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사막의 스톤헨지’가 진짜 보석이 되는 날
천연가스 부국이 벌이는 ‘돈 잔치’일 뿐이라고들 수군거렸다. 세잔과 고갱의 걸작부터 앤디 워홀과 제프 쿤스의 현대미술까지, 근 10여 년간 가장 비싼 미술품 경매에는 카타르의 공주 셰이카 알 마야사(39)의 이름이 빠짐 없이 등장했다. 이름난 건축가들의 장엄한 건물이 수도 도하의 거리를 빼곡히 채운 것도 같은 시기다. 정말 아랍 왕족의 값비싼 취미 활동일 뿐일까. 지난달 24일 도하 이슬람예술박물관(MIA)에서 처음 그의 육성을 들었다.
“미술품과 박물관의 경험은 사회와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고,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는 통로입니다. 그 바탕에 있는 카타르의 전통 베두인 문화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거예요.” 낙타 떼가 오가는 카타르 사막에 지름 10m의 거울 원반 19개를 설치한 미술가 올라푸르 엘리아손과 공공미술의 힘에 관해 대화하던 공주가 말했다. 그라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을까. “아버지는 말씀하셨어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해. 괜찮아. 걱정하지 마. 그냥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돼.”
아버지 하마드 빈 칼리파 전 국왕은 20대 시절부터 그에게 MIA 건설을 시작으로 카타르 문화 정책을 이끄는 책임을 맡겼다. 2008년 완공 뒤 지난 10월 재개관한 MIA 건물은 루브르박물관 유리 피라미드의 설계자인 이오밍 페이의 작품으로, 영국박물관에 뒤지지 않는 이슬람 문물 컬렉션을 갖춰 ‘사막의 스미소니언’(이코노미스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카타르는 1인당 GDP가 한때 세계 1위를 찍을 만큼 부유한 나라. 하지만 인구는 300만명이 안 되고 국토 면적은 한국의 10분의 1 정도다. 바로 곁 사우디아라비아, 바다 건너 이란 같은 대국들 틈새에 낀 이 작은 나라는 이집트 피라미드 같은 문화유산도 없다. 그럼에도 ‘석유 이후’를 대비해 문화예술 투자 드라이브에 명운을 걸었다. 미술품 구입과 박물관 건설은 세계의 관광객이 최고의 예술품과 건축물을 보기 위해 파리, 런던에 가듯 도하로 오게 될 날을 예비하는 작업이다.
카타르는 과거뿐 아니라 미래도 사들인다. 오래된 여학교, 낡은 소방서를 리모델링한 예술가 지원 센터에는 카타르의 경연대회에서 입상한 뒤 기회를 얻은 중동 각국의 젊은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모여 작품 활동을 한다.
아트 레지던시 ‘리완’에서 만난 레바논 청년 로니 헬론(30)은 “명품 브랜드 발렌티노와 협업 기회를 얻었다. 이곳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2만9000㎡의 패션 디자인 창업센터 ‘M7′, 수퍼모델 나오미 캠벨이 아프리카 출신 크리에이터들을 키우는 ‘이머지 탤런트’ 등 도하 곳곳에 이런 청년 예술가 지원 시설이 있다.
이들이 다음 세대의 루이 비통이나 티에리 에르메스가 될 수 있을까.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해외 콩쿠르 1위 기사가 신문 1면에 실리고 기능올림픽 우승자들을 카 퍼레이드로 모시던 시절이 있었다.
도하에서 차로 1시간 반 정도 거리 사막에는 미국 설치 미술가 리처드 세라가 높이 14m의 거대한 강철 기둥 네 개를 세운 설치 미술 작품 ‘동-서/서-동’이 서 있다. 중세의 베네치아가 그랬듯, 동양과 서양을 잇겠다는 카타르의 문화적 야심을 상징하는 이 ‘사막의 스톤헨지’(하퍼스 바자)도 역시 셰이카 알 마야사의 아이디어다. 인근에는 유목민 캠핑 체험 시설이 있어, 사막 한가운데인데도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월드컵이 열리면 더욱 붐빌 것이다.
“경제와 권력의 중심이 변화하면 예술의 방향도 바뀌죠. 지금으로부터 50년, 100년 뒤는 어떨까요. 나도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셰이카 알 마야사 공주는 말했다. 사막에 세워진 강철 모노리스는 현대의 스톤 헨지가 될 수 있을까. 강단을 갖춘 지도자가 확고한 비전으로 인재를 키우고 예술을 후원하고 있다. 그 시간의 축적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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