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후배 주민이 될 윤 대통령께 용산구민이 보내는 편지

한겨레 2022. 11. 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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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오전 11시20분께 서울 중구 남산 전망대(남측 지점)에서 경호원 2명이 우두커니 서있다. 박지영 기자

[왜냐면] 손서정 | 평화·교육연구자

제가 사는 용산은 참 좋습니다. 공원, 박물관, 각종 편의시설이 잘 마련돼 있죠. 저희 동네는 다닥다닥 붙은 옛 주택이 다소 불편하지만 고즈넉한 정취가 묻어납니다. 그래선지 청년들이 많이 찾아와 북새통을 이루기도 하죠. 러닝셔츠 바람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께서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는 골목 사이로 한껏 차려입은 청년들의 싱그러움은 묘한 조화와 평화를 이룹니다.

어느 날, 당신이 용산으로 이사를 온다더군요. 여기서 다른 논란은 생략하고, 그저 이사 올 후배 주민께 드리는 말에 집중하겠습니다. 자유를 수없이 외친 당신은 당연히 자유를 중요시할 테니 납득하리라 믿습니다. 당신의 이웃이 된 주민들의 자유가 이미 헝클어지고 있는 부분을 아신다면, 대책을 마련하실까 싶어서요.

첫째, 아이들이 학습할 자유, 교육받을 권리를 빼앗기고 있습니다. 제 아이의 학교는 당신 근무처에서 꽤 떨어져 있지만, 아침부터 들리는 함성과 스피커소리가 힘찬 아이들의 목소리를 파묻고 수업시간까지 침범합니다. 청와대 주변 주민들이 겪던 힘듦을 나눌 차례가 용산이라면 감내해야 하나 싶지만, 그들도 학습권을 방해받진 않았습니다. 업무와 상권 위주의 청와대 주변과 달리 학교와 주택이 밀집된 용산의 환경을 고려했었다면, 아이들이 배움에 집중할 자유를 보장하셨을 텐데요.

둘째, 제가 용산에 와서 가장 좋은 점은 서울 한복판의 남산을 즐기는 것입니다. 집에서 나오면, 바로 앞에 정원 같은 남산이 펼쳐지거든요. 그런 남산이 당신의 이사로 남의 산이 돼가는 듯합니다. 전 거의 매일 한남대교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서 가벼운 운동을 하는데, 몇 달 전부터 배지와 무전기를 찬 남성 세 분이 그 자리를 차지하셨습니다. 세 남성이 정자세로 지켜보는 데서 허리돌리기를 하긴 어째 좀 민망하더군요.

셋째, 이 건이 저에게는 가장 심각합니다. 그날 이후 꼬맹이와 함께 종종 들렀던 이태원에 갈 자유를 뺏겼습니다. 차마 처참하고 미안해서 다시는 지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전망대의 촬영금지를 위해 귀한 경찰 인력을 동원하였다면, 집과 근무지는 오죽할까요. 그 주말도 역시, 많은 용산경찰들이 당신의 근무지에 있었죠. 당신의 안전과 자유가 중요하다면, 우리의 안전과 자유는 폐기되어도 될까요? 아닙니다. 당신은 그럴 사람이 아니죠. 우리의 자유를 그렇게 수없이 외치셨는데요. 그런데도 우리 젊은이들은 즐겁게 놀 권리와 삶을 즐길 자유마저 뺏겼습니다.

살아남을 자유, 생존권을 뺏긴 젊은이들의 모습은 저의 시계를 다시 8년 전 트라우마로 연결합니다. 그 다음해,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의 국가별인권회의에서 전문위원들이 한국대표단에게 묻더군요. 세월호에 대한 대처를 다루며, 대한민국이 왜 그리되었냐고요. 그 자리에 관찰자로 참석했던 유일한 한국인으로서 너무나 힘겨웠는데, 이젠 전 세계인들이 통감하는 참사로 작년까지 한국을 본받겠다고 입국하던 전문가들이 하루아침에 질타하는 입장으로 바뀌다니요.

같은 사람과 동일집단이 리더의 방향으로 인해 얼마나 쉬이 변질할 수 있는지, 줄곧 그 현실을 체감합니다. 용산경찰의 도움을 받던 저로서는 그분들이 얼마나 멋있고 감사한지, 아이들의 꿈에 경찰을 추가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왜… 너무 아프고 두렵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리더인 당신의 방향은 정말 중요합니다. 제발 자유의 뜻을 잘못 해석하지 마십시오. 자유는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방종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초등학교 때부터 배웠습니다. 한 인간의 지향이 쉽게 변치 않는다지만, 초유의 사태에 종종 일어나는 기적적 변화가 당신께 일어나길 바랍니다. 당신과 당신에게 득이 되는 소수의 자유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유를 수호할 수 있기를요. 만약 어렵다면, 어쩌면 더 많은 사람이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스스로 내려놓을 자유를 고려하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 어떤 리더의 자리와 권력도 한 사람의 생명, 살아 숨 쉴 최소한의 자유만큼은 절대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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