 돈을 빼가는 '환매 러시' 조짐이 나타난다.

레고랜드 사태, 흥국생명 콜옵션 미이행 등 자금시장의 경색 위기가 연이어 나타나면서 기업도, 증권사도 얼어붙었다.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위기 징후에서 중소 증권사의 유동성 위기가 약한 고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말 레고랜드 ABCP(자산유동화 기업어음) 채무불이행 사태가 터진 이후 증권사 법인 고객들의 금융상품 해지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전반적으로 높아진 가운데 기업의 연말 자금 집행 수요까지 겹치면서 급전이 필요한 기업들이 단기적으로 유동화하기 쉬운 증권사 금융상품부터 해지하고 나선 것이다.

기업은 평소에 여유 자금을 굴리기 위해 다양한 금융상품에 가입한다. 은행의 정기예금에 넣어두기도 하지만 이보다 금리가 좀 더 높은 채권, 펀드, MMF(머니마켓펀드) 등에 투자하기도 한다. 증권사가 제공하는 법인용 상품으로는 랩어카운트(종합자산관리서비스), 금전신탁 등이 있다.

다양한 금융상품으로 여유 자금을 굴리던 기업들의 분위기가 최근 달라졌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CP, 단기사채 등의 부도 위험이 높아지면서 이같은 자산을 담은 랩 상품에 대한 불안감도 커졌다. 게다가 레고랜드발 부동산PF 시장 위기로 증권사의 유동성 위기가 부각되자 증권사에서 판매한 상품은 더 불안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중요한 건 연말이 다가올수록 기업의 자금 집행 수요가 커진다는 사실이다. 기일이 돌아오는 어음을 막거나 대출 이자를 내기도 하고 연말 상여금·성과급 등에도 상당한 돈이 들어간다.

문제는 기업의 자금조달 사정도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은행 대출 금리는 계속 오르는 중이고 신용등급이 우수한 회사채도 이자를 연 5~6% 이상 줘야 한다.

더 많은 이자를 주고서라도 돈을 빌릴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 회사채 시장은 한국전력이나 금융회사 같은 최고 우량등급이 아니면 돈을 빌리기조차 어렵다. 주식시장은 분위기가 더 험악하다. CB(전환사채) 발행이나 유상증자는 꿈도 못꾼다.

증권사에 맡겨 놓은 금융상품을 해지하는 게 편하다. 수도권에 있는 A증권사 지점장은 "최근 법인 고객들이 단기상품 위주로 환매 요청을 하고 있고 기존에 하려던 투자도 유보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최근 일련의 사태로 '증권사 상품은 불안하다'는 인식이 생기다보니 연 6~7%짜리 상품을 제시해도 예금이나 수시물 같은 안전자산 위주로만 찾는다"고 말했다.

지방에 있는 B증권사 PB(자산관리사)는 "레고랜드 사태 전에 3개월짜리 단기상품에 가입한 법인 고객들은 최근 상품에 문제가 없는지 문의해 온다"며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상품 만기가 돌아오는 연말에 롤오버(재투자)하지 않고 현금 상환을 받는 고객이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환매 요청이 계속되면 증권사 유동성에도 부담이 된다. 환매 요청에 대응하려면 신규 유입된 자금으로 환매하거나 금융상품에 담긴 자산을 매각해 돈을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현재 법인 신규 자금 유입은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금융상품에 있는 CP나 회사채 등을 팔아야 하는데 녹록찮다. 우량 회사채도 다 소화가 안 되는 상황에서 갖고 있는 자산을 급하게 팔려면 금리를 더 높게(가격을 싸게) 제시해야 한다. CP 91일물 금리는 지난달 초 3.31%에서 지난 4일 4.88%로 한 달 만에 1.57%포인트 급증했다. 역마진을 감수해서라도 손해를 보고 팔아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대형사에 비해 자금력이 떨어지는 중소 증권사의 상황은 더 안좋다. 대형사는 발행어음 등으로 자금을 조달할 여력이 있지만 중소 증권사는 그렇지 않다. 원리금보장형 상품인 ELB(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나 DLB(기타파생결합사채)의 금리를 높여 자금을 조달하려고 해도 시장에서 완전히 소화되지 않는다.

C증권사의 WM(자산관리) 부장은 "대형 증권사도 단기자금 유출이 심각한데 중소 증권사의 상황은 더 심각할 것"이라며 "금융지주사가 있거나 모기업 지원이 있는 증권사는 그나마 낫지만 그렇지 않은 증권사는 잘못하면 흔들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말 기준 증권사 건전성 지표인 NCR(순자본비율)가 평균(717%) 이하이면서 투자일임계약 잔고가 1조원 이상인 증권사는 △교보증권 7조2958억원 △유진투자증권 3조7629억원 △하이투자증권 2조5227억원 △유안타증권 2조3399억원 △IBK투자증권 2조2779억원 등이다.

관건은 증권사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기 전에 자금시장 경색 문제를 얼마나 완화할 수 있느냐다. 금융당국은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를 조성해 50조원 이상 유동성을 공급할 계획이다. 5대 금융지주는 95조원 규모의 시장 유동성과 계열사 자금 지원으로 시장을 안정화한다. 금투업계에서는 대형 증권사 9곳이 4500억원 규모의 '제2의 채안펀드'를 조성해 중소형사의 유동성을 지원하기로 했다.

김지영 교보증권 연구원은 "증권사들이 2000년대 이후 몇 번의 위기를 거치면서 자본확충을 많이 해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하지만 리스크가 어느정도 존재하기 때문에 중소 증권사라 하더라도 대주주나 계열사 지원이 얼만큼 진행되는지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채권시장 '블랙홀' 한전채·은행채 내년에 더 찍는다
최근 국내 단기자금시장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한국전력공사가 발행하는 채권(한전채)과 은행채가 시장 유동성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는 초우량 등급 채권도 6%대 고금리를 제공하는데 신용등급이 낮은 일반 회사채는 설 자리가 없어져서다. 내년에도 한전채·은행채 발행량이 더 늘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자금시장 유동성 위기 원흉으로 강원도 레고랜드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지적되고 있는데 이에 앞서 근본적인 원인은 올초부터 이어진 대규모 한전채·은행채 순발행에 있다.

7일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올들어 신용채권 중 가장 많이 순발행된 채권은 한전채다. 10월까지 순발행된 한전채는 약 20조2000억원치다. 전체 공사채 순발행액 29조9000억원 중 2/3에 달하는 규모다.

한전채 누적 발행액은 지난 봄 15조원을 넘어섰다. 금리인상 시기와 맞물린다. 지난 4월 국고채 3년 금리가 3%를 웃돌았고 한전채 2년 금리가 3.5%에 다가섰다.

올해 발행된 한전채 규모는 총 23조원이 넘는다. 지난해 연간 발행규모(10조3200억원)의 두 배를 넘는 수치다. 표면금리가 연 6%에 육박해 일반 회사채와 큰 차이가 없다. 안정적인데 이자까지 많이 주니 채권시장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는 건 당연했다. 한전은 1년6개월 만기 채권을 발행하며 단기자금시장의 돈을 흡수했다.

한전채와 마찬가지로 초우량 채권으로 분류되는 은행채 발행도 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은행채의 '대장' 산업은행채권(산금채)부터 은행채 스프레드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는 시중은행채(시은채) 스프레드 확대로 이어졌다.

김상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크레딧 시장의 혹한기는 한전채 순발행으로 시작됐다"며 "고금리 초우량물인 한전채 만기가 짧아지면서 기존 1~2년 만기가 메인테너인 은행채를 건드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일반 기업들의 은행 대출 증가, 환율 상승 방어 등으로 은행채 순발행은 5월부터 최근까지 빠르게 확대됐다"며 "지난 9월 전체 은행채 발행은 역대 최대인 약 25조9000억원(순발행 7조4000억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고채금리 변동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초우량물들의 대규모 순발행이 지속되면서 채권시장은 위약해진 상태"라며 "지난 9월말 연말을 앞두고 이미 회사채 AA-(이하 3년) 크레딧 스프레드는 100bp를 코앞에 둔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12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한전채나 은행채 등 초우량 등급의 발행량이 늘어나면서 그 아래 회사채들이 구축(驅逐)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정부는 은행권과 공공기관들에 채권발행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지난달 말 한국은행은 금융권에 자금을 공급할 때 담보로 받는 적격담보 대상에 공공기관채, 은행채와 한전채를 포함시키기로 했지만 '블랙홀'을 채우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김 연구원은 "산금채를 비롯한 특은채의 발행이 전격적으로 감소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은행채 전반의 순발행 기조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전 역시 수십조원대 적자에 허덕이고 있어 채권발행을 늘리면 늘렸지, 줄일 여력은 없는 상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근 단기자금시장 유동성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한전채와 은행채 대규모 발행은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100억 넣으면 7억 꼬박꼬박…세금도 안내" 자산가들 채권에 뭉칫돈
"고액자산가들은 꾸준히 채권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금융상품 중 채권만 팔린다고 할 정도입니다."(정세호 한국투자증권 GWM센터 팀장)

강원도 레고랜드발(發) 자금경색으로 채권시장이 얼어붙었지만 고액자산가들은 오히려 채권을 찾는다. 금리상승 국면이 이어지고 있고 채권투자로 절세까지 가능해서다. 개인 투자자의 채권 순매수 금액은 최근 4배 가까이 늘었다

7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의 올 1~10월 장외 채권시장 순매수 금액은 16조7528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다. 지난달만 보면 개인은 2조3135억원치 채권을 순매수했다. 전년 동기 대비 4배 증가한 수준이다.

반면 지난달 전체 채권 순매수액은 27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1.49% 줄었다. 레고랜드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에 이어 흥국생명의 콜옵션(조기상환) 미이행 사태까지 터지면서 기관들이 순매수 규모를 줄인 영향이다.

개인투자자는 만기까지 채권을 보유해 표면금리만큼의 이자 수익을 기대하며 채권을 산다. 김지만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채권시장 변동성이 커졌지만 만기 보유하려는 개인투자자들의 채권매수는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세호 한국투자증권 GWM센터 팀장도 "채권 투자 붐이 일었던 지난 6~8월처럼 채권이 단시간에 바로 팔리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고액자산가들이 채권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최근 문제가 된 레고랜드 관련 채권들은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전단채지만 국고채나 여타 회사채는 결이 다르다"며 "디폴트만 없다면 만기 시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4일 기준 국고채 3년물의 최종호가 수익률은 4.118%다. 국고채 10년물은 4.182%, 회사채(무보증 3년) AA-등급은 연 5.591%, 회사채(무보증 3년) BBB-등급은 연 11.438%를 기록했다.

고액자산가들이 채권을 찾는 또 다른 이유는 '절세'다. 채권투자로 이자수익과 매매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이자소득에 대해서만 이자소득세 15.4%가 부과된다. 매매차익에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금리인상기에 표면금액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된다. 금리인상기에 싼 값에 채권을 사들이고 향후 금리인하기에 채권을 팔아 매매차익을 챙긴 후 채권 표면금리에만 부과된 세금만 내면 된다.

예컨대 만기 1년짜리 액면가 1만원짜리 표면금리 6% 채권을 9800원에 매수한다고 할 때 표면금리 6%에 대해서는 과세가 돼 이자수익 600원의 15.4%인 92원의 세금이 부과되지만 매매차익 200원은 비과세다. 9800원을 투자한 결과로 수익 708원을 남겨 세후 7.08% 금리를 챙길 수 있는 셈이다

최근 한전채 등 초우량 신용등급 채권도 6%에 육박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채권 투자자가 챙겨갈 수익규모는 더 커진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지난 8월까지 30억원 이상 초고액자산가의 저쿠폰채권 매수 금액은 전년 동기 대비 6.4배 급증했다. 국내채권은 표면금리 1% 내외 국채에 주로 집중됐다. 상품에 따라 고객의 평균매수금액은 22억원을 기록했다. 특정 채권의 경우 인당 평균 250억원의 투자가 몰리기도 했다.

개인투자자들의 채권투자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KB증권이 지난달 24일부터 25일까지 이틀동안 WM(자산관리) 자산 1억원 이상 비대면 고객 9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26%가 금리인상기 유망 금융상품으로 채권을 꼽았다.

비대면 온라인 고객 상담 전문 센터인 '프라임PB(PrimePB)센터'로 접수된 고객들의 전화상담을 분석한 결과 금융상품 중 채권 관련 문의 비중은 상반기 11.8%에서 하반기 51.4%로 약 4.4배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증권이 지난달 자사의 예탁자산이 1억원 이상인 투자자 2350명을 대상으로 '앞으로 삼성증권에서 가입하고 싶은 상품'이 무엇인지 설문한 결과 채권(34%)이 1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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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평화 기자 peace@mt.co.kr, 김사무엘 기자 samuel@mt.co.kr, 김근희 기자 keun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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