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도산 도미노` 공포에 벌벌 떠는 中企
중기 대출금리 9년來 최고 4.87%
중소형 건설사 부도설도 나돌아
"푸르밀 남일 아니다 " 불안 증폭
# 식품 포장지용 OPP필름 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요즘 잠을 못이룬다. 일감이 줄어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데 돈을 빌릴 곳은 마땅치가 않다. 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턱없이 높인 데다 금리 또한 크게 뛰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번달 직원들 월급을 줄지 걱정이 태산이다.
# 지방에서 건설업을 하는 B씨는 회사 문을 닫아야 할지 고민이다. 어렵게 구한 택지에 주택을 지어 분양하려 했지만 레고랜드발 신용경색으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완전히 끊겨버렸다. 돈을 빌려야 집도 짓고 분양을 해 자금을 회수할 수 있지만 진퇴양난이다. 중소형 건설사 부도명단까지 나돌아 흉흉한 마음뿐이다.금리 상승과 자금 경색 영향으로 중소·중견기업들이 한계 상황에 몰리고 있다.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연말엔 줄도산 하는 곳들이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들을 궁지로 모는 주범은 자금난이다. 은행이 리스크 관리를 한다며 기업들, 특히 중소·중견 기업에 대한 대출 문을 사실상 닫은 데다 기존 대출은 만기가 돌아오는 데로 회수하고 있다. 운좋게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해도 이자가 예전의 두세배로 늘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금리(신규 취급액 기준)는 연 4.87%로, 2014년 1월(연 4.88%) 이후 거의 9년만에 최고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지난달 12일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3.00%로 올린 것을 고려하면 10월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연 5% 선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한은은 오는 24일 금통위에서 또 한차례 올리고 내년 상반기에도 추가 인상, 최종 금리가 연 3.75%에 이를 것이라는 게 시장의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중기 대출금리도 연 6~7%로 뛰게 된다. 중소기업 대출 중 금리가 연 5% 이상인 비중은 1년전만 해도 3.1%였다. 그런데 지난 9월엔 40.6%로 13배가 넘었다.
9월 말 현재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948조2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75조2000억원 늘었다. 코로나 사태 전인 2019년 12월과 비교하면 231조5000억원이나 증가했다.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이자가 연 9조5000억원 가량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지금도 근근히 버티고 있는데 금리가 더 올라가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며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춰줘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중소 건설업체들의 사정은 더 안좋다. 사업 초기 고금리로 빌린 브리지론이 문제다. 금융권이 부동산 PF을 중단하면서 브리지론에서 본 PF로 갈아타지 못하는 사업장이 늘고 있다. 인허가 단계에서 실제 착공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현장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착공하지 못하면 결국 브리지론은 100% 손실로 남게 되고, 이자 등 금융 비용만 발생한다. 착공에 성공한 현장의 위험성도 높아졌다. 집값이 분양가보다 낮아질 경우 입주를 포기하는 수분양자들이 늘게 된다. 입주 포기 물량은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으로 이어진다. 준공후 미분양은 건설사와 금융사에 치명타로 작용한다. 건설사의 위기 수준은 100대 건설사 중 20곳이 부도가 났던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도 높아졌다.
코로나 기간에는 돈이 풀려 그나마 버티던 기업들도 이자 부담과 자금 경색 이중고 상황에선 버티기 쉽지 않다. 고공행진하는 물가 때문에 정부가 대규모 유동성을 풀기도 어렵다. 이 때문에 흑자 기업까지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도미노 도산'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기준금리가 연 3.0%일 경우 개인 사업체는 86만4123곳, 소상공인은 124만2751곳이 영업이익으로 대출 이자도 갚지 못하는 한계상황에 직면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가운데 개인 사업체 약 4만개, 소상공인은 6만명 추가로 도산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이런 가운데 45년간 사업을 이어온 중견기업 푸르밀이 전격 폐업을 선언해 충격을 주고 있다. 푸르밀은 적자 누적 등의 이유를 들어 지난 17일 370여명에 달하는 전 임직원에게 '사업 종료와 정리해고'를 이메일로 통지했다. '가나 초코우유' '비피더스' 등을 생산하는 중견기업의 폐업소식은 다른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스타트업들에 '남 일이 아니다'라는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이익으로 이자도 못갚는 한계기업 비중은 현재 30% 수준으로 외환위기 이후 최대"라며 "푸르밀이 다른 한계기업의 폐업을 부르는 '나비 효과'가 우려된다"고 전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전체 기업의 99.9%(2020년 기준)는 중소기업이고, 전체 기업 종사자의 81.3%는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 "연말 기업신용을 평가할때 매출액 부동산담보가치 등 모든 항목이 하락하게 돼 있는데 금융당국이 이 평가기준을 완화해주는 게 필요하다"며 "보증기금의 보증여력도 더 늘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강현철기자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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