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옆집 밥을 먹어봤나요?
아주 옛날 초등학교도 들어가기도 전, 옆집에 자주 놀러가곤 했다. 친구가 있어선 아니었다. 그 집엔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상급생이 있었고 만화책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어린 나는 그냥 내 집처럼 찾아가 만화책 읽고 간식 먹고 어느 때는 밥도 얻어먹었다. 학교 들어가고선 친구들과 어울리다 누군지도 모르는 이웃집에 들러 보리차를 얻어 마시기도 했고, 나 역시 처음 보는 아이를 친구라며 집에 데려와 밥을 먹이기도 했다.
참 천진난만했다. 무얼 믿고, 상대방이 어떤 나쁜 마음을 가졌는지 알 수 없는데 그렇게 마구 돌아다녔을까. 얼마전 ‘남이 준 과자가 마약일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글을 보았다. 이제는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순수하게 반가워하기보다, 나에게 어떤 피해를 끼치지 않을지 의심하고 경계하게 된다. 세상은 왜 이리 빨리 변해버렸을까?
물론 옛날이라고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한 가정 폭력도 있었고 아동 학대, 절도가 있었다. 지금이라면 신문 사회 면에 크게 실렸을 끔찍한 범죄들이 ‘가족의 일’이라며 그냥 넘어갔다. 조선시대 때 오고 간 편지를 보면 옛날에도 남에게 돈을 뜯어내는 몰염치한 사람이 있었고, 악당도 많았다. 인간 세상은 언제나 힘들고 괴로운 것이지만 어릴 때의 나는 그걸 아직 몰랐던 것뿐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모두 이기적이라고 한다. 중국 춘추시대 철학자 양주는 “내 머리카락 하나를 뽑아서 세상을 도울 수 있다 해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는데, 요즘 사람들이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면 양주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춘추시대야 전쟁이 끊이지 않는 혼란기라 그랬겠지만, 지금은 왜 그럴까. 사람들은 이기적인 것일까, 아니면 불안한 걸까.
아무렇지 않게 옆집에 가서 놀고 밥 먹을 수 있던 예전이 그립다. 그러면서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나에게 공기처럼 주어졌던 그 많은 호의(好意)들을 돌려줄 수 있을까? 언젠가 나도 아무 이익을 바라지 않고 남을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 우리 옆집 밥은 어떤 맛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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