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철 칼럼] 참사 수준의 ‘6개월 국정’과 이태원 참사의 책임
백기철 | 편집인
10일로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6개월을 맞는다. 그간 국정은 한마디로 참사 수준이었다. 지난주 윤 대통령의 한국갤럽 지지율은 29%였다. 지지율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간의 성과와 미래 지표로서 무시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의 6개월 지지율 29%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24% 이후 최저치다.
이태원 참사는 지난 6개월 국정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진 않는다. 하지만 포괄적·상징적으로 연결된다. 이태원 참사가 있어서 지난 6개월이 참사 수준이라는 게 아니라, 6개월의 참사적 국정 운영이 이태원 참사와 시기적으로 맞닿아 있다. 우연으로만 보기 어렵다.
기대가 많았던 건 아니지만 지난 6개월은 너무 심했다. 무엇보다 인사가 망가졌다. 정권의 주요 길목에 검찰 때 심복들이 자리하면서 말 그대로 검찰공화국이 됐다. 검찰 출신 하수인들은 이제 막 칼춤을 추기 시작한 검사들과 함께 언젠가 윤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국정은 폐쇄적인 이너서클이나 막무가내 법 기술자들로만 가능하지 않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전 대표 축출 이후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 유의 친윤, 기득권 우파 중심으로 재편됐다. 당은 국정 난맥 와중에도 중심을 못 잡고 들러리로 전락했다. 정진석 위원장이 지난번 식민사관 발언에 이어 “이태원 참사가 광화문 촛불집회 탓”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는 건 집권여당의 퇴행을 잘 보여준다.
국정 목표가 무엇인지 여전히 알 수 없다. 자유주의 깃발이 지금도 유효한지도 불분명하다. 전 부처의 산업부화, 여성가족부 해체 등과 같은 뒷걸음질만 계속된다. 경제는 레고랜드 사태에서 보듯 위기대처 능력이 떨어지고, 뚜렷한 정책 목표 없이 갈지자 행보를 한다.
외교는 한-미 동맹, 한-일 협력 일변도 와중에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번 정상외교 참사가 대표적이다. 미국과의 경제안보 동맹도 삐그덕거리고 있다. 다만, 북한이 잇따라 도발하는 와중에 한-미 동맹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군사적·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걸 뭐라 하긴 어렵다.
대야관계는 오로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수사뿐이다. ‘이 ×× 논란’부터 시작해 야당을 조금이라도 신경 쓰는 시늉조차 없다. 이재명 대표 쪽에 비리가 있다면 보호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대선에서 1600만표를 얻은 제1야당 대표를 이렇게 토끼몰이 하듯 때려잡는 경우는 없었다.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그동안 해왔던 식으로 정치인 때려잡기, 표적 수사에 올인하는 형국이다.
이태원 참사는 윤석열 국정 6개월을 자리매김하는 상징과도 같다. 참사 수준의 국정이 이태원 참사의 직접 원인은 아니지만 현 정권에서 벌어진 여러 일들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따른 공안 수요 급증, 정권의 경찰 장악 시도에 따른 경찰의 경직화, 윤 대통령의 마약 단속 지시 등등 이태원 참사의 먼 원인이 됐을 법한 일들은 적지 않다.
현 정부 인사들은 6개월 이전, 즉 이전 정부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대형 참사는 그 시점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수백 수천가지 이유가 있다. 오랜 시일에 걸쳐 누적돼 청천벽력 같은 참사가 일어났지만 지금 권력자들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다.
경찰의 사전·사후 대응이 참사를 막지 못한 직접 원인일 가능성이 큰 상황에선 정부 책임은 무한대다. 책임에는 법적·정치적·도의적 책임이 망라된다. 드러난 것만으로도 경찰 수뇌부는 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또 이를 지휘하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그리고 내각을 총괄하는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정치적, 도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윤 대통령의 총괄 책임 역시 적지 않다.
사건 발생 이후 정부 인사들 태도 역시 참사 수준이었다. 이상민 장관이 “경찰로는 못 막았을 것”이라고 운운한 건 국민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사태 성격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한심한 발언이다. 한덕수 총리는 외신 회견에서 노련함을 과시하려다 국민의 역린을 건드린 경우다. 이 장관과 한 총리는 참사 자체에도 직접적·정무적 책임이 있고 사후 대처도 크게 미흡했던 만큼 우선적으로 문책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를 수습하면서 지난 6개월의 국정도 함께 돌아봤으면 한다. 당장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후속 대처들이 첩첩산중이다. 경찰 등 행정 책임자들을 문책하고 정부 인사를 교체하는 건 당연하고 쉬운 일에 속한다.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가릴 조사기구를 꾸려 사후 조처를 탄탄히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더 나아가 이번 참사를 국정 쇄신의 계기로 삼길 바란다. 아직 4년6개월이 남은 만큼 참사적 수준의 6개월을 교훈 삼아 모든 걸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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