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파워 인터뷰 | ‘딥 타임’ 저자 크리스티앙 클로] 햇빛·시계 없는 동굴에서 40일…미래 인류 생체 실험 결과는?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2022. 11. 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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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클로 작가 스위스 로잔 국립 음악원, 현 프랑스 탐험가협회부회장, ‘딥 타임’ 저자 사진 크리스티앙 클로

철커덕…, 동굴 입구에서 녹슨 철문이 닫혔다. 문을 사슬로 묶은 후 자물쇠로 단번에 잠갔다. 직접 문을 잠금으로써 15명의 남녀는 동굴에 갇히게 됐다. 햇빛도 들어오지 않고 시간도 알 수 없으며 외부와는 일절 통하지 않는 곳이다. 참가자는 29~49세 총 15명(남자 8명, 여자 7명)으로 그들은 서로를 ‘딥 타이머’라고 불렀다. 코로나19로 온 인류가 억류된 2021년 봄, 동굴에 자발적으로 갇혀보자는 아이디어로 시작한 ‘딥 타임(Deep Time)’ 프로젝트. ‘적응’ 전문가인 크리스티앙 클로는 ‘코로나19로 이동이 제한됐을 때, 프랑스 사람 중 최대 70%가 시간 개념을 잃어버린 것 같은 불안을 호소한다’는 조사 결과를 접하고 ‘성인 15명의 동굴 표류기’를 기획했다.

‘시간도 햇빛도 없는 낯선 곳에서 인간 공동체의 생체 리듬은 과연 어떻게 될까? 무질서와 질서, 자유와 규칙, 개인과 공동체는 어떻게 충돌하며 나아갈까?’ 이상 기후와 팬데믹 등 격변의 흐름 속에, ‘딥 타임’ 프로젝트는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그들이 겪은 모습은 디스토피아보다 유토피아에 가까웠다. ‘딥 타임’의 저자이자 인간 적응 관련 최고 권위자인 크리스티앙 클로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클로는 2021년 3월 14일부터 4월 24일까지 14인의 딥 타이머와 프랑스 남부 롱브리브 동굴에서 총 40일을 보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크리스티앙 클로는 ‘딥 타임’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총지휘했으며, 이 과정을 책으로 집필했다. 사진 크리스티앙 클로

자물쇠가 채워질 때 어떤 기분이었나.
“정말로 동굴에 갇혔다는 것이 실감 났다.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꿈꾸던 일이 이루어져서 감정이 북받쳤다. 중요한 건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태양 빛은 없었지만 희미한 조명으로 사람이 있는 공간은 거대한 지하세계를 연상시켰다. 그 무드가 초기 인류의 모습인 듯도 했고, 디스토피아 이후에 살아남은 미래 인류인 듯도 했다. 다들 어떻게 느꼈나. 어떤 이에겐 매우 쾌적하고 어떤 이에겐 끔찍했을 텐데.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우리는 층이 많고 매우 큰 동굴을 선택했다. 롱브리브 동굴은 폐쇄공포증이 있거나 어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조차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큰 동굴이다. 생활 공간에는 불을 켤 수 있는 커다란 구형 전등이 있었고, 나머지 동굴은 우리가 쓴 헬멧의 헤드랜턴으로 사물을 비춰볼 수 있었다. 사실은 모든 딥 타이머가 롱브리브 동굴을 긍정적으로 느꼈다. 무척 아름다운 동굴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정말 초기 인류가 된 기분이었다. 지구 기온이 너무 높아져 달이나 다른 행성에서 살아야 할 상황이 된다면 동굴은 좋은 보호처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을 대비해 동굴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동굴에 갇혀 지낸 사례와 실험은 종종 있지 않았나. ‘딥 타임’ 실험은 무엇이 다른가.
“1990년 우물 안에서 100일간 홀로 있는 실험을 하고, 14개월 후 자살한 베로니크 르 귀앙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1965년 7명의 여성이 라카브 동굴에서 15일간 머문 일은 어떤 과학적 사실보다 평등이라는 개념을 훌륭하게 증명했다. 2010년 칠레 광산에서 33인의 광부가 갇힌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딥 타임처럼 자연환경에서 여자와 남자가 뒤섞여 시간 개념을 초월해 머문 사례는 없었다.”

40일 동안 전기와 물은 어떻게 해결했나.
“자전거 페달을 돌려서 전기 배터리를 충전했다. 딥 타이머들이 교대로 자전거를 돌렸다. 에너지를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심장과 폐 기능을 높일 수 있었다. 물은 45m 지하 암반수를 길어다 먹었다.”

극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가.
“적응하는 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든다. 그래서 인간은 웬만하면 원래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버틴다. 적응을 위해 필요한 정신 능력은 두 가지다. 첫째, 새로운 상황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만일’ ‘이전에는’ 같은 가정은 의미 없다. 설령 원하던 상황이 아니었다고 해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미래에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싸워야 할 이유’를 스스로 납득할 정도로 흥미로운 미래를 상상해야 한다.”

생명체가 필요로 하는 4대 요소는 생물학적 욕구(숨쉬기, 마시기, 먹기, 쉬기)와 중력 시스템 그리고 시간이라고 했다. 생물학적 욕구는 이해가 되지만, 중력 시스템과 시간은 좀 더 설명이 필요하다.
“일단 물리적으로 중력이 있어야 상황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혈액 순환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시간! 모든 사회 조직과 기능은 시간표와 연결되어 있다. 약속을 하고 특정한 시간에 일어나고 함께 일하고 등등. 우리는 무조건 시계를 보고 움직인다. 충분한 잠을 잤는지, 일할 시간인지, 잘 시간인지⋯, 우리는 시계 없는 삶을 배운 적이 없다. 예를 들어 하루는 24시간이라는 원칙은 사회적으로 발명된 것이지만, 이 규칙이 사라지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른다. 만약 우리 생활 리듬의 기준이 되는 태양이 사라진다면, 방향 감각조차 사라질 것이다.”

시간 감각을 잊기 위해 혹은 시간 감각을 리셋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시간 정보를 알 수 있는 것은 모두 없앴다. 외부로부터의 접근, 태양 빛이나 달빛, 시계. 연구실의 컴퓨터나 카메라에서도 시계를 모조리 없앴다. 그리고 서로 잠을 깨우는 것을 금지하고 모든 사람은 각자의 속도로 살아가도록 했다. 동굴에 들어가는 순간, 바깥의 시간을 알 방법은 모두 차단했다.”

딥 타임프로젝트에 참가한 15명의 지원자가 동굴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진 크리스티앙 클로

동굴에서의 일상은 어떠했나.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생체 리듬을 기준으로 각자 잠들고 깨어났다. 사이클이 하루를 세는 단위였다. 어둠 속에서 밧줄과 헤드랜턴에 의지해 스스로 해 나가고 적응해 나갔다. 자신에게 편안한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각자 가져온 책을 모아 미니도서관을 만들고 주방용품을 정리했다. 동굴에 있으면 언제 해가 뜨고 지는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동굴에서 식물을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푸른 텃밭이 생기면, 동굴에도 봄이 찾아올 테니까.”

어떤 방식으로 통제와 안정의 욕구를 해소했나. 어둠과 무질서는 점차 빛과 질서의 세계로 바뀌어 갔나.
“우리는 여가를 만들어서 낯선 행성 같은 이곳을 구석구석 탐험했다. 발견의 기쁨, 탐험의 욕구는 숨 쉬고 먹는 욕구만큼이나 인간이 지닌 기본적인 욕구다. 어린 아이도 끝없이 탐험하며 성장한다. 두뇌와 유전자에 각인된 이런 욕구 덕에 인간은 적응력을 키울 수 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롱브리브 동굴을 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괴한 암석과 신비한 무늬가 가득했다.”

어떤 유형의 기질과 행동 패턴이 있는 사람이 딥 타임 환경에 가장 적합했나.
“수용적인 사람들은 내면의 갈등이 심하지 않아서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데 빠르게 정신적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 이런 기질의 사람은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촉을 세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며, 해결책을 찾는다. 모든 면에서 효율적이다.”

헤드랜턴, 밧줄, 전자 기기, 맛있는 음식, 악기 중에서 가장 도움 되는 도구나 장비는 무엇이었나.
“우리는 고립되어 있었고, 접근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모든 것이 다 도움이 됐다. 그중 특히 헤드랜턴이 가장 중요했다. 인간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는 살 수 없다. 빛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한다. 물도 빛이 있어야 찾을 수 있다. 그다음으로는 맛있는 음식과 탐험을 돕는 밧줄도 우리를 즐겁게 하는 매우 중요한 장비였다. 누군가 악기를 가져와서 에밀리와 아르노의 서른 번째 생일을 축하할 수도 있었다. 즐거움과 오락은 적응 메커니즘에서 꼭 필요하다.”

40일이라는 시간 또한 성경의 기록을 비롯해서 여러모로 의미가 깊더라. 처음부터 40일로 정한 이유가 있나.
“놀라움으로 시작해서 이해와 안정을 거친 후 적응과 실천 단계가 되는데, 시간생물학은 35일을 정설로 본다. 오랫동안 익숙한 A 상태에서 새로운 B 상태로 잘 적응하기까지 인지적·생리적으로 필요한 시간이다. 그러나 고대 텍스트를 보면 인류사에서 40일이 갖는 의미가 크다. 성경에서 노아의 40일 홍수, 예수의 40일 광야, 코란의 동굴 에피소드, 부처의 악에 대항하는 투쟁 등이 40일의 시간으로 묘사된다. 우리 팀이 동굴 속에서 적응하려면 40일의 시간이 상징적으로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동굴을 나올 때 다들 “아직 아니야!” “나가고 싶지 않아!”라며 흥분과 슬픔을 표현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대체 어떤 감정이었나.
“일단 동굴 안과 밖은 생각보다 시차가 컸다. 8일부터 14일까지, 평균적으로는 10일의 시차를 느꼈다. 두 명의 딥 타이머를 제외하고는 다들 나가고 싶어 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동굴에서 놀라운 자유를 느끼며 적응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동굴 생활을 즐겼다. 시간의 강요 없이 자신의 리듬을 따르는 삶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리듬이 다르다. 이를 인정하고 따르면 잠을 더 잘 자고 압박감을 덜 받게 된다. 그러면 해야 할 일이 있어도 각자의 속도로 할 수 있다. 동굴을 나가는 것은 시간적 명령과 의무가 존재하는 세계에 다시 적응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태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됐다.”

동굴 실험으로 우리가 새롭게 얻게 된 심리학·생리학·인류학 관점에서의 과학적인 팩트는 무엇인가.
“지금도 그 결과를 분석 중이다. 첫째, 우리는 인간이 분리된 개인보다 집단으로서 영향을 많이 받는 사회적 시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것은 윤리학적⋅사회적⋅행동적 자료로 매우 명확한 참고 자료가 된다. 둘째, 24시간처럼 강제적인 리듬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누구도 동굴에서 같은 사이클을 겪지 않았다.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수면 시간 대 기상 시간의 비율이었다. 만약 충분히 규칙적인 상태를 유지한다면 48시간 이상 깨어있어도 크게 피로를 느낄 일이 없다. 또한 40일 이내에 뇌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 기억력과 감각 및 운동 시스템에 관여하는 특정 영역의 세포 구조를 8%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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