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비극적 사고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은정 기자 2022. 11. 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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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156명 사망, 경찰 112 시민신고 외면…위기대응 지휘체계 붕괴
정치권 정쟁 벌여선 안돼…재난시스템 정비 철저히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와 사고 골목 입구 초입에는 압사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국화다발이 수북이 쌓여 있다. 156명의 목숨이 쓰러진 골목에는 이들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태원은 지방 사람들이 서울 나들이를 할 때 즐겨 찾는 곳이다. 개성 있는 맛집과 카페가 몰려 있는 경리단길, 해밀톤호텔 뒤 세계음식문화거리, 패션 로데오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압사 참사 소식을 처음 알게 됐을 땐 “설마”라는 말을 되뇔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1일 인도네시아 축구 경기장에서 100명 넘는 관중이 압사했다는 뉴스를 듣고 “아직도 저런 후진국형 사고가 발생하나”며 흘려들었는데…. 서울 시내 한복판 골목에서 사람들이 압사당했다고 하니 믿기지 않았다.

참사는 지난달 29일 핼러윈 축제를 맞아 인파가 몰리면서 시작됐다. 이후 해밀톤호텔 인근 좁은 골목에 사람들이 밀려 쓰러지면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현장 구급대원들이 아무리 온 힘을 써서 당겨도, 포개지고 뒤엉킨 시민을 제때 구조할 수 없었다. 이번 일로 인한 사망자는 7일 기준 외국인 26명 포함 156명이며 부상자는 200명에 가깝다. 생일을 하루 앞두고 친구들과 놀러갔던 아들, 취업에 성공해 상경한 딸, 한국을 좋아해 교환 학생으로 왔다가 변을 당한 외국인 유학생 등 피해자들의 절절한 사연에 많은 국민이 눈시울을 붉혔다. 우리 주변의 보통 젊은이들이 축제에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비통한 일이다. 일어나지 않아야 할 참사에 희생당한 이들과 유가족들의 아픔에 그 어떤 위로도 소용없을지 모른다.

이번 이태원 참사로 많은 국민은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해 되묻고 있다. 외신은 사고 발생 후 “당국에 책임이 있다” “분명 피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보도를 잇따라 했으나 정부는 책임 회피성 발언을 했다. 대한민국 안전을 총괄하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변명으로 일관했다. 참사 발생 다음날이었던 지난달 30일 이 장관은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 “경찰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고 했다. 만약 사실이라도 정부 고위관계자가 저런 말을 쉽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국민 정서를 무시하는 공감력 제로의 전형적인 엘리트 모습이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외신기자 회견에서 부적절한 농담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이 장관의 설명과 달리 이번 참사의 원인은 행정책임자들의 태만과 안전불감증이었다. 대형 참사가 벌어진 현장에서 경찰 지자체 중앙정부의 공권력은 보이지 않았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3년만에 열리는 첫 노 마스크 축제라는 점에서 사람이 많이 몰릴 것으로 예상됐다. 사고 당일 오후 6시30분부터 이미 이태원 일대는 통제 불능이었다고 한다. 충분한 경찰병력 배치와 안전 조치가 필수인데 경찰은 “이태원이 붐비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를 외면했다. 더구나 이날 저녁 참사 현장 인근에는 서울청 소속 기동대 1개 부대가 대기 중이었다고 한다. 비상 상황이라는 시민들의 다급한 112 신고가 잇따랐으나 기동대 병력이 대기만 한 채 현장에 투입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태원 참사 당일 경찰의 현장대응과 보고 체계 문제가 총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시민신고 무시에다 이태원 치안을 책임진 용산경찰서장은 사고 발생 45분 전 현장이 위험하다는 보고를 받고도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장은 상황실이 아닌 자기 사무실에 있다가 뒤늦게 보고를 받았고 치안총책임자인 윤희근 경찰청장은 서울이 아닌 충북 청주 캠핑장에서 밤 11시 잠이 들 때까지 사고를 인지하지 못했다. 경찰의 재난 대응과 보고, 지휘체계가 무너진 셈이다.

“막을 수 있었다”는 사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쏟아지고 있지만 모두 결과론적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제는 사고의 정확한 원인 규명과 부실 대처 이유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정부가 1조5000억 여원의 예산을 배정해 구축한 재난안전통신망이 무용지물이었다. 버튼만 누르면 경찰과 소방 지자체 해양경찰 등 재난 관련 기관이 한 번에 소통할 수 있는 전국 단일 통신망이라고 한다. 뼈아픈 참사에서 교훈을 얻어 막대한 예산을 써놓고도 실제 상황에선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 5일 7일간의 국가애도기간이 끝나자 정치권은 사고 원인의 ‘신속한 수사’와 ‘국정조사’를 놓고 다투고 있다. 국가적 재난을 놓고 정쟁을 벌인다면 심각한 사회갈등은 피하기 어렵다는 점을 정치권은 명심해야 한다. 큰 비극적인 사고가 잇따랐지만 우리 사회는 달라지지 않고 있다. 철저한 사고 원인 규명과 재난시스템 정비가 시급하다. 그렇지 않으면 제2의 세월호, 제2의 이태원 참사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이은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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