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관료’라는 대참사
[숨&결][이태원 참사]
[숨&결] 이주희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예기치 못한 죽음 뒤에는 치명적인 내상을 입고 남겨진 사람들이 있다. 나는 20대에 어머니를 잃었다. 심근경색으로 인한 급사였고, 미국에 있던 나를 포함해 가족 아무도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따라 죽어버리고 싶은 지독한 고통 속의 유일한 위안은 내가 죽고 엄마가 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다정했던 엄마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이런 절망을 결코 이겨낼 수 없을 것이므로. 그래서 자식을 잃은 비통함에 무너져버린 부모와 심하게 다친 자식을 애끓게 걱정하는 부모들이 수백명이 넘었던 10월29일 참사 직후, 책임 있는 고위직들의 태도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관료제는 형식화를 통해 위계 구조를 객관화하는 것, 일정한 역할이 기대되는 자리를 만들고 그 자리 간의 관계를 분명히 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여기서 유래한다. 경직적이고 무기력한, 그저 그런 인물들이 리더가 돼도 상관없다. 하급자나 통치를 받는 사람보다 뛰어날 필요도 없다. 더 못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위계하에서 복종은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도 하며, 공식적인 목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개인의 이해 추구와 조직의 존속 자체가 주된 목적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힘이 소수의 권력자에게 집중되면서 구성원은 움직이는 기계의 톱니바퀴로 전락하고, 결국 인간성을 철창(iron cage) 안에 가두는 결과도 초래한다. 그래서, 관료제를 이론화한 막스 베버는 이 제도가 대중 민주주의와 갈등을 일으킬 것을 우려하였다. 민주주의는 선거와 소환 등을 통해 관료의 임기를 단축하려는 관성을 가진다. 대중은 정치인을 선택할 수 있는 만큼 그를 몰아낼 수도 있다. 이런 갈등은 관료의 정치력 부족으로 더욱 악화한다. 관료제의 한계를 아는 베버는 그의 조국인 독일이 세련된 정치를 하지 못할까 우려하며 관료제의 최고 지위는 유능한 전문 정치인에 의해 채워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윤석열 정부는 공감 능력이 없는 고위 관료의 화려한 학벌과 법적 지식이 얼마나 쓸모없는가를 국민에게 웅변으로 보여준다. 경제가 휘청거리며 수많은 노동자가 일하다가 죽는데도 경제부처는 기업의 탐욕을 부추기는 탈규제와 감세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국민의 안전을 전혀 책임지지 못해 생겨난 참사에 행정안전부 장관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다가 경찰 하위직이 어디서 뭘 잘못했는지 그들에게만 화살을 돌리고 있다. 학생의 공감 능력을 키우기보다는 100미터 경기를 50미터 앞에서 출발할 수 있는 이들을 위해 교육 불평등과 격차를 더 벌리는 데 몰두해온 교육부 장관도 7일 임명되었다. 이 정부의 화룡점정은 참사를 겪은 국민을 농담으로 능욕하는 국무총리이다.
‘개사과’ 이후, 나는 대통령 사과의 진정성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날리면’ 이후에는 사과하지 않는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게 되었다. 진정한 사과에는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야당들이 요구하는 국정조사를 받아 이번 참사의 모든 진실을 밝히고, 유가족들이 더는 그들의 얼굴을 보고 이름을 듣지 않도록 책임 있는 고위 관료들을 모두 경질·파면하는 것이 그 시작일 것이다.
너무나 급작스러웠을 뿐, 질병에 의한 어머니의 죽음으로도 나는 10여년간 죄책감과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만일 내가 죽고 엄마가 살았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원할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죽었음은 물론 태어났다는 것조차 잊은 채, 엄마가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기 바랐을 것 같다. 천천히 슬픔의 늪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자식도 부모를 사랑한다. 청년들의 짧은 생이 너무나 안타깝지만, 그래서 더 빛났을 그들의 삶을 추모한다.극단적인 절망 속에 멈춰버렸을 부모님들의 삶을 위로할 방법이 과연 있을까. 죽음도 막을 수 없는 깊은 사랑이 부모님들께 가닿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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