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학수의 골프 오디세이 <109> 박성진의 가치 투자와 골프 (1)] “누구랑 싸우고 있는가?”…게임의 본질 알아야 살아남는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전략가 손자는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다.
위대한 게임 체인저들의 탄생을 살펴보면 적이 누구인지 간파하고,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통렬한 깨달음의 순간을 거치게 된다. 미국 골프의 구성(球星)이라 불리는 보비 존스(1902~71)는 고교와 대학 시절을 포함해 13년간 메이저 대회에 31번 나가 13번 우승했다. 메이저가 아닌 대회까지 포함하면, 34승이다. 거의 천하무적에 가까운 성적표라고 할 수 있다.
아마추어로만 활동한 존스는 1930년 브리티시오픈과 브리티시 아마추어선수권, US오픈과 미국 아마추어 선수권 등 당시 4대 메이저 대회를 한 해에 모두 우승하며 전무후무한 ‘캘린더 그랜드슬램(한 해에 4대 메이저를 모두 우승하는 것)’ 대기록을 남겼다.
존스는 18세 때 US오픈에서 스코틀랜드의 전설적인 골퍼 해리 바든(1870~1937)과 함께 경기하기 전만 해도 혈기방장한 애송이였다. 재능은 넘쳤지만 불같은 성격으로 경기를 그르치곤 했다.
1·2라운드에서 경외심을 갖고 존스가 바라본 바든은 어떤 상황에서도 초연했으며 상대를 신경 쓰지 않았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경기를 하는 것 같았다. 존스는 깨달았다. 골프는 라이벌이나 다른 선수 등 사람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과 골프 코스가 겨루는 것이었다. 존스는 그 보이지 않는 존재를 파(par)라고 생각했다. 경험 많고 노련한 사람이란 뜻을 담아 ‘올드 맨 파(old man par)’란 가상의 존재를 만들어냈다. 골프에서 홀마다 정해놓은 기준 타수를 뜻하는 파(par)를 의인화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나는 파(par)라는 올드 맨(old man)을 상대하게 되면서 큰 경기를 차례로 이길 수 있었다”고 했다. 존스는 하버드대에서 영문학, 조지아공대에서 기계공학, 에모리대에서 법률을 전공하고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프랑스 어, 독일어, 영국사, 독일문학, 고대문화사, 비교문학 등에도 조예가 깊었던 인물이었다. 깊은 지혜가 담긴 숱한 명언들을 통해 골프의 정신을 일깨우는 존스는 골프라는 게임을 이렇게 정의했다.
“골프란 그 누구도 정복할 수 없다. 스코틀랜드 사람이 말했듯 골프란 끝이 없는 게임이다. 오늘날까지 그 누구도 골프를 자신이 생각한 대로 경기한 사람은 없었고, 또 그 이상 절대로 더 잘 칠 수 없었다고 만족할 만큼 흡족하게 잘된 라운드를 해본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골프가 모든 게임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다. 결코 인간을 상대로 경기하지 말고 게임을 경기하라. 오직 올드 맨 파와 경기하라.”
이 명언은 이후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 등 위대한 승부사들의 마음가짐과 전략을 키운 씨앗이 됐다.
투자의 세계에서도 시장에 휘둘리지 않는 가치 투자의 길을 연 선구자들이 있다. 살아있는 투자 전설로 불리는 ‘오마하의 현인(賢人)’ 워런 버핏은 “풍향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시장에 휘둘려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엄청난 유동성 자금이 풀리면서 자산 가치를 끌어올리던 글로벌 시장은 지난 1년간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미국의 금리 인상,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 다양한 요인으로 얼어붙고 있다. 국내 투자자도 눈만 뜨면 주식 시장을 비롯한 자산 시장이 폭락하는 공포 속에서 갈 길을 잃고 있다.
그럼 시장의 본질은 무엇인가? 국내의 대표적 가치 투자자인 박성진 이언투자자문 대표의 설명을 들어보자.
“가치 투자의 아버지라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1894~1976)은 시장의 본질을 조증과 울증을 앓는 ‘미스터 마켓(Mr. Market)’이라고 보았다. 미스터 마켓이 울증에 빠졌을 때도 투자자가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좋은 자산을 싼값에 사는 안전마진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그레이엄과 비슷한 시대를 산 또 한 명의 가치 투자의 태두가 있다. 대공황의 혼돈 속에서 세상을 구한 경제학자로 꼽히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는 정부 재정을 통한 시장 개입 확대와 같은 거시 경제학자로 유명하지만 탁월한 투자자이기도 했다. 그는 케임브리지대 킹스칼리지의 기부금 펀드인 체스트 펀드를 18년간 운용했는데 이 기간 시장은 15% 가까이 하락한 반면 펀드는 연 복리 9.12%의 수익률로 원금을 4.8배로 불렸다. 그가 주식시장에서 나타나는 투자자의 심리와 주가의 변동을 ‘미인 대회 투표’에 비유한 것은 현재 시점에서 보더라도 압권이다.”
먼저 그레이엄의 미스터 마켓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자. 그레이엄은 명저 ‘현명한 투자자(개정 4판)’에서 시장의 본질과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미스터 마켓에 빗대 이렇게 설파한다.
“당신이 1000달러를 투자하여 비상장회사의 지분 일부를 보유하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동업자 중에는 미스터 마켓이라는 매우 친절한 사람이 있다. 그는 매일 찾아와서 자신이 생각하는 주가를 제시하면서, 이 가격에 당신 주식을 모두 팔아도 좋고 더 사도 좋다고 제안한다. 그가 제시하는 주가는 회사의 실적과 전망에 비추어보면 타당해 보일 때도 가끔 있다. 반면 흥분하거나 공포심에 휩싸일 때는 그가 제시하는 주가가 어이없을 때도 잦다. 시장 가격 등락이 진정한 투자자에게 주는 중요한 의미는 하나뿐이다. 가격이 폭락했을 때는 싸게 매수할 기회이고, 가격이 폭등했을 때는 비싸게 매도할 기회라는 의미다. 나머지 시간에는 주식 시장을 잊고, 회사의 실적과 재무 상태를 분석하여 기업의 가치를 스스로 평가하는 편이 낫다.”
미스터 마켓의 울증으로 투자 기회가 생겨난다. 미스터 마켓은 1000원짜리 물건을 500원에 팔기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안전마진이다. 그레이엄의 통찰에서 보듯 가치 투자는 기업의 내재 가치와 시장 환경에 따라 벌어지는 주가의 가격 차이를 이용해서 수익을 올리는 방법이다.
그럼 주식 시장이 끊임없이 조증과 울증을 앓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케인스의 ‘미인 대회 투표’라는 절묘한 비유가 등장한다. “주식 투자는 인기 투표로 승자가 결정되는 미인 대회와 같다. 이 미인 대회 투표는 백 명의 미인들 중에 각자 여섯 명씩 선정한 다음 전체 평가자의 평균 의견과 가장 비슷하게 맞춘 사람에게 상금이 주어진다. 그러면 자기가 보기에 가장 예쁜 얼굴보다는 남들 시선을 가장 끌 만한 얼굴을 골라야 한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 관점에서 판단하게 된다.”
시장의 원리가 케인스가 말한 미인 대회 투표처럼 작동된다면 결국 주가는 기업의 본질에서 벗어나 대중 심리에 의해 좌우된다.
좋은 기업을 고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더 많은 사람이 좋게 볼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을 선택해야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하지만 케인스는 미인 대회 투표처럼 시장 심리를 예측하는 투기 활동에서 큰 실패를 보았고, 이후 기업의 본질에 주목한 가치 투자자로 전향하고 나서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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