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뒷목 잡은 앞차 운전자에 보험금 수백만원…“실제 충격은 범퍼카 수준”

신찬옥 2022. 11. 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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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범퍼 살짝 긁힌 교통사고
놀이공원 범퍼카 충격과 비슷
CT·MRI에선 이상 없는데
통증 호소땐 거액 보험금

적정한 가이드라인 없다보니
결국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과학적 지급 근거 마련해야

60대 송 모 씨는 올해 자동차 보험을 갱신하느라 애를 먹었다. 세 건의 가벼운 접촉사고 이력 때문에 기존 보험사에서 거절당하고, 다른 보험사를 찾아 훨씬 더 비싼 보험료를 내고서야 겨우 계약할 수 있었다. 그는 “작년에 골목에서 천천히 후진하는 와중에 지나가는 사람이 백미러에 손을 살짝 부딪혔는데, 목 디스크가 생겼다면서 치료비로만 200만원을 청구했더라”면서 “바로 얼마 전에 택시가 살짝 박은 것을 나는 그냥 보내줬는데, 나만 바보가 된 것 같아 억울했다”고 했다. 그는 “영화같은 데서 접촉사고가 나는 순간 ‘무조건 뒷목 잡고 내려라’고 하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 아프다고 우기면 통장에 수백만원이 꽂히는데 누가 마다하겠냐”며 분노했다.

범퍼가 긁히는 정도의 가벼운 접촉사고 관련 의료비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과잉진료와 보험금 분쟁 예방을 위해 과학적 지급 근거를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은 의학적 진단(MRI, CT 등)상으로 이상이 없다고 나와도, 환자의 주관적인 주장에 근거한 치료에 자동차보험금이 지급되고 있다. 한도 제한조차 없다 보니 일부 피해자와 한방병원이 경상환자의 진료비를 1000만원까지 부풀리는 사례도 늘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심지어 차와 차가 부딪히지 않았는데도 열흘씩 입원하고 100일 이상 통원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면서 “비슷한 사고에 비슷한 부상인데, 사람에 따라 치료비와 합의금이 수백만원씩 차이나는 구조는 분명 문제”라고 주장했다.

의료 전문가의 진단 외에 공학적·과학적 분석자료를 참고해 탑승자의 상해 위험을 평가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로 가벼운 접촉사고때 탑승자가 받는 충격은 얼마나 될까. 7일 매일경제신문은 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연세대 원주의대와 공동진행한 ‘경미사고 시 탑승자 상해위험 분석’ 연구 보고서와 동영상을 입수했다. 연구팀이 실제 보험금 지급관련 소비자 분쟁이 잦은 사고 유형을 다양한 차종으로 재현한 결과, 가벼운 접촉사고때 사람이 받는 충격량은 놀이공원 범퍼카 탑승시 충격량과 비슷했다. 대학병원에서 충격시험 전후 MRI를 촬영하고, 근전도와 신경전도도 측정했지만 큰 차이가 없었고 의학적 이상소견도 없었다. 시험에 참가한 34명 중 일부는 사고 직후 불편함과 경미한 통증을 호소했지만 치료없이 수일 내에 증상이 사라졌다고 응답했다.

연구팀은 놀이공원 범퍼카 충격량도 계산했다. 언제 부딪힐 지 모르게 하기 위해 두 시험 모두 시야를 차단하고 외부 소음환경도 비슷하게 만들었다. 자동차기술연구소 관계자는 “범퍼카를 탈 때는 충돌로 충격받을 것을 미리 알고 있고, 차량 접촉사고는 모르고 당한다는 차이는 분명 있을 것”이라면서도 “가벼운 접촉사고와 충격량이 비슷한데도 수십만 명이 넘는 범퍼카 이용자 중 충격으로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경우는 보고된 바 없다”고 말했다. 범퍼카 시트는 머리 지지대가 없는 등 차량에 비해 안전장치가 더 취약한데도, 범퍼카 탑승자는 상해를 입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차량 시트에 안전벨트를 착용한 탑승자의 상해위험은 매우 낮다는 것이 연구진의 결론이다.

이에 대해 교통사고 환자를 전문으로 보는 모 한방병원 관계자는 “범퍼카와 직접 비교한 실험은 너무 극단적이다. 실제 차량사고는 아무리 가볍게 부딪히는 것 같아도 충격량이 범퍼카와 같지 않다”면서 “사고에는 도식적 상황보다 많은 요소가 개입하는데 이렇게 상황을 비슷하게 설정해놓고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경미한 충격에도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있을 수 있다. 한의학계는 이런 환자들은 MRI나 CT상 이상이 없지만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 한방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고, 실제 치료 만족도도 높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보험업계 관계자는 “치료 효과나 환자 만족도와 별개로, 그 통증이 이번 교통사고로 인한 것인지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면서 “피해자의 주관적 주장에 근거해 무제한 진료하고, 그 비용을 무한정 자동차 보험금에서 지불하는 현재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보험 업계는 물론 의료계와 한의학계 내부에서도 ‘과학적 근거와 합의에 의한 적정진료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있다. 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평가위원은 “환자가 호소하는 통증은 주관적인 데다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객관화하기가 어렵다. 환자가 아프다고 하는데 의사 입장에서 진료를 하지 않을수도 없다”면서 “지금으로선 심평원 심사에서 거를 수밖에 없는데, 수치화된 통증정도와 영상자료 등 객관적 자료를 많이 참고하고 합리적 의심이 될 때에는 소명 기회를 주는 등 공정하게 심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의료계의 경우 오랜 세월 전세계에서 검증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 있지만, 한방 쪽은 이제 시작이고 한국이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라며 “기준이 느슨한 틈을 타 일부에서 과잉진료를 하고 있다면 이를 억제할 수 있는 진료 기준과 의학적 근거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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