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왕궁터의 단서?… 부여 군창지서 기와 겹쳐 쌓은 터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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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여년 전 불탄 쌀알들이 지금도 종종 나와 백제 멸망의 비운을 일러주는 곳.
6~7세기 백제 마지막 도읍 사비성이던 충남 부여읍의 부소산성 안 군창지에서 당시의 왕궁급 대형 건물터가 발견됐다.
발견된 건물터 2곳은 가로 길이가 각각 16m, 14m 이상으로 군창지 동남쪽에 남북축으로 놓여 있다.
군창지는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수비군이 먹을 군량미를 비축했던 창고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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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여년 전 불탄 쌀알들이 지금도 종종 나와 백제 멸망의 비운을 일러주는 곳. 백마강 낙화암과 이웃한 옛 군량미 저장고 ‘군창지’가 백제시대 궁궐의 실체를 드러낼 단서로 떠올랐다.
6~7세기 백제 마지막 도읍 사비성이던 충남 부여읍의 부소산성 안 군창지에서 당시의 왕궁급 대형 건물터가 발견됐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산성 안 평지의 핵심 건물군을 파악하기 위해 최근 군창지를 발굴조사하다 기왓장을 10단 이상 올려 기단을 쌓은 큰 건물터 2곳을 확인했다고 7일 발표했다.
발견된 건물터 2곳은 가로 길이가 각각 16m, 14m 이상으로 군창지 동남쪽에 남북축으로 놓여 있다. 기왓장을 겹쳐 올리며 기단시설을 쌓는 백제 특유의 와적 기단 형식을 띤다. 와적 기단은 부여의 정림사터·왕흥사터·관북리 유적, 전북 익산 왕궁리 유적 등 백제 왕조의 핵심 건물터에서 확인되는 특징적 요소다. 기존에 확인됐던 백제 와적 기단에는 평균 5~6단 정도 기왓장이 남은 데 비해, 이번에 발견된 와적 기단은 최대 20단 가까이 남아있고, 보존 상태도 가장 좋은 편이다. 연구소 쪽은 “와적 기단 건물터 가운데 규모가 크고 일정한 남북축 배치 구도를 지녔으며, 정선된 기와로 기단을 쌓은 사실 등에서 백제 왕궁터의 실체를 밝히는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군창지는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수비군이 먹을 군량미를 비축했던 창고터다. 사비도성의 북쪽 부소산을 감싸면서 왕성을 지키는 요충지 구실을 한 부소산성의 핵심 영역으로, 1915년 땅속에서 불탄 곡식이 발견되면서 후대에 알려졌다. 지난 1981~1982년 발굴조사로 창고터 얼개가 드러났고, 1993년 조사 때는 ‘大唐’(대당) 글자가 새겨진 기와, 중국제 자기 등이 출토된 바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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