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정부의 실패는 반복되는가?

이창곤 2022. 11. 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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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곤의 정담][이창곤의 정담] 11 _기획재정부2

실상 진보든, 보수든 역대 정부가 비대한 모피아의 파워를 극복하고 이를 민주적으로 통제하지 못한 문제의 뿌리는 뚜렷한 국정비전과 준비된 정책구상을 지니고 이를 일관되게 관철해 내지 못한 점에 있다는 생각이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 삶의 질을 드높이기 위해 절실하게 실현해야 할 국정비전과 정책구상이 뚜렷하지 않거나 없으니 재정권력에 대한 개혁의 절박함과 의지도 약하거나 없는 것이다. 이는 정부의 실패의 뿌리이기도 하다.

지난 7월14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의 한 사무실에서 경실련 등이 주최한 ‘윤석열 정부 기재부 출신 관피아 권력지도 기자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존재 이유는 각종 위험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데 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부는 시민이 ‘선출’한 정치리더십에 의해 운용된다. 이 리더십이 각 행정부처와 소방·경찰 등 공적 시스템을 운용할 권위는 시민의 뜻에 의해 부여된다. 하여 정부는 모름지기 시민을 보호할 의무를 지닌 ‘시민의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숱한 청춘들이 스러지는 그날, 그 순간, 정부는 ‘시민의 것’이 아니었다. 생명과 안전을 위협받은 시민의 절박한 아우성에 응답하지 못한 행정시스템의 작동불능과 의사결정 실패는 정부와 관료제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망각한 무능과 무책임의 극치다. 정부의 존재 의미와 리더십의 자격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대형참사를 초래하는 정부의 실패는 반복되는가? 그 원인은 거듭된 참사에도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에 두지 않는 정책결정자들의 그릇된 태도와 의사결정 실패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이번 ‘10·29 참사’에서도 확인됐다. 기실,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이런 정부의 실패는 비단 대형참사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외환위기와 외환은행 매각에서 보듯 공적 시스템의 정책과정에서도 우리 사회에 엄청난 피해를 준 정부의 실패는 지속해서 있었다. 다만 실체를 또렷이 드러내지 못해서 혹은 책임 소재를 분명히 밝히지 않거나 못해서 낱낱이 규명되지 못했을 뿐이었다. 진상 규명이 중요한 이유다.

‘복합위험의 시대’인 오늘, 정부의 실패가 가져오는 후과는 과거와 질적으로 다르다. 위험은 광범위하고 때로는 치명적이다. 오늘날 시민이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의 공적 자원, 즉 예산과 행정체계는 각종 재난과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고, 무엇보다 시민의 삶의 질을 드높이는 데 최우선으로 쓰여야 한다. 주권자로서 이런 시민의 뜻과 의지는 어떻게 온전히 관철될 수 있을까? 이 연재 칼럼이 궁극적으로 제기하는 질문이다.

기획재정부의 예산편성 과정을 시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이들의 민주적 통제를 의제화하는 까닭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와 시민의 공복인 경제 관료가 국가와 정부의 진정한 주인인 시민을 위해 복무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다.

특별히 기재부 전·현직 관료, 재정권력에 주목하는 데는 그들이 ‘돈줄’을 앞세워 고유업무인 경제와 재정정책뿐 아니라 보건복지, 노동 등 사회정책 분야까지 한국 정책생태계에서 강력하고도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초강력 결정자’란 점 때문이다. 나아가 그 영향력이 지나치게 비대하고 편향적이란 데 있다.

예컨대 최근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을 두고 벌어진 기재부의 모습은 노동정책에 관여하면서 나타난 기재부의 ‘월권’과 친기업 편향을 보여준다. 올 초부터 시행한 이 법은 일터에서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중대재해를 예방하려고 어렵사리 도입된 것으로,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소홀히 해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법적 책임을 묻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한겨레> 취재 결과, 기재부는 단순 의견 개진을 넘어 이 법의 시행령 ‘개정 방안’을 자체 마련해 주무 부처인 노동부에 보낸데다, 무엇보다 해당 방안에 ‘안전보건책임자(CSO)가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관해 최종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면 경영책임자로 본다’는 내용을 담았다. 기재부가 내민 내용은 그동안 대표이사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안전보건책임자를 경영책임자에 포함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해 온 재계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 기재부가 재계의 대변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노동단체의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무엇보다 시민이 죽고 다치는 많은 중대재해는 기업이나 공무원들이 사전에 위험 방지 조처를 충분히 하지 않아 발생한다는 점에서 기재부의 움직임은 중대재해법의 근본 취지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기준중위소득 결정 과정은 복지정책에서 보여준 기재부 파워와 편향의 또 다른 사례다. 기준중위 소득은 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소득순으로 배열할 때 가운데에 있는 사람의 소득을 말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비롯해 76개(2022년 기준) 복지제도의 수급자격 요건을 정하는 지표다. 이 소득의 구체적인 금액은 극빈층을 빈곤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는데, 이를 결정하는 곳이 중앙생활보장위원회다. 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인 이 위원회에 기재부 차관이 전체 16명 위원 가운데 정부 쪽 6인 중 1인으로 참여한다. 기재부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 위원회에서 재정여건을 앞세워 번번이 이 소득의 낮은 인상을 고집하고 현실화를 반대해 관철시켰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인 올 7월에 열린 이 위원회 심의 과정에서도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인상을 주장했다. 같은 달 발표한 ‘2022년 세제개편안’에서는 세수결손에도 대기업과 부동산·주식 부자에게 큰 혜택을 주는 세제개편안을 내놓아 “취약계층을 저버리고 있다”는 비판을 자초하기도 했다.

보건복지와 노동 등 사회정책 결정 과정에서 행사하는 기재부의 영향력과 정책 편향은 윤석열 정부 들어 더 커질 우려가 나온다. “우리는 기재부의 외청이나 다름없다”거나 “우리가 할 게 별로 없다”는 일부 사회정책 부처 공무원의 자조는 윤 정부 들어 더욱 강력해진 기재부 파워를 배경으로 한다.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 끼치는 기재부의 영향력 비대와 편향은 대통령실과 주요 행정부처, 공공기관의 장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핵심을 두루 거머쥔 기재부 출신들의 ‘요직 장악력’에서도 기인한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가히 ‘역대급’이다. 오죽하면 현 정부를 두고 ‘검찰+기재부 연합정부’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권부 핵심인 대통령 비서실장과 행정부 2인자인 국무총리가 기재부 출신이다. 여기에 국무조정실장, 경제부총리, 보건복지부 장관, 금융위원장, 경제수석,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통계청장, 조달청장, 관세청장 등이 모두 기재부 출신이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 공공기관장에 충북, 충남, 전남, 경남 등 지방정부의 경제부지사도 기재부 출신이 두루 차지했다. 한마디로 ‘기재부 싹쓸이’, ‘모피아 전성시대’이다. 지난 7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공개한 ‘윤석열 정부 모피아 권력지도’를 보면, 대통령실 및 행정부처 고위공직자, 공공기관장과 이사 등 총 533개 고위직 가운데 12%에 이르는 65개 직위가 기재부 출신이다. 기재부 인맥은 로펌, 금융권 주요 협회, 민간 금융회사 등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 기업으로도 드넓게 잇대어져 있다. 이들 기업에 진출한 전직 기재부 관료들이 현직인 후배 관료들에게 일체의 로비 없이 그저 돈독한 선후배 관계로만 지낼 것이라고 믿는 이는 없을 것이다.

정치권과 시민사회 및 노동단체에서 기재부 개혁론이 쉼 없이 이어져 온 것은 이런 기재부 파워와 인적 네트워크가 가져올 부작용에 기초한다. 여러 갑론을박이 있지만 약술하면, 기재부를 경제·재정정책 기능과, 기획·예산기능을 각각 맡는 둘로 쪼개거나, 예산기능을 아예 청와대에 두자는 발상 등이 대표적이다. 일각에선 실질적 톱다운(하향식) 예산시스템으로 가야 한다는 대안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대안은 기재부 파워를 극복할 기능적 방편이긴 해도 근본 방안은 아닐 듯하다. 따지고 보면 기재부도 여러 행정조직 중 하나이다. ‘선출’된 정치리더십과 집권 정당이 필요에 따라 조직을 쪼개고, 관련 법률을 고치고, 인적 쇄신을 하는 등을 통해 행정시스템을 새롭게 운용할 여지가 없지 않다.

실상 진보든, 보수든 역대 정부가 비대한 모피아의 파워를 극복하고 이를 민주적으로 통제하지 못한 문제의 뿌리는 뚜렷한 국정비전과 준비된 정책구상을 지니고 이를 일관되게 관철해 내지 못한 점에 있다는 생각이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 삶의 질을 드높이기 위해 절실하게 실현해야 할 국정비전과 정책구상이 뚜렷하지 않거나 없으니 재정권력에 대한 개혁의 절박함과 의지도 약하거나 없는 것이다. 이는 정부의 실패의 뿌리이기도 하다. 촛불 정부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이 점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지 못했으며,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 힘은 집권 6개월에 이르지만, 숫제 뭘 하겠다는 국정 비전이나 정책구상을 지금껏 내놓은 바가 없다. 그러하니 윤 정부와 집권 여당은 기재부 파워의 비대함이나 정책 편향을 고민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기재부 출신을 대거 등용해 대부분의 정책을 알아서 하도록 맡기는 ‘권력 동맹’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이창곤 |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복지를 중심으로 노동, 주거, 환경 등 사회정책 이슈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한겨레>에서 팀장과 부장, 논설위원, 부국장 등을 거쳤고,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는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공저), <복지국가를 만든 사람들-영국 편>, <불평등 한국, 복지국가를 꿈꾸다>(공저), <진보와 보수 미래를 논하다>(편저), <어떤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은가?>(편저) 등이 있다.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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