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특수본, '보고서 삭제 의혹' 수사…윗선 주목
"정보경찰 근본 문제" 지적도
[더팩트ㅣ최의종 기자] 서울 이태원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이 많은 인파를 예견한 용산경찰서 정보보고서가 사고 이후 삭제된 정황을 포착해 수사하고 있다. 삭제 과정에 윗선이 관여했을 가능성도 제기돼 수사 결과에 따라 파장은 클 것으로 보인다.
8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이태원 사고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참사 이후 용산서 공공안녕정보외사과(정보과)의 많은 인파를 예견한 보고서가 삭제된 정황을 포착해 6일 용산서 정보과장·계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증거인멸,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했다.
부실 대응 논란을 조사 중인 경찰청 특별감찰팀(특감팀)은 앞서 당시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 류미진 전 인사교육과장(총경)과 이임재 전 용산서장(총경)에 이어 박성민 서울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경무관)과 용산서 정보과장도 수사를 의뢰했다.
용산서 정보과장은 지난달 26일 작성된 정보보고서를 묵살하고, 참사 후 삭제를 회유한 의혹을 받는다. 정보계장도 회유한 의혹이 있다. 보고서에는 '많은 인파로 인한 보행자들 도로 난입, 교통불편 신고, 교통사고 발생 우려' 표현이 있었다. 다만 인파에서 비롯된 사고 우려 표현은 없었다.
핵심은 보고서를 작성한 실무진 컴퓨터에서 원본이 삭제되는 과정에 윗선이 개입했는지다. 특수본에 따르면 해당 보고서는 첩보관리시스템에 정상 등록됐고, 72시간이 지나 자동으로 삭제됐다. 그러나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하자'고 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첩보관리시스템에는 삭제됐으나 실무진 컴퓨터에 남아있는 원본까지 삭제시켜 사실상 보고서 존재 자체를 없애려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다만 보고 과정 특정 문구를 빼라고 했다는 진술은 없었다는 것이 특수본 설명이다.
아직 입건되지는 않았으나 특감팀이 용산서 정보과장과 함께 박성민 서울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도 수사를 의뢰한 만큼, 피의자는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윗선 개입 여부도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특수본은 회유 주체를 본격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당시 용산서장 이임재 총경의 행적이 담긴 상황보고서가 허위 작성됐다는 의혹도 제기돼 들여다보고 있다. 국회에 제출된 상황보고서에는 이 총경이 참사 발생 5분 뒤인 오후 10시20분쯤 현장에 도착했다고 기재돼있다.
그러나 특감팀 조사 결과 이 총경은 발생 50분 뒤인 오후 11시5분이 돼서야 이태원파출소에 도착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감팀에 따르면 대통령실 인근 집회 지휘를 마치고 늦은 저녁 식사를 한 이 총경은 오후 10시쯤 현장에서 도보로 13분 거리인 녹사평역에 도착했다.
차량으로 이동하기 위해 55분 동안 일대를 맴돌았고 오후 10시55분 이태원 엔틱가구거리에서 내려 도보로 이태원파출소에 도착한 것이다. 실제 도착 시간이 상황보고서와 45분 차이가 있다. 특수본은 7일 보고서 작성자를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수본은 용산서 정보과장·계장 외에 전 용산서장 이 총경과 당시 서울청 상황관리관이던 전 인사교육과장 류미진 총경, 박희영 용산구청장, 최성범 용산소방서장 등 6명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보고서 삭제를 정보경찰의 책임 회피 시도라고 본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전에도 정보기능에서 비슷한 문제가 있었는데, 보고 체계 허점이 드러나니까 책임을 회피하려고 사후 조치한 것으로 보인다"며 "분명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총경 의혹을 놓고는 '고의성'이 쟁점이라고 본다. 김 교수는 "상황보고서 성격상 대략 기재할 수는 있으나 악의적 또는 고의로 기재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무엇보다 보고 받은 시점과 그 이후에 어떤 조치가 있었는지가 쟁점이 될 수 있다"고 봤다.
bel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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