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개의 바람, 천개의 바람이 되었죠”

박미향 2022. 11. 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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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이태원 참사]

국가애도기간 마지막날이었던 지난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출구 들머리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두고 간 조화와 추모메시지 등이 놓여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편집국에서] 박미향 | 문화부장

지난주 겪은 일이다. 택시를 탔다. 도로 위를 한참 질주하던 택시가 갑자기 멈췄다. 목적지가 아닌데도 말이다. 젊은 택시 기사님이 말했다. “여기서 내리세요. 돈은 안 받겠습니다. 더는 못 갑니다.” 기사님의 황당한 요구에 당황했지만, 뒤이어 그가 한 말은 몸 둘 바를 모르게 만들었다. “제 동생이 이태원에서 죽었다네요. 거짓말인지 알고, 그냥 (손님을) 태운 건데…. 아닌가 봐요. 지금 또 연락이 왔어요. 빨리 가야 해요.” 얼이 나간 듯한 그의 표정에서 비통함이 읽혔다.

지난달 29일 늦은 밤 벌어진 이태원 참사에 온 국민이 애통해하고 있다. 6일 서울시가 낸 자료를 보면, 서울광장과 25개 자치구에 차려진 합동분향소에 31일부터 국가애도기간 마지막 날인 이달 5일까지 11만7619명이 조문했다. 참사 현장엔 매일 흰 국화꽃이 수북하게 쌓이고 있다. 하지만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 및 재발방지 대책을 세워야 할 정부가 국민들과 같은 심정인지는 의문이 든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이태원 참사’를 ‘이태원 사고’로, ‘희생자’ ‘피해자’를 ‘사망자’ ‘사상자’ 등의 용어로 통일하기로 했다. 이 결정에 따라 합동분향소에는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라고 적힌 펼침막이 걸렸다. 국립국어원 누리집을 보면, 중대본의 이 결정이 내포하는 의도를 짐작하고 남는다. 참사는 ‘비참하고 끔찍한 일’ 등을 뜻하는 말이며,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을 의미하는 사고와는 엄연히 그 뜻이 다르다. 희생자(희생을 당한 사람)와 사망자(죽은 사람)도 마찬가지. 희생은 ‘다른 사람이나 어떤 목적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 재산, 명예, 이익 따위를 바치거나 버림, 또는 그것을 빼앗김’을 뜻하는 단어다. 말과 글, 단어와 용어는 현실을 간결하게 규정해 그 핵심을 응축한다. 많은 언어학자들이 글과 말, 용어가 단순히 의미 전달을 넘어 일종의 권력임을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해왔다. 권력 집단이 고른 단어를 허투루 볼 수 없는 이유다. 중대본의 이번 결정은 다분히 이태원 참사를 ‘단순 사고’로 정의하고 그 책임을 희생자들에게 떠넘기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뿐 아니다. 김성회 전 대통령비서실 종교다문화비서관은 지난 3일 자신의 에스엔에스에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을 올렸다. “왜, 부모도 자기 자식이 이태원 가는 것을 막지 못해놓고” “국가도 무한책임이지만, 개인도 무한책임”이라며 희생자 탓을 하는 동시에 사실을 전하는 언론의 논조마저 트집을 잡았다. 2016년 벌어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등 과거 한국 사회가 겪은 참혹한 사건마다 등장한 희생자에 대한 2차 가해와 혐오표현이 이번에도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2차 가해와 혐오표현이 문제인 이유는 사회적 감정에 침투해 증오를 심기 때문이다. 증오는 확산 속도가 빠르다. 인간의 품격을 유지하고 고양시키는 데도 방해가 된다. 증오가 팽배한 사회는 미래를 도모할 수 없다. 독일 저널리스트 카롤린 엠케는 <혐오사회>에서 “증오와 공포로부터 이득을 취하는 자들은 증오와 공포에 불을 붙이는 일에 누구보다 열심”이라며 이들은 “거리의 ‘폭도’라 불리는 이들을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방법은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적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말이 칼이 될 때>에서 “혐오표현은 소수자를 사회에서 배제하고 차별하는 효과”를 낳는 동시에 “폭력이 되고 영혼을 죽이는 일”이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은 아직도 고통 속에 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들을 향한 2차 가해는 참혹한 폭력이다. 정부가 참사의 원인을 한 점 의혹 없이 밝혀내고 책임을 져야 할 관계자에게는 강력한 처벌을 내리는 것만이 2차 가해나 혐오표현 등 증오 문제를 해결하는 답이 될 것이다.

지난주 만난 기사님을 “어린 새들이 (…) 어둠이 깃드는 저녁 하늘로 멀리 날아갈 때”(정호승 시 ‘가슴이 슬프다’에서) 만난다면 노래 한 곡 선물하고 싶다. “나는 천개의 바람/ 천개의 바람이 되었죠 (…) 나의 사진 앞에 서 있는 그대/ 제발 눈물을 멈춰요/ 나는 그곳에 있지 않아요/ 죽었다고 생각 말아요/ 나는 천개의 바람/ 천개의 바람이 되었죠.”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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