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커피믹스와 봉화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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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봉화 광산 221시간의 기적' 뒤에는 생존 식량 커피믹스가 있다.
하지만 기적까지 저 먼 시간을 버텨내게 한 건 당과 지방 탄수화물 등 50칼로리 열량이 든 커피믹스였다.
하지만 봉화 광산 커피믹스는 땅속 일을 하는 광부들 숨을 돌리게 하고 피곤함을 덜어주는 '고마운' 음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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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봉화 광산 221시간의 기적' 뒤에는 생존 식량 커피믹스가 있다. 지하 190m에 고립됐던 두 광부는 챙겨간 커피믹스 30개를 하루 몇 개씩 나눠 마시며 배고픔을 달랬다. 첫날에는 빨리 구조될 줄 알고 2개를 저녁 밥으로 생각하고 갱도에서 떨어지는 물에 타 마셨다고 한다. 덕분에 구조될 때는 걸어서 나올 만큼 몸 상태가 좋았다. 봉화 기적을 일궈낸 건 물론 두 광부의 노련한 의지, 이태원 참사와는 다른 사고 매뉴얼이다. 하지만 기적까지 저 먼 시간을 버텨내게 한 건 당과 지방 탄수화물 등 50칼로리 열량이 든 커피믹스였다.
□ 행운의 증표가 된 커피믹스는 피곤이 몰려올 때, 단것이 당길 때 한국인이 먼저 찾는 음료다. 집중이 안 되거나 몸을 충전해야 할 때도 종이컵에 커피믹스를 털어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단맛과 쓴맛이 적당히 섞인 이 특유의 ‘달콤한’ 커피믹스는 1970년대 처음 국내에 등장했다. 동서식품이 인스턴트 커피, 설탕, 크림을 적당한 비율로 섞어 1회분씩 막대형 봉지에 포장한 ‘맥심’이 시작이었다.
□ 우리나라가 성인 1인당 연간 약 353잔의 커피를 마시는 커피 공화국이 된 데도 커피믹스 영향은 컸다. 외국인이 좋아하는 한국 대표 상품이 됐지만 스페셜 커피까지 등장한 최근엔 다양한 이유로 멀어지고 있다. 그래도 고단하고 험한 일을 하는 이들이 여전히 선호하는 저렴한 음료다. 두 광부를 견디게 한 30개라고 해봐야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 한 잔 값(4,500원)도 안 된다. 하지만 봉화 광산 커피믹스는 땅속 일을 하는 광부들 숨을 돌리게 하고 피곤함을 덜어주는 '고마운' 음료였다.
□ 작가 정명섭은 ‘한국인의 맛’에서 한국사를 바꾼 아홉 가지 음식에 커피믹스를 포함시켰는데 진한 원두커피는 물론 커피믹스에서 느끼는 정체불명의 쓴맛을 이렇게 묘사했다. “서구 열강을 좇고자 했던 ‘모던 뽀이’들의 욕망과, 잦은 야근에도 정신을 붙들어야 했던 노동자들의 고단함과, 다방에서 얼굴을 붉히며 토론했던 장발 대학생들의 열기와, 여전히 남아 있는 서구에 대한 희미한 동경을 담은 낭만이 모두 녹아 있다.” 여기에 극적으로 살아 돌아와 국민에게 희망을 선사한 봉화 기적 이야기는 커피향을 짙게 하는 거친 일화로 남게 됐다.
이태규 논설위원 tg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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