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경제 항산항심] ‘설마’ ‘그러려니’ 불감증 제발 그만

국제신문 2022. 11. 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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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니까 애들에게 밥 한 끼 먹여야 할 것 아니에요?” 이태원 참사 이후, 참혹한 골목 현장에서 장사해온 한 상인은 참담한 심경에 울먹였다. 골목 한가운데 돗자리를 펴곤 흰 밥과 배 등으로 차린 제사상에 절한 후 무릎 꿇은 채 흐느꼈다. 현장 통제로 제사상을 치우려던 경찰도 어깨를 들썩이며 큰 소리로 우는 상인을 다독일 땐 눈물을 훔쳤다. 방송을 보던 온 국민의 가슴은 아리듯 미어졌다.

이태원 참사는 ‘설마’ ‘그러려니’하는 마음으로 관련 행정당국과 우리 사회가 외면했던 안전불감증에 의한 인재였다. 이태원 참사는 비단 안전 분야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다.

작년 상인 의식과 관련한 연구를 한 적이 있다. 다양한 상인 의식이 단체몰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는 탐색적 실증 연구였다. 많은 응답자가 설문 내용 중 노동자와의 소득 대비, 직업 저평가 등에선 불편함을 느꼈다. 단체의 필요 의식이 높았지만 “정부가 뭘 해주나?”라고 할 땐 ‘그러려니’ 자위하는 마음이 만성이 된 듯 시큰둥했다. 정부나 지자체의 자영업 정책에 대한 불만이 단적으로 드러나 보였다.

코로나19의 장기화는 소상공인 피해뿐만 아니라 웬만한 중견업체까지 부도로 내몰고 있다. 10월 말 두 점포를 운영하던 중견업체의 부도로 지역 유통업체 분위기는 죽상이다. 불과 석 달 전 여러 구에서 점포를 운영하던 소매업체의 부도가 있었던 터라 그 충격이 더욱 컸다. 소식을 접한 몇몇 중견업체 대표들은 “살얼음을 걷는 자신의 처지와 별반 다름없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최악의 경영환경에 올겨울을 넘길지 모르겠다는 넋두리에 앞날이 아득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중견업체와 거래하는 영세납품업체까지 덩달아 부채의 수렁에 빠져들어 연쇄 부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중견소매업체와 거래하는 납품업체는 대략 70~80여 곳으로서 자신이 납품하는 거래처의 부도를 염려하고 있다. 하지만 줄어드는 매출 때문에 거래처를 가려가며 영업할 수가 없다. 늘 불안한 마음이지만 ‘설마’하는 마음으로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 일부 제조사 직영업체는 지급보증을 받아 거래하지만, 납품업체 대부분에겐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다. 본사가 할당하는 목표를 달성해야 하기에 사실상 부실 거래처 정리가 불가능하다.

최근 유제품 기업 푸르밀이 11월 말 사업을 종료한다며 전 직원 정리 해고를 통지했다. 사전 예고 없이 접한 폐업 소식이라 뒤통수를 맞은 건 근로자뿐만이 아니었다. 폐업과 매각을 저울질하며 유리한 입지를 다지려는 본사 조짐에 노심초사 하루하루 지켜보던 500여 납품업체 대리점주들은 벼랑 끝에 내몰렸다. 이들은 초기 척박한 환경이지만 황무지를 개척하는 마음으로 생업 터전을 일구었다. 푸르밀은 대선주조 인수 당시 향토기업 마케팅을 펼치면서 파격적인 지원과 시민의 사랑을 받았지만, 4년 만에 엄청난 차액을 챙기며 매각해버려 시민으로부터 ‘먹튀 기업’이란 손가락질을 받던 기업이다. 그러한 푸르밀의 폐업방침에 허망함과 분노를 주체할 수 없다.

올 5월부터 영업을 시작한 젊은 대리점주는 은행에 융자한 대출금과 주변 지인에게 융통한 자금까지 포함해 전 재산을 쏟아부으며 권리금과 물류 창고, 냉장 트럭 등을 준비했다. 생계대책은커녕 늘어난 빚을 어떻게 갚아갈지 눈앞이 까마득하다.

‘샘을 보고 하늘을 본다’라는 속담이 있다. 한없이 넓은 하늘에는 무관심했다가 샘 속에 비친 하늘을 보고서야 비로소 하늘을 쳐다본다는 뜻으로, 늘 보고 겪는 것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하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주변에서 고통의 수렁에 빠져 절규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도 ‘그러려니’ 무관심하게 지나쳤듯이 ‘설마’ 하던 불감증이 악몽 같은 이태원 참사를 유발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작은 이태원 현상이 널브러져 있다. 이 사회에는 자신의 탓으로만 고민하며 관심조차 받지 못하다가 서서히 꺼져가는 이들이 많다. 제발 행정 당국과 지자체는 ‘설마’ ‘그러려니’ 불감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절규하는 이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새로운 인식으로 현장을 찾아 나설 때다.

이정식 ㈔중소상공인살리기 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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