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철 칼럼] 참사 수준의 ‘6개월 국정’과 이태원 참사의 책임

백기철 2022. 11. 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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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철 칼럼]이태원 참사는 윤석열 국정 6개월을 자리매김하는 상징과도 같다. 참사 수준의 국정이 이태원 참사의 직접 원인은 아니지만 현 정권에서 벌어진 여러 일들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 정권의 경찰 장악 시도, 윤 대통령의 마약 단속 지시 등 먼 원인이 됐을 법한 일들은 적지 않다.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맨 오른쪽),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오른쪽 둘째)이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백기철 | 편집인

10일로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6개월을 맞는다. 그간 국정은 한마디로 참사 수준이었다. 지난주 윤 대통령의 한국갤럽 지지율은 29%였다. 지지율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간의 성과와 미래 지표로서 무시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의 6개월 지지율 29%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24% 이후 최저치다.

이태원 참사는 지난 6개월 국정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진 않는다. 하지만 포괄적·상징적으로 연결된다. 이태원 참사가 있어서 지난 6개월이 참사 수준이라는 게 아니라, 6개월의 참사적 국정 운영이 이태원 참사와 시기적으로 맞닿아 있다. 우연으로만 보기 어렵다.

기대가 많았던 건 아니지만 지난 6개월은 너무 심했다. 무엇보다 인사가 망가졌다. 정권의 주요 길목에 검찰 때 심복들이 자리하면서 말 그대로 검찰공화국이 됐다. 검찰 출신 하수인들은 이제 막 칼춤을 추기 시작한 검사들과 함께 언젠가 윤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국정은 폐쇄적인 이너서클이나 막무가내 법 기술자들로만 가능하지 않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전 대표 축출 이후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 유의 친윤, 기득권 우파 중심으로 재편됐다. 당은 국정 난맥 와중에도 중심을 못 잡고 들러리로 전락했다. 정진석 위원장이 지난번 식민사관 발언에 이어 “이태원 참사가 광화문 촛불집회 탓”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는 건 집권여당의 퇴행을 잘 보여준다.

국정 목표가 무엇인지 여전히 알 수 없다. 자유주의 깃발이 지금도 유효한지도 불분명하다. 전 부처의 산업부화, 여성가족부 해체 등과 같은 뒷걸음질만 계속된다. 경제는 레고랜드 사태에서 보듯 위기대처 능력이 떨어지고, 뚜렷한 정책 목표 없이 갈지자 행보를 한다.

외교는 한-미 동맹, 한-일 협력 일변도 와중에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번 정상외교 참사가 대표적이다. 미국과의 경제안보 동맹도 삐그덕거리고 있다. 다만, 북한이 잇따라 도발하는 와중에 한-미 동맹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군사적·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걸 뭐라 하긴 어렵다.

대야관계는 오로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수사뿐이다. ‘이 ×× 논란’부터 시작해 야당을 조금이라도 신경 쓰는 시늉조차 없다. 이재명 대표 쪽에 비리가 있다면 보호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대선에서 1600만표를 얻은 제1야당 대표를 이렇게 토끼몰이 하듯 때려잡는 경우는 없었다.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그동안 해왔던 식으로 정치인 때려잡기, 표적 수사에 올인하는 형국이다.

이태원 참사는 윤석열 국정 6개월을 자리매김하는 상징과도 같다. 참사 수준의 국정이 이태원 참사의 직접 원인은 아니지만 현 정권에서 벌어진 여러 일들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따른 공안 수요 급증, 정권의 경찰 장악 시도에 따른 경찰의 경직화, 윤 대통령의 마약 단속 지시 등등 이태원 참사의 먼 원인이 됐을 법한 일들은 적지 않다.

현 정부 인사들은 6개월 이전, 즉 이전 정부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대형 참사는 그 시점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수백 수천가지 이유가 있다. 오랜 시일에 걸쳐 누적돼 청천벽력 같은 참사가 일어났지만 지금 권력자들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다.

경찰의 사전·사후 대응이 참사를 막지 못한 직접 원인일 가능성이 큰 상황에선 정부 책임은 무한대다. 책임에는 법적·정치적·도의적 책임이 망라된다. 드러난 것만으로도 경찰 수뇌부는 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또 이를 지휘하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그리고 내각을 총괄하는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정치적, 도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윤 대통령의 총괄 책임 역시 적지 않다.

사건 발생 이후 정부 인사들 태도 역시 참사 수준이었다. 이상민 장관이 “경찰로는 못 막았을 것”이라고 운운한 건 국민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사태 성격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한심한 발언이다. 한덕수 총리는 외신 회견에서 노련함을 과시하려다 국민의 역린을 건드린 경우다. 이 장관과 한 총리는 참사 자체에도 직접적·정무적 책임이 있고 사후 대처도 크게 미흡했던 만큼 우선적으로 문책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를 수습하면서 지난 6개월의 국정도 함께 돌아봤으면 한다. 당장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후속 대처들이 첩첩산중이다. 경찰 등 행정 책임자들을 문책하고 정부 인사를 교체하는 건 당연하고 쉬운 일에 속한다.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가릴 조사기구를 꾸려 사후 조처를 탄탄히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더 나아가 이번 참사를 국정 쇄신의 계기로 삼길 바란다. 아직 4년6개월이 남은 만큼 참사적 수준의 6개월을 교훈 삼아 모든 걸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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