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기의 컬래버노믹스 <6>] 허영만 화백이 부러운 이유
현대 경영학을 이끌어온 스타 교수를 꼽으라면 반드시 들어갈 인물이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포터 교수다. 그가 1980년에 낸 ‘경쟁 전략(Competitive Strategy)’은 경영 전략 분야의 바이블이다. 마침 전 세계에 불어닥친 신자유주의가 퍼져나가던 시절에 이 책이 나왔다. 시장 원리의 핵심은 경쟁이고 경쟁을 해야 혁신 성장, 번영을 할 수 있다는 신념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 때였다. 기업뿐 아니라 국가와 공공기관도 경쟁력 강화가 지상 목표였다. 오죽하면 나라마다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 강화위원회를 설치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나온 마이클 포터의 ‘경쟁 전략’은 경쟁에서 이기는 근원적 전략과 추진 방법을 다루고 있다. 여태까지의 경영 전략서들이 관념적이었다면 마이클 포터의 책은 매우 분석적이고 시스템적이었다. 저원가 전략, 차별화 전략, 집중화 전략이라는 3대 전략을 논하면서 분석 틀로 가치 사슬, 가치 시스템 등을 제시했다.
마이클 포터의 이론이 각광받은 이유는 지금까지의 이론을 훌쩍 뛰어넘었기 때문인데 그게 가능했던 것은 그가 이단적인 경영학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학부 전공은 ‘항공 기체역학’이다. 이공계 출신인 것이다. 이런 그가 석·박사 과정에서 경영학으로 뛰어들었다. 결국 공학적 이론과 경영학 이론이 융·복합되면서 경영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됐다.
한 우물을 계속 파면 성공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한 우물을 계속 파고 그 안에 들어있으면 그게 바로 우물 안 개구리다. 요즘은 우물을 파더라도 어딘가 연결돼야 가치 창출을 할 수 있다. 이제는 전공의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
21세기 융합 창조 시대를 이끈 스티브 잡스의 전공은 무엇인가? 그가 대학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 공부한 후 졸업했다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그는 모든 경계를 뛰어넘은 융·복합 창조인이었다. 젊어서는 손글씨에 빠졌고 한때는 명상 수련에도 빠졌다. 그가 애플을 이끌 때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만약 소크라테스와 한 끼 점심을 함께할 수 있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과 맞바꿀 용의가 있다.”
융·복합 창조 시대에는 전공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컬래버레이션의 기본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함께 손을 잡는 것이다. 전공의 함정에 빠지면 이게 불가능해진다. 스티브 잡스는 전공이 없다. 빌 게이츠도 전공이 없다. 일단 전공에서 자유로워야 큰일을 할 수 있다.
요즘 내게 제일 부러운 사람은 허영만 화백이다. 70대 중반의 나이에 온갖 복이 터진 사람이다. 이 나이면 건강이 제일 중요한데 정말 강철 체력이다. 골프를 함께해 보면 비거리가 젊은이 못지않다. 스윙 자세도 프로 선수처럼 완벽하다. 일단 건강이란 복을 가졌다. 이 나이가 되면 돈 걱정도 하게 마련인데 이것 또한 부럽기만 하다. ‘식객’을 포함해 여러 명작이 있으니 인세가 계속 들어온다. 자고 나면 돈이 들어오니 살맛 나는 인생 아닌가. 게다가 요즘은 ‘허영만의 백반 기행’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각계 명사들을 초청해서 전국 맛집 순례를 하고 있으니 이 또한 멋지고 부러운 인생이다.
허 화백은 전공이 없는 사람이다. 자유로운 융·복합 지식인이다. 만화는 콘텐츠가 좋아야 명작이 된다. 허 화백은 작품 구상을 할 때 엄청난 학습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식객’을 구상할 때는 음식 관련 수백 권의 책을 읽고 전국 전통 음식점을 찾아다녔으며 요리 대가들을 만나 정보를 수집했다. 작품 하나를 내기 위해 최소 2~3년간 거기에만 몰두하며 배운다는 것이다. 이제 허영만 화백의 ‘식객’은 음식 문화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내 전공이 아니라서 모른다고 말하지 말라. 내 전공이라서 자신 있다고 말하지 말라. 전공을 넘어서야 새로운 창조가 가능한 컬래버노믹스 시대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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