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팔 없는 내게 호른과의 만남은 기적의 시작”

김성현 기자 2022. 11. 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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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발로 호른 연주하는 클리저, 내일부터 서울·평창서 리사이틀
펠릭스 클리저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독일 호른 연주자 펠릭스 클리저(Felix Klieser·31)의 연주를 실연(實演)이나 영상으로 보기 전에는 먼저 눈을 감는 편이 좋다. 금관악기 특유의 웅장함과 호른만이 지니고 있는 부드럽고 따스한 음색을 모두 느낄 수 있다. 잠시 후 눈을 떠보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그는 양손이 아니라 왼발로 호른을 연주하기 때문이다.

‘왼발의 호른 연주자’ 클리저를 7일 서울 서초동에서 만났다. 그는 9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과 12일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방한 리사이틀을 앞두고 있다. 양팔 없이 태어난 클리저는 다섯 살 때부터 호른을 배웠다. 장애를 지닌 연주자들에게는 흔히 ‘불굴’이나 ‘승리’ 같은 수식어들이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는 호른과의 첫 만남을 “그저 우연이자 기적”이라고 불렀다. 그는 “집에 피아노도 없었고 음악을 전공하거나 취미로 악기를 연주하는 가족도 없었다. 심지어 호른을 처음 보았던 날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어릴 적 독일 동요 한 곡을 끝내기까지 1년 반이나 걸린 걸 보면 음악적 재주도 변변치 않았던 것 같다”며 웃었다.

펠릭스 클리저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그런데도 하나의 악기에 오랫동안 매달렸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는 “한 가지를 제대로 해낼 수 있다면, 다른 모든 것도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13세에 하노버 음대 예비 학생으로 들어간 뒤 3년 뒤에는 정식 입학했다. 지금은 6장의 음반을 발표한 전문 연주자가 됐다. 2016년 독일 명문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음악제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상(賞)을 받았고, 2018년부터는 독일 뮌스터 음대에서 후배들을 가르친다. 그는 “부드럽고 달콤한 사운드부터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상황에 따라서 다채로운 음색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호른의 매력”이라고 했다. 설령 클래식 음악은 낯설더라도 영화 ‘쥬라기 공원’ ‘스타워즈’에서 흘렀던 호른 선율만큼은 친숙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물론 힘든 점도 적지 않았다. 어릴 적엔 방바닥에 앉으면 눈높이가 호른과 비슷해서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키가 점점 자라면서 연주 방법을 바꿔야만 했다. 내 덩치는 커지지만 악기는 언제나 그대로니까…”라고 말했다. 지금은 고정 지지대 위에 호른을 올려 놓고서 왼발로 음정을 조절하는 밸브를 누른다. ‘알렉스’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악기에 별도의 장치를 부착하는 일도, 바로크부터 현대음악까지 연주 곡목의 제약도 없다. 그는 “손가락의 역할이 결정적인 피아노나 바이올린과 달리 호른 연주의 80~90%를 차지하는 건 입술”이라며 “나 역시 입술을 통해서 대부분을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는 조재혁의 피아노 연주로 베토벤의 호른 소나타, 슈만의 ‘아다지오와 알레그로’ 등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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