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수의 여행이라는 꽃다발 <19> 경남 밀양] 옛 정원과 산 그리고 연못에서 만끽하는 가을의 정취

최갑수 2022. 11. 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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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너머로 보이는 밀양 알프스. 사진 최갑수

월연대 마루에 앉아 있다. 담장 너머 밀양강이 가을을 싣고 흐른다. 새소리가 숲에서 흘러나온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목덜미를 간질이고 머릿속 잡생각을 데려간다.

경상남도 밀양 시내에서 10분쯤 가면 월연대가 나온다. 밀양강과 단장천이 만나는 절벽 위에 있는 정자로, 조선 중종 때 한림학사를 지낸 월연 이태가 지었다. 한양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그는 외가가 있는 밀양에서 자랐다. 1510년(중종 5) 문과에 급제했고, 기묘사화가 일어난 1519년에는 함경도 도사로 있었다. 하지만 개혁을 주장하던 선비들이 무더기로 죽거나 파직당하는 걸 보고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월연대와 쌍경당을 짓고 별서(別墅·별장)로 삼았다. 이태는 자신을 월연주인(月淵主人)이라 했고, 세상은 그를 기묘완인(己卯完人)이라 불렀다. ‘몸과 명예, 어느 것도 다치지 않고 흠이 없는 사람으로 살았다’는 뜻이다.

월연대 가는 길, 주차장에 차를 대면 곧바로 숲속 오솔길이 펼쳐진다. 두 사람이 비껴갈 만한 너비다.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윤슬이 반짝이며 밀양강이 유유히 흘러간다. 숲길 바깥에는 아직 여름 기운이 있지만, 숲속은 완연한 가을이다. 바람이 상쾌해 걷는 기분이 좋다.

짧은 오솔길을 지나면 왼쪽으로 높이 쌓은 석축이 있고, 그 위 담장 너머로 하늘을 향해 사뿐히 올라간 처마가 보인다. 쌍경당이다. 오른쪽으로 협문이 하나 있다. 협문을 지나 계곡물 소리가 나는 곳으로 몇 발짝 걸어가면 얕은 계곡에 놓인 쌍청교(雙淸橋)가 보인다. ‘달과 물이 모두 맑다’는 뜻이다. 다리를 건너면 월연대다. 이 계곡 이름은 영월간(迎月澗). ‘달을 맞이하는 실개천’이라는 예쁜 뜻을 담고 흐른다.

쌍경당과 그 옆에 자리한 제헌 등을 아울러 ‘월연대 일원(명승)’이라 한다. 조선 시대에 정자는 대부분 단독으로 지었는데, 월연대 일원은 담양 소쇄원(명승)처럼 여러 건물이 들어선 점이 독특하다. 먼저 들여다볼 곳은 쌍경당이다. 쌍경(雙鏡)은 ‘강물과 달이 함께 밝은 것이 마치 거울과 같다’는 의미다. 쌍경당 옆에는 이태의 맏아들 이원량을 추모하는 제헌(霽軒)이 있다. ‘비 그칠 무렵의 추녀’라니, 이보다 운치 있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쌍경당에서 나와 쌍청교를 건너 월연대로 향한다. 까마득한 절벽에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석축 앞에서 고개를 쳐들면 월연대 현판이 보인다. 왼쪽에 월연대로 들어가는 돌계단이 있다. 월연대는 앞면 5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한가운데 방이 하나 있고 사방이 마루다. 자연을 최대한 건물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조선 사대부의 자연관과 전통 조경 양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마루에 앉으면 가을빛을 안고 흘러가는 밀양강이 내다보인다. 이곳에서 보는 달이 뜬 풍경은 어떨까. 보름달이 뜰 때 달빛이 강물에 길게 비치는 모습이 기둥을 닮아 월주경(月柱景)이라 하는데, 옛사람들은 월주가 서는 보름마다 이곳에서 시회를 열었다고 한다. 가을밤 이곳에 앉아 밀양강에 비친 달빛을 꼭 한번 보고 싶다. 

재약산 정상. 사진 최갑수

은빛 물결로 출렁이는 가을 산

밀양의 가을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천황산(재약산)이다. 새하얀 꽃을 탐스럽게 피운 억새로 가득해 여행객이 몰린다. ‘광평추파(廣平秋波)’라는 말이 있는데, 광활한 사자평고원에 가을철 억새가 바람 따라 일렁이는 장관을 일컫는 말이다. 영남알프스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천황산은 영남알프스뿐만 아니라 주변 산도 아우르는 최고의 조망지로 손꼽힌다. 

등산을 좋아하는 이라면 표충사 공용주차장에서 출발해 매바위마을~필봉(665m)~필봉 삼거리(감밭산 갈림길)~도래재 갈림길~상투봉(1107m)~천황산 정상~묘지~한계암~금강폭포~금강동천~표충사~표충사 공용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코스에 도전해봐도 좋다. 약 12.5㎞에 이르는 원점회귀 코스로, 표충사 매표소를 거치지 않는 산길이다. 하지만 손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바로 영남알프스얼음골케이블카를 타는 것이다. 초속 4m로 약 1.8㎞의 거리를 날아가 해발 1020m 상부승강장까지 금세 오른다. 케이블카는 스릴 있다. 오르는 각도가 거의 수직이다. 케이블카 창밖으로 수려한 경치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착한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백운산 중턱의 백호바위도 보인다. 

상부승강장에서 250m쯤 가면 하늘정원 전망대가 나오는데, 가지산과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등 영남알프스의 고산 연봉이 어깨를 걸고 이어져 장관이다. 전망대에서 약 2.4㎞ 더 가면 천황산 정상이다. 완만한 길이라 가볼 만하다.

영남루. 사진 최갑수

가을과 함께 연못 산책

밀양에서 요즘 눈길을 끄는 여행지는 위양지다. 신라 때 축조한 저수지로 본래 이름은 양양지인데, ‘선량한 백성을 위해 축조했다’ 하여 위양지(位良池)라고도 한다. 사계절 내내 절경을 선사해 밀양 8경으로 꼽힌다. 

위양지의 풍경은 신비롭다. 연못가에는 왕버들이 연못을 향해 가지를 드리우고 자란다. 아침이면 물안개가 가득 피는데 이 신비로운 풍경을 담기 위해 전국에서 사진작가들이 몰려든다. 위양지 가운데에 작은 섬 5개와 완재정이 있고 완재정을 감상할 수 있는 벤치가 놓여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위양지 풍경이 숨을 멎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연못을 따라 한 바퀴 도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 가을 기운을 느끼며 걷기 좋다.

여행수첩

밀양식 돼지국밥. 사진 최갑수

먹거리 밀양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은 돼지국밥. 걸쭉하고 진한 부산식과는 달리 밀양식 돼지국밥은 국물이 맑은 것이 특징이다. 소뼈를 우려 내 육수를 내기도 한다. 고기도 두툼하게 썰지 않고 얇게 썬다. 예림돼지국밥, 단골집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밀양아리랑 전통시장에 보리밥집이 몇 곳 나란히 늘어서 있다. 메뉴는 보리밥과 장국 단 두 개. 보리밥을 주문하면 숭늉과 비빔장이 함께 나온다. 콩나물, 부추무침 등 먹고 싶은 만큼 덜어 만들어 먹는 셀프 보리밥집이다.

대한민국 3대 누각 영남루(보물)는 밀양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여행지다. 밀양강을 바라보며 서 있는 영남루는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꼽힌다. 앞면 5칸, 옆면 4칸에 팔작지붕을 올렸다. 밀양도호부 객사로 쓰인 밀양관의 부속 건물답게 곳곳에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이 숨어 있다. 내부에는 당대 명필가와 대문장가의 시문 현판이 즐비하다. 영남루가 가장 운치 있을 때는 저물 무렵이다. 해 질 녘 영남루에 앉으면 밀양강이 흘러가는 소리가 귓전을 적시고, 밀양강 너머에서 밀려온 노을이 이마를 붉게 물들인다. 밀양강 건너 둔치에서 보는 영남루도 운치 있다. 화려한 조명을 받은 영남루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답다.

▒ 최갑수
시인, 여행작가, ‘우리는 사랑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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