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전 아즈텍 사람들의 식탁은 유럽보다 풍성했다
[上] 아메리카의 작물, 세계의 입맛을 바꾸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이후 세계사의 큰 흐름들이 변했다. 그 가운데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세계인들의 입맛을 바꾸어놓았다는 점이다. 아메리카 주민들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세계 각지에 전해져 새로운 음식들이 만들어졌다. 옥수수, 감자, 고구마, 호박, 토마토, 가지, 고추, 담배, 아보카도, 바닐라, 코코아(초콜릿) 등의 작물이 모두 아메리카산이다. 이런 식재료들이 없다면 이탈리아의 피자, 벨기에의 감자튀김, 영국의 피시앤드칩스, 그리고 한국의 김치는 오늘날 분명 다른 맛이든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터이다.
1519년, 코르테스가 지휘하는 에스파냐 정복자들이 오늘날 멕시코에 해당하는 아스텍 제국으로 진격해 들어갔을 때 이들을 놀라게 한 것은 궁성과 신전만이 아니었다.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은 유럽 어느 도시보다도 더 크고 번성했다. 후일 정복 연대기를 쓴 베르날 디아스(Bernal Diaz del Castïllo)는 틀라텔롤코(Tlatelolco) 시장을 보고 “중국이나 오리엔트 세계와 겨눌 수 있는 세계 최대 시장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들은 처음 접하는 다양한 작물들, 파인애플, 망고, 파파야 같은 과일들, 역시 처음 보는 칠면조 같은 동물들 앞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메리카 대륙은 기후대가 다양한 데다가 높은 산맥의 경사면을 따라 올라가며 고도가 달라질 때마다 식생대가 달라져 식물 종이 매우 다양하다. 자연히 이곳 주민들은 선사시대부터 지극히 다양한 식용 작물과 약용 작물들을 재배할 수 있었다.
이런 식물들을 재료로 한 다양한 조리 전통도 발전했다. 아스텍인들은 이전 시대에 살았던 테오티우아칸이나 톨텍 주민들의 전통을 수용한 데다가 광대한 주변 지역 주민들의 문화 또한 받아들였다. 그 결과 16세기에 멕시코 지역 주민들은 유럽인보다 훨씬 풍부하고 균형 잡힌 식단을 향유하고 있었다. 옥수수, 토마토, 호박, 고추 등의 기본 재료에다가 새, 멧돼지, 오리, 거위, 개구리, 올챙이, 여기에 더해 각종 구근 식물, 식용 꽃, 해초류, 식용 곤충 등 실로 다양한 식재료를 보유했고, 색깔을 맞춘 소스들을 사용하는 아주 세련된 조리를 했다. 조만간 이런 다양한 작물들과 조리법이 유럽과 전 세계로 확산했다.
한두 가지 사례를 보자. 토마토는 멕시코 고원과 안데스 산지가 원산지이다. 나우아틀(Nahuatl)어의 ‘토마틀(tomatl)’ 혹은 ‘히토마트(jitomate)’가 토마토라는 말로 변했을 것이다. 아메리카 주민들은 고추를 함께 사용하여 토마토 소스를 만들어 음식에 맛을 냈다. 토마토는 콜럼버스와 동시대에 이미 에스파냐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주로 관상용으로 재배했지만, 이후 나폴리와 제노바를 통해 이탈리아로 들어갔고 결국 이 나라 요리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탈리아인들은 이 작물을 ‘포마도로(poma d’oro, 황금의 사과)’라고 불렀다가 이 말이 변하여 오늘날 토마토를 가리키는 단어인 포모도로(pomodoro)가 되었다.
옥수수는 오래 전부타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서 재배해 왔다. 기원전 1000년 경 주민들이 옥수수 가루로 오늘날 토르티야와 비슷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옥수수가 아메리카 문명 내에서 매우 중요한 작물이라는 것은 마야의 ‘포폴 부(Popol Vuh)’ 같은 신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은 첫 번째 인간을 진흙으로 만들었는데 홍수 때 파괴되었고, 두 번째 인간은 나무로 만들었는데 강한 비바람에 해체되었으나, 흰 옥수수 죽으로 만든 세 번째 인간은 지금까지 잘 생존해 있다는 설명이다. 아메리카 주민들의 기본 음식이었던 옥수수는 유럽에 들어온 후 곧바로 주식의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하고 동물 사료로 사용되었다가 바스크 지역부터 사람이 먹는 음식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새로운 먹거리를 곧바로 수용하지는 않으려 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처음 경험하는 기이한 맛의 식재료를 접하면 이런 것들이 몸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지 의심하게 된다. 중세와 근대 초 유럽 의학은 체액들 간 균형으로 인체의 건강을 설명했는데, 신대륙에서 들어온 음식물은 균형을 깰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 기독교도가 아닌 야만인들의 음식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사람들은 원래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이와 다른 것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컨대 예로부터 빵을 만들어 먹은 유럽인들에게 빵을 만들 수 없는 감자는 주식(主食)이 되기 힘들었다. 성경에서도 예수가 제자들에게 빵을 잘라주었지 구운 감자를 나누어준 적은 없지 않은가.
따라서 낯선 작물들을 수용하는 과정은 우선 기존의 익숙한 음식과 대비하는 방식으로 시작한다. 감자와 고구마는 밤 맛이 나는 커다란 순무로, 파인애플은 소나무에서 열리는 사과로, 고추는 매운맛이 한층 더 강한 후추로 이해하는 식이다. 아보카도나 카카오 같은 것은 도저히 비슷한 작물을 찾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고대와 중세의 문헌들에서 유사한 사례들을 찾으려 했다. 이때 어떤 작물에 대해 안 좋은 속설이 붙으면 오랫동안 확산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예컨대 가지는 유대 음식 재료와 통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마침 시고 강한 냄새를 띠고 있어서 독성을 띤 것으로 오해했다. 땅속에서 음흉하게 자라는 것으로 보이는 감자는 초기에 만드라고라(mandragdra, 마술적인 힘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식물)와 유사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게다가 나병을 옮긴다는 루머까지 돌았다. 일반인들이 어쩔 수 없이 감자를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서 아일랜드 같은 일부 지역에서 인구 대다수를 먹여 살리는 작물이 된 데에는 심각한 기근이 한몫을 했다. 굶어죽을 바에야 그 동안 천시하던 음식이라도 먹을 수밖에 없었고, 일단 먹기 시작한 다음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주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반면 처음에 좋은 인상을 부여받은 경우에는 확산에 훨씬 유리하다. 예컨대 고추는 중세 이래 사람들이 애타게 찾던 후추와 같은 계열의 향신료로 취급되었다.
어떤 작물이 한 사회의 농업 체제 안에 들어가고 많은 사람이 먹는 음식이 되어 안정적인 위치를 차지하기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을 요하곤 한다. 그러기까지 대개 식물원에서 자라며 옥석이 가려진다. 많은 식물학자와 화초 애호가가 호기심의 대상으로 아메리카 작물들을 키우곤 했다. 16세기 중엽에 감자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벨기에, 독일의 식물원에서 관상용으로 길렀다. 토마토 역시 ‘황금의 사과’ 혹은 ‘사랑의 사과’로 불렸고, 프랑스에서 고추는 ‘정원의 산호(corail de jardin)’라는 멋진 별명을 얻었다. 이런 식으로 신작물이 과연 현지 풍토에 맞는지 점검을 거친 끝에 식물원에서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간다. 고추나 토마토는 텃밭에서, 옥수수나 감자는 밭으로 가서 본격 재배되었다. 그렇지만 어떤 식물은 식물원에서 빠져나가는 데 2~3세기의 긴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어떤 식물은 아예 못 나가는 경우도 있다.
아메리카의 많은 작물은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친 후 각국의 주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감자가 전해지지 않았다면 독일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토마토가 전해지지 않았다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입이 심심해서 어떻게 살았을까? 유럽뿐 아니다. 아메리카 작물들은 곧 아시아와 아프리카로도 전해져 그야말로 세계의 음식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멕시코 원산의 고추가 전해지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나라와 인도, 헝가리의 음식은 어떻게 되었을까? 고추가 세계인의 음식을 한층 맵게 만든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에 살펴보기로 하자.
몬테수마의 테이블
1519년 11월 8일 아스텍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에 입성한 연대기 작가 베르날 디아스는 몬테수마 황제의 연회에 참석한 후 기록을 남겼다.
“황제의 음식을 위해 요리사들은 30종류 이상의 음식을 만들었다. 음식은 작은 진흙 화로 위에 올려 놓아서 식지 않도록 했다. 몬테수마를 위해서만 300접시가 넘는 음식을 준비했고, 손님들을 위해서는 1000접시가 넘는 음식을 만들었다. 식탁에는 하얀색 식탁보와 작은 수건들을 올려놓았고, 여인 4명이 그릇에 물을 가져와 황제가 손을 씻도록 했다. 식사 중에는 황금색을 칠한 일종의 문짝을 세워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하였다.... 식사 후에는 모두 2000그릇이 넘는 카카오 음료를 마셨고, 끝없이 많은 과일이 나왔다.”
다른 증인인 아귈라르 수사(Fray Francisco de Aguilar)는 이 연회에 사용된 식재료가 무엇인지 기록한다. 칠면조, 꿩, 자고새, 메추라기, 비둘기, 오리, 사슴, 멧돼지, 토끼, 애벌레, 선인장(샐러드를 만들었다), 달팽이, 메뚜기, 해조류, 게다가 인육(人肉)까지 있었다. 어느 신에게 희생을 드리느냐에 따라 노예, 젊은이, 여성 혹은 아이의 살을 골라서 요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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