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양자경의 제3 전성기? 소리소문 없이 역주행한 이 영화
소리 소문도 없이 역주행하는 영화가 있다. 지난달 국내 개봉한 미국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가 그런 경우다. 개봉 이후 27일 만에 누적 관객 24만명. ‘1000만 관객’의 히트작들이 즐비한 극장가에서 미미한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흥행 추이를 보면 정반대의 현상이 확인된다. 지난달 12일 개봉 당시 일일 관객은 6300명에 그쳤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1만4000여 명으로 늘었다. 관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는 이야기다.
입소문의 이유가 있다. 철저하게 영화광들을 위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시공간을 넘나드는 ‘다중 우주(멀티버스)’를 평범한 중국계 이민 가정에 적용하는 기발한 상상력에서 영화는 출발한다. 미국으로 이민을 온 뒤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던 여주인공 에블린(양쯔충·楊紫瓊)은 당국의 세무 조사와 남편의 이혼 요구가 겹치는 바람에 혼란에 빠진다. 그 순간 일상에서 탈출구를 발견하고서 엉겁결에 뛰어들고 만다.
일상과 환상이 마구잡이로 뒤엉키는 초반 설정은 영화 ‘매트릭스’를 연상시키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다차원의 세계는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같은 초능력 영웅들로 흥행몰이를 했던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 시리즈를 닮았다. 한마디로 배경은 지극히 소시민적이고 일상적인데, 그 이후에 일어나는 상황들은 우주적이고 초현실적이라고 할까. 이 기묘한 대비야말로 이 영화의 매력을 설명하는 핵심어다. 실제로 ‘어벤져스’ 시리즈의 감독 루소 형제가 제작을 맡았다.
만약 양쯔충(양자경)이 아니었더라면, 이 영화의 재미는 반감될 뻔했다. 1980년대 홍콩 액션물 ‘예스 마담’의 전설적 주인공이었던 이 배우도 올해 60세. 하지만 양쯔충의 영화 인생에는 ‘20년 주기설’이라도 존재하는 걸까. 2001년 아카데미 4관왕에 올랐던 ‘와호장룡’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렸던 양쯔충은 이번 영화로 또다시 세 번째 전성기를 맞이할 기세다. 세파에 찌들어 살던 평범한 딸이자 주부, 어머니였던 에블린이 자신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여주인공으로 변모하는 짜릿한 반전은 양쯔충이 아니었다면 소화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난해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 이어서 이 배우의 할리우드 진출에도 한층 가속이 붙고 있다.
1970~1980년대 공포 영화 ‘할로윈’ 시리즈로 ‘호러 퀸(Horror Queen)’으로 불렸던 여배우 제이미 리 커티스(63)가 악역인 국세청 여직원으로 호흡을 맞췄다. 어떤 의미에서 이번 영화는 백전노장인 두 여배우의 ‘역전 드라마’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도 1억달러(약 1300억원)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뉴욕타임스 등 일부 외신들은 내년 아카데미 작품상의 강력한 복병으로 점치기도 했다. 과연 ‘찻잔 속의 태풍’으로 출발했던 이 영화는 진짜 돌풍을 일으킬까. 제목처럼 ‘모든 건(everything) 어디서든(everywhere) 한꺼번에(all at once)’ 일어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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