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병훈 칼럼] 고용상황, `빛 좋은 개살구`인 이유
미 연준이 물가 안정을 위해 3월부터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고 있음에도 좀처럼 미국의 노동시장은 침체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10월 실업률은 3.7%로 53년 만의 최저치였던 9월 실업률 3.5%에 근사한 수준이며, 미국의 장기 실업률인 4.0%보다 낮은 수준이다. 경기침체 우려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노동시장은 여전히 견조한 것이다.
금리가 인상되면 소비자들은 소비지출을 줄여 대출을 상환하거나 저축을 늘린다. 기업은 금리 상승으로 투자비용 조달이 어려워지므로 투자를 줄이고, 소비자들의 소비지출 감소로 기업이 생산한 제품의 수요가 줄어들 것을 예상해 고용을 줄인다. 그런데 최근 미국과 주요 선진국들에서 이와 반대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을 '고용있는 침체(jobful recession)'라 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행은 작년 8월부터 지속적으로 금리를 인상해왔다. 고금리로 소비와 투자가 감소하는 와중에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수출도 감소하고 고유가와 강달러 현상으로 에너지 수입은 급증해 최근 민간기관들이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 2%에도 못미치는 1%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렇게 한국경제는 경기침체의 위험이 커지고 있으나 3분기 실업률은 2.5%로 23년 만의 최저치여서 완전고용에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 워크넷 자료를 이용해 4월부터 8월까지 구인인원을 구직건수로 나눠서 구한 노동시장 경색도(labor market tightness)도 0.76으로 전년 동기 대비 33%나 증가해 노동시장에서 공급보다 수요가 큰 상황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노동시장 상황은 겉으로 보이는 지표만큼 견조하지 않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8월 전년 동월 대비 명목임금 상승률은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낮아 실질임금이 오히려 0.6% 줄어들었다. 실질임금은 지난 4월부터 5개월 연속 감소한 것이다. 노동시장에서 초과수요가 존재해 기업들이 노동자에게 더 높은 임금을 제시하며 채용하려고 경쟁하는 상황이면 임금은 물가보다 빠르게 상승해 실질임금은 오른다. 그러나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져 9월 실질임금은 전년 동월 대비 3.0% 감소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의 선임 부총재 데이비드 안돌파토(David Andolfatto)와 그의 동료는 그 이유로 노동시장 경색도가 실제보다 낮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취업자들 중 상당수가 더 좋은 일자리로 이직을 위해 실업자들과 노동시장에서 빈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기 때문에 실질임금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기업은 채용공고에 많은 지원자들이 몰리니 물가상승률보다 높은 임금을 제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국 역시 같은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충격은 산업별로 다른 영향을 줬다.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전문 과학 및 기술서비스업은 혜택을 본 반면 대면 서비스 위주의 숙박 및 음식점업, 도매 및 소매업은 피해를 입었다. 피해를 본 산업에서 일자리가 줄어 혜택을 본 산업으로 불가피하게 이직을 한 노동자들은 본인이 그동안 이전 직장에서 쌓았던 경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더 낮은 임금을 감수했을 수밖에 없다. 이들은 이제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됨에 따라 대면 접촉이 늘어 그동안 피해를 봤던 산업에 다시 생기기 시작한 일자리로 돌아와 자신의 경력을 인정받고 더 높은 임금을 받으려 할 것이다. 따라서 취업자들 중에 더 좋은 일자리로 이직하고자 하는 상당수가 실업자들과 빈 일자리를 놓고 경쟁을 해서 실질임금은 하락하는 것이다.
경제학에서 실질임금은 노동자의 생산성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한국 노동시장이 견조해 보이지만 실질임금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것은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충격으로 여러 산업간 노동력이 비효율적으로 배치되는 일자리 미스매치(mismatch)가 해소되고 있지 않음을 나타낸다. 고금리, 고환율이 초래할 경기침체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코로나19 확산사태가 야기한 산업간 일자리 미스매치를 빠른 시일내에 해소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노동시장 경직성 해소를 위한 개혁과 산업 구조조정, 규제 개편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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