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만 때린 윤 대통령, ‘참사 책임’ 이상민에 ‘안전 책임’ 맡기나
[이태원 참사]
“안전사고를 예방할 책임이 어디에 있나? 경찰에 있다” “아비규환 상황에서 경찰이 권한이 없다는 말이 나올 수 있나?” “사람이 많이 몰릴 것 같다는 정보를 일선 용산서가 모른다는 것은 상식 밖이라 생각한다” “우리 경찰이 그런 엉터리 경찰이 아니다. 정보 역량도 뛰어난데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 “이태원 참사가 제도가 미비해서 생긴 것이냐?”
윤석열 대통령은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이태원 참사를 사전에 막지 못한 경찰 쪽 책임을 시간대별, 업무별로 하나하나 지적하며 성토했다. 회의에는 참사 발생 2시간이 흐른 뒤에야 첫 보고를 받은 윤희근 경찰청장이 참석했다.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이례적으로 윤 대통령의 비공개회의 발언을 브리핑을 통해 자세히 공개했다.
윤 대통령의 격한 질책은 거의 전적으로 경찰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은 이날 이태원 참사 책임을 물어 경찰의 대대적 혁신을 요구하며 “책임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엄정히 그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소방을 포함해 재난과 안전관리 총책임자인 행정안전부 또는 이상민 장관에 대한 언급은 따로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이 장관 경질 요청에 귀를 닫고 경찰 수뇌부 문책 정도에 그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안전관리의 권한과 책임, 그리고 신속한 보고체계에 관해 전반적인 제도적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위험에 대비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경찰 업무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참사와 관련해 진상규명이 철저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고, 국민 여러분께 그 과정을 투명하게 한 점 의혹 없이 공개하도록 하겠다. 그 결과에 따라 책임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엄정히 그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책임을 묻겠다’는 대상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경찰의 혁신을 언급한 뒤 이런 발언을 한 만큼, 이태원 참사 당시 총체적 부실 대처로 국민적 공분을 산 경찰 수뇌부를 문책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이날 윤 대통령은 “재난 컨트롤타워는 대통령이 맞다”고 했지만, 발언의 무게는 대부분 경찰 책임론에 쏠렸다. 그는 경찰 치안감 인사 번복 논란, 행안부 경찰국 신설 반대 집단행동 때도 “국기 문란”이라며 경찰 쪽 책임을 강조한 바 있다.
경찰 내부에서는 경찰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행안부와 대통령실은 뺀 책임 돌리기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지역 간부급 경찰은 “서로 협조가 안 되는 재난안전관리 시스템 전체로 접근해야 대안이 마련될 수 있는데, 경찰에만 책임을 돌리는 건 책임 회피다. 꼬리 자르기 방식으로 경찰만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경남지역 경찰관은 “그동안 경찰의 힘을 빼는 일을 해왔던 대통령이 이번에는 책임 소재를 끄집어내는 데만 급급하다. 국정 운영의 잘못은 숨기고, 경찰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대통령이 책임 지울 대상을 찾기 위해 경찰에게만 책임을 묻고 있다. 경찰이 이번 사태에서 대응을 제대로 못 했다고 하더라도, 지자체나 중앙정부 책임도 함께 묻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이상민 장관 문책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대통령이 공언한 경찰 혁신 업무는 당분간 이 장관이 맡을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상황에 대한 관리가 안 돼 대규모 사고가 났다고 하면 그것은 경찰 소관이다. 이걸 자꾸 섞지 말아야 한다”고 호통을 치며 강조했다고 한다. 이런 발언은 재난·안전 관리 총책임, 주무 장관인 이상민 장관에게 제기되는 책임론을 반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두고 당장 참사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주무 부처 장관에게 국가 재난대응 시스템 개선 업무를 맡기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이 장관은 판사 출신으로 재난안전 업무를 다뤄본 경험이 없다. 참사 직후 “경찰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하는 등 법적 책임에만 민감한 ‘비전문가’ 모습을 노출하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경찰 내부에선 이 장관이 경찰 혁신 주체가 아닌 참사 책임 주체라는 비판이 나온다. 간부급 경찰관은 “행안부가 (경찰 혁신을 할)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행안부 장관은) 책임을 지려는 의식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경찰국 신설로 경찰 업무에 대한 행안부 권한이 확대된 만큼 책임도 늘었다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간부급 경찰은 “과거에도 경찰에 대한 직접적 지휘를 하지 않았더라도 잘못한 게 있으면 결국 행안부 장관이 정무적·정치적 책임을 져왔다”고 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참사가 국가 안전 시스템의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그는 “(이태원 참사가) 시스템이 안되고 제도가 미비하다는 이야기는 저는 여기에서 안 맞는 것 같다”며 참사의 원인이 정부의 행정, 제도적 부실 탓이 아니라 이를 운용하는 무능하고 소극적인 경찰 탓이라는 인식을 나타냈다.
고병찬 김미나 곽진산 기자 ki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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